4.18.2007

나도 힘이 셌으면 좋겠다


옮기는 것이 확실하게 결정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파리 가기 전부터 벌려놓은 상자를 마무리하여 집으로 보내기로 한다.

한 상자 잘 채워 들었는데 200미터도 안 되는 우체국까지 그걸 어떻게 들고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하지? 지나가나 hardware store하나 있던데 cart가 있나 한번 나가 볼까... 아래 슈퍼에서 사정하고 카트를 하나 빌려볼까..' 별 생각을 다 하다 방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carrier가 눈에 띄고 상자를 겨우 들어 넣어봤더니 들어간다. 생각하면 대체로 답이 나오는 것을 즐거워하며 이제 포장을 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겨지지 않는 상자를 달래서 겨우 포장을 하고 겨우 carrier에 넣고 문을 나서는데 고양이와 영역 싸움을 하는 스무 개 정도 밖에 안 되는 계단... 무겁고 커다란 carrier를 들고 좁긴 하지만 그래도 짧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줄이야. 대책 없이 씨름을 하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도와주겠다 달려오신다. 그렇지만 보기처럼 기운도 없으신지 마음만 고맙지 큰 도움은 안 된다. 어떻든 계단을 내려와 비교적 평평해 보이는 바닥을 골라 그것을 끌고 우체국에 가서, 겨우 꺼내서 겨우 저울에 올렸는데 24.5kg... 들리는 말에 안 된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무게가 짐작이 안돼서 그냥 20kg 미만이기만을 바랬는데 역시 불길한 예상대로 초과다. 그걸 다시 내려서 넣어서 끌어서 다시 계단 앞에 와서 숨을 가다듬고 힘을 모아 기합 한번 넣고 올리기 시작했는데 세 계단쯤 올라가서 어떤 언니가 오더니 도와주겠다며 믿을 받쳐 휙 올려준다. 이 언니는 힘 좀 쓰네. 하며 고맙다는데 내가 이탈리아어을 알아 듣는 줄 아는지 뭐라고 한없이 다른 문을 가르치면서 이야기를 하더니 반응이 신통치않자 이름이 뭐라 하며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기억 못함) 너는 하길래 나의 nickname을 주니 예상과 빗나가서 실망스러운 어조로 '너~~무 쉽다, 안녕~~~' 하며 간다. 어떻든 , 구세주의 도움으로 겨우 올리고...

그래, 그럼 이 참에 책을 빼서 안 그래도 많은 짐을 보태느니 상자를 두 개로 만들어 있는 책을 모두 보내 버리자... 싶어 그 무거운 것을 꺼내서 테이프 열심히 붙인 것 풀어서 두 개로 만들고 다시 포장. 역시 가볍지는 않으나 들만 했고 carrier에 넣어가는 것 보다는 하나씩 들고 가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첫 번째 상자를 들고 나섰는데... 한번 들어서 들만 한 것과 그걸 들고 한참을 가는 것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였다. 가다가 네 번을 쉬었다. 2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이번엔 16kg... 1kg 때문에 십 몇 유로를 더 내야 하지만 그저 20kg가 넘지 않아 부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18kg이었던 두 번째 상자도 겨우 부치고... 그야말로 용을 썼더니 이마엔 비지땀, 팔, 어깨, 허리..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20kg 상자 셋과 오전 내내 씨름을 하고 나니 타고나길 다르게 타고 나길 바라는 일이 거의 없는데, 장사는 아니어도 힘을 써야 할 땐 좀 쓸 힘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저절로 난다. 그래서 힘을 쓸 일이 있을 때 미리 몇 날 며칠 전부터 심란해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거운 것 나르는 것 쯤이야 했더라면 훨씬 쉽게 레스토랑을 옮길 결심을 했을 텐데 싶기도 하고... (200미터 내에 세 개나 되는 서점에서 사 모은 책이 장난이 아니어서 이 책들이 날 못 떠나게 붙잡지 했었다.)

어떤 친구가 ‘난 남자들보다 힘이 약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 할 때 어찌나 부럽던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잊지 않고 자주 그 친구가 부럽다...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세상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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