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숙소에서 간단히 하고 점심, 저녁은 sala라 불리는 학교 식당에서 먹는다. 한 장에 빠는데 18Euro나 든다는 테이블 보가 보기 좋게 깔려있고 Sala를 담당하는 Gianni와 Domenico가 bicchieri(잔)와 posate(포크, 칼, 숟가락), tovagliolo(냅킨)를 세팅해 놓는다. Serving은 Sala를 담당하는 조가 배운것 복습 차원으로 담당하고.
antipasti, primi, secondi 중 두가지와 dolci(후식). 점심은 코스로 저녁은 부페식으로. 그리고 저녁엔 contorni 격의 야채 insalata와 wine이 곁들여진다. 때때로 수업 시간에 준비했던 것을 내기도 하고. Chef들이 잘 준비해 준다던 식사는 먹을 만하지만 그리 정성들인 식탁은 아니다. 그거 만들기가 얼마나 쉬운지, 이곳에서는 얼마나 구하기 쉽고 저렴한 재료인지 다 아는데 뭐 그리 잘 차렸다고 할 수 있을까.. ㅎㅎ 게다가 예전과 달리 입맛에 맛는 것을 골라먹는 것이 아니라 주는데로 먹는 것이다 보니 아무리 이탈리아 음식을 좋아한다해도 만족도는 그리 높지않다. 매일 저녁 두 사람 당 한병의 와인을 준다던 말도 실상은 차이가 있다. 어떤 술이든 한잔이면 족한 사람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왜 많은 사람들은 말에 허세를 섞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상황은 언제나 달라질수 있는 것이지만 달라졌다면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지...
새로운 접시를 받으면 언제나 장금이들의 재료와 맛의 분석이 시작된다. 그러다 삼천포로 빠져 가당치도 않은 어떤 우리 음식 맛이 난다 가 되었다가 '이것이 먹고싶다, 저것이 먹고싶다'로 흘러버린다. 아무리 이탈리아 음식이 몸에 좋고 우리 입 맛에 맞는다 해도 뼈속까지 기억된 맛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말보다 오래 유지되는 것이 음식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직 사무치게 먹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 자로 재듯 정돈한 식탁.

- panini, sardenara, 샐러드가 차려진 저녁 부페

- 이탈리아인 아버지를 가진 니카라과 출신 Val양. 그녀는 한국말도 영어도 안되고 우리는 이탈리아어도 스페인어도 안되서 그녀와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언어의 장벽이 있으나 같이 수업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 지루해하기도 쓸쓸해하기도 하는 것처럼 보이나 와인도 솔선수범 테이블마다 다 따르고 몸으로 우릴 웃기기도 하고 애쓴다. 이 날도 오렌지로 스마일을 만들어 보는 사람을 즐겁게...

- 혈액이든 기분이든 분위기든 고인 것을 순환하게하는 한잔의 와인 ㅋㅋ

- 새로운 와인이 나올 때마다 Etichetta를 찍는다. 절대 기억할 수 없어서...

내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닌 긴 하루를 마치고 저녁 식탁의 와인 한잔으로 마음 속도 머리 속도 씻어내고 학교를 나선다. 자욱한 안개 속에 어둠이 내린 Centro와 Cascina Salerio를 잇는 오솔길은 아침과 같이 휴식과 위안을 준다.


*삼각대도 없이 어찌 이렇게 사진이 잘 찍혔을까.. Pixar의 3D animation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고 볼 때마다 흐믓하다.*
실제 주방의 intensity나 속도감은 여기 보다 더할 것 같은데... 며칠 되지도 않아서 부상의 속출이다.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를 베어서 한시간 가량 손을 들고 있어야했던 B, 고기를 얇게 썰기위한 affettatrice에 손가락을 반쯤 베었다는 인형같은 이목구비에 목소리가 매력적인 브라질 아가씨 M, 육중한 조리대 문짝이 발에 떨어져 부어 절룩거리는 G, 오븐 문짝에 아니면 오븐에서 냄비 꺼내다가 손을 덴 나를 포함한 여럿. 칼, 꼬챙이, 절단기, 불... 이렇게 보기좋은 음식은 그렇게 험한 과정을 거쳐 주름 한줄 얼룩 한점 없는 새하얀 테이블 위에 놓인다.
* * *
- 'insalata di coniglio'라는 이름의 antipasto: 토끼 가슴살 두쪽과 네쪽으로 자른 콩팥이 그 험한 과정을 거쳐 입맛을 돋구는 전채요리로 태어났다.
Prima:

Dopo:


Asti 모처 도착.. 이끌려 와서 어딘지 정확하게 모른다. 몰라도 되는 것은 철저히 알려하지않기 때문에.. ^^
Alitalia를 타고 로마를 거쳐서 토리노로 토리노에서 버스로 이곳까지.
어둠속의 짙은 안개. 그 속을 뚫고 어떻게든 풍경을 보려했으나 세상에서 무엇보다 무겁다는 눈꺼풀이 방해...
버스안에서 잠시 붙인 눈 덕택에 말똥 말똥하여 짐풀고 씻고 무선 인터넷이 보안도 없이 된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잠도 안자고 이러고 있다.
일단 학교는 두려움에 떨던 것에 비해 좋은 인상이다. 아주 소박 또는 절제된 시설이랄까. 하지만 편의는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잘 도착했다.
나의 땅에 대한 사랑(?)의 근원은 어디일까. 사주풀이 아주머니 말처럼 사주, 그러니까 타고난 것일까?
도시 또는 도시 언저리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건만 그래서 그런 건지 언제나 나무, 숲을 그리워한다. 헬렌 니어링, 타샤튜터 아주머니들의 기인에 가까운 삶을 동경하다 꿈만 꾸기에 지쳐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었건만 한걸음도 아니고 0.0001걸음 떼고 가슴이 콩닥콩닥 하며 마음을 접고 20여층 아파트 몇십평에 그냥 정착을 할까하는 생각이 굴뚝 같아진다.
작은 산 기슭 마을의 꼭대기 소나무 숲 바로 아래다. 사이로 작은 또랑도 흐른다. 하루종일 소나무 숲만 보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몇 집이 있는데 대부분 빈집 같아 보인다. 좁은 마을 입구 딱 막히면 오고 갈 길이 없다. 눈이 오면 누가 와서 치워주지도 않을 것 같고 날풀려 저절로 녹기전까지는 꼼짝 못할 것 같다. 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대중교통은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서울에서 가깝기는 하다하나 내가 경험한 가장 깊은 산골마을, 할머니 댁 보다 더 깊어보인다. 친구들이 놀러 올 엄두를 내기 쉬워보이지 않는다.
종합해보면 적적함, 불편함, 두려움. 적적함이란 태생적으로 잘 해결할 능력을 가진 것 같고, 불편함 또한 참고 버티는 일이 가능 할 것 같은데 두려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지...
현실이란 늘 그렇다... 마음에 불을 질러^^ 날 마음먹게 하고 0.0001걸음을 떼게 한 타샤튜터 아주머니를 감사 해야할지 원망 해야할지... ㅎㅎ
좀 긴 여행이다 생각했는데 막상 노모 홀로 남기고(한편 노모는 애물단지 또는 앓던 이의 자발적 가출을 은근히 환영하시지만..) 잠시라도 집을 떠나니 심란함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이 즈음의 경향도 있지만 오늘은 무조건 커피다. 에스프레소가 카페인이 적다해서 방심했더니만 커피는 커피라 길었던 하루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쉬려하지 않는다.
멍하니 있다 오늘 아침 몇가닥 뽑은 흰머리가 생각났다. 잠시 방심한 사이 부쩍 늘어난 흰머리. 도대체 왜 흰머리가 나는 것일까를 찾아봤더니 때 되서 날 뿐 방심하지않았다고 대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섭섭하다. 다시 들추어 한가닥 뽑아보니 검은 머리였는데 한 6개월전쯤부터 색이 바뀌었다. 한번 희어지면 다시 검어지지않는다던데... 우울... 그러다 흰색이었다 다시 검은 색이 된 한가닥을 발견했다. 하하하...
한동안 보이는대로 뽑다, 얼마전부터 절대 뽑지않으리라 생각하다, 오늘 산 세월을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novice를 부담스러워할것 같은 생각에 눈에 좀 두드려지는 놈들을 좀 뽑아준다.
마당쓸기, 물길어오기도 좀 시킬수 있는 만만한 상대여야한다는 우리의 '신참' 또는 'hierarchy에서 낮은 상대'에 대한 생각을 고려하여..
어떤 조직에 시스템이 있고, 역할이 있고, 역할 내 숙련도에 따른 상하가 있고, 서로 존중한다면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않을까. 그룹이 형성되면 서로 나이를 확인해서 서열를 세우는 원시적 절차도 없어도 되고... 나이에 쫓겨 성급히 하는 돌이키기 쉽지않은 일도 줄어들 것 같고... ㅎㅎㅎ
이제 좀 몽롱해지는 것이 잘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