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truth, the whole truth, and nothing but the truth'
어떤 나라 법정이 증언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라 한다. 부분적 사실로 왜곡된 진실에 심심치않게 분노하는 현실에 참 감동스러운 표현이었다. 맞다, 사실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어야 진실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느새 일년도 넘은 일이 되어버렸다. 아뭏든... 요즘, sensible한 외모의 dolci 선생님이 추천해준 책, The Professional Chef 8th edition,에 반했다.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방치 당하고 있었는데, Hell's Kitchen에 매번 등장하는 beef wellington의 조리법을 이 책에서 얼핏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들췄다가 감동하여 팔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즐겨 보는 책이 됐다.
요리책들을 많이 보다 보니까 어떤 공통적인 느낌이 있다. 대부분이 진실을 말하고 심지어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파고 들면 the whole truth는 살짝 숨긴다 싶은 인상이다. 그런데 이 책은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요리학교의 교재라 한개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인지, 저자로서의 기본 양식인지, 아니면 그냥 프로로서의 자존심인지, 내용이 진지하고 풍부하고 분명하고 투명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단지 풍부하고 잘 정리된 지식이 이런 책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란 것이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요리책일지라도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편협함, 고려청자의 빛 마저도 영원히 재현할 수 없게 만든, 나만의 비법은 며느리도 몰라야 한다는 생각에 머무르는 사회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책이지 싶다.
요리에서도 법이 있지만 그야말로 참고사항 내지는 권장사항일 뿐 하는 스스로의 stake하에 얼마든지 취향에 따라 아니면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해도 좋은 것이 요리다.
요리가 과학이라고는 하나 rocket science는 아니다보니 뭐 그리 복잡하고 어렵지는 않지만 그나마 제과부문이 가장 체계적 과학적으로 조리법이 정리됐을 뿐 아니라 이해해야할 원리들이 꽤 있다.
한 친구는 제과 실습실에서 계량을 회피하려다 chef에게 주걱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30년 경력의 자신도 저울과 온도계를 쓰는데 감히 배우는 자가 눈대중과 손맛을 자랑하다니... chef로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겠지. 그리하여 창의력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하라는 대로 충실히 따라할 뿐만아니라 공부를 좀 하며 전통과 기본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 이 부분의 morale이다.
따라서 단 것에 관한 공부를 할 땐 겸손한 학생이 된다. 300:50 = 100:x. x=? 반올림까지 해가며 조리법에 가장 근사한 양을 구하려는 산수도 종종 하고 별것도 아닌 것 같은 jargon도 열심히 기억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붙는지 재밌다. 아니면 실험을 즐기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 즐거워하는 타고난 학생기질 때문에 그런지...
최근의 발견은 세가지 버전의 머랭. 계란 흰자를 설탕과 섞어 거품을 낸 것. 다른 것과 섞어서 크림도 만들고, 구워서 쿠키도 만들고 케잌도 만든다. 프랑스식식과 이탈리아식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또 다른 방법, 스위스식도 있었다.
프랑스식은 계란 거품을 좀 내다가 설탕 솔솔 뿌리며 거품을 내고
스위스식은 계란과 설탕을 섞은 후 중탕으로 덥혀서 설탕을 완전히 녹인 후 거품을 낸다.
이탈리아식은 설탕을 나누어 프랑스식으로 하다가 나머지 설탕으로 만든 시럽을 부으며 거품을 낸다.
어차피 머랭인데 쉬운 프랑스식으로 하면 되지 다른 번거로운 방법은 왜 책마다 소개되는 것일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우선 food safety 때문이다. 이탈리아식이나 스위스 식은 계란을 익히지는 않아도 계란이 안전한 온도까지 온도를 올려서 만들기 때문에 생크림으로 사용해도 안전하지만 프랑스식은 완전 날 것이라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크림입자의 곱기와 지속되는 정도가 시럽을 만들어 넣는 이탈리아식이 훨씬 더 좋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머랭을 익히지 않은 상태로 오래 두어야한다면 이탈리아식으로 만드는 것이 안정적인 것이었다.
조만간 온도계를 장만할 이유가 생겼다. ^^

화려한 꽃이 주렁주렁 지나치게 피었다 싶은 양란 화분들이 한번 꽃이지고 나서는 몇 년이 지나도 잎만 무성하고 좀체로 꽃을 피우지 못해, 양란은 화원에서나 피는 꽃인가보다 했는데... 아파트로 이사온 후 꽃대가 쑥쑥 올라오더니 드디어 꽃을 피웠다. 단독주택에 살면서 한번도 양란이 스스로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진짜 신기하다.
난생처음 대한민국식 아파트 살이. 앞 건물에 가려 하늘도 안보이고, 아침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어렵다. 마지 못한 선택이지만 '에휴.. 대한민국에서, 도시에 사는 한 별수 있나', '편하긴 하다' 하며 마음을 달래지만 맘 한 구석 늘 서운했는데, 오랫 동안 못 피우던 꽃을 당장 피우게 할 만큼 어떤 존재에겐 훨씬 나은 생존 환경이기도 한 걸 보니 그 동안의 서운함이 좀 누그러든다.
베이글을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한번 만들어야지 하다가 드디어... 아마 어제 빵집 아줌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베이글 두 개 계산하는데 10분을 기다리게 하길래 그냥 와버렸다.
어제 오후부터.. 내가 만든 베이글로 다음날 아침을 먹는 행복을 상상하다 하다가 '오븐에서 바로 나온 것을 먹으려면 아침에 해야지... 일찍 서두르면 아침으로 베이글을 먹을 수 있을 꺼야' 하며 오후에 할까 하다 다음 날로 미뤘다. 사실, 몸은 게으르고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워서라고 할 수 있지.. ^^
머리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처음 해보는 베이글을 느지막히 일어나 만들어 아침으로 먹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한 일이라는 것을... 아예 밥통에 조금 남은 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시작했다.
겨우 파이 반죽이나 할 만한 반죽기로 빵 반죽을 하려니 이건 말 그대로 씨름이다. 밀가루와 반죽이 좀 여기 저기 튀긴 했어도 언제나 사먹을 줄만 알았던 그 맛있는 베이글을 만든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간단한 일이라, 오븐에서 나온 따끈한 베이글로 행복한 점심이 가능하다.
빵굽고,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고, 내일 친구들이 온다해서 메뉴 짜고 닭 뼈 바르고(닭아, 미안해), 남은 뼈로 육수 끓이고, 무료 메가TV 영화 한편 감동스럽게 보고 나니, 배는 고프고 decent한 저녁을 준비할 여유가 없다. 흑흑... 하지만 곧 하하... 나에겐 베이글이 있다.
크림치즈 듬뿍 바른 베이글과 커피가 마시고 싶었지만 대신 우유에 깔루아 조금 넣고 커피를 참는다. 음~~~ 점심에 무리해 먹고서도 또 맛있어 한다. 물에 너무 오래 익혀 구웠는지 질긴 갈비 못지않은 것이 이렇게 마냥 좋은 것은... 맛보다는 아마도... 아침 베이글과 크림치즈, 커피를 시시때때로 그리워하는 내 마음인 것 같다...
Cooking Note:
Yahoo food에 있는 Emeril의 recipe를 보고 하다가 깜짝... 물의 양이 너무 많고 이스트도 너무 많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밀가루 500g, 소금 4g, 물 300g의 비율로 반죽 했다. 이스트는 생효모로 7g을 설탕 1ts와 미지근한 물에 풀어 했는데 한 시간 안에 두배로 잘 부풀었다. 나머지는 그대로... 소금은 꽃소금을 넣었는데 좀 싱거운 듯...

tartufo 또는 복수로 tartufi. 송로버섯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영어론 truffle(트러플).
초콜렛 가게에 가면 작은 공모양 초콜렛 안에 여러 가지 크림 등을 넣고 겉에 이것 저것 묻혀놓은 것을 truffle이라고 한다. 색과 모양이 아마도 울퉁불퉁한 송로버섯과 비슷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닐까.
이탈리아의 tartufo는 초콜렛 가게의 공처럼 둥근 truffles와는 다르다. 진짜 울퉁불퉁 작은 송로버섯 모양이다. 기본 초콜렛으로 만들지만 밤을 섞기도 하는 것으로 봐서 tartufo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보다 모양이지 싶다. 그리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야한다는 사실.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sale e pepe' 12월호에서 tartufi를 발견했다. 무엇보다 dolci에 열중하고 있는 내게 산 마르코에서 간간히 마음과 몸의 피로를 달래주던 그것이 어찌 반갑지 않을까. 마침 같지는 않아도 시도하기에 충분한 재료들이 있어 단순 버전으로 당장 만들어 봤는데... 모양도 울퉁불퉁, 크기도 들쑥날쑥, 모양은 충분히 이름답다.
재료가 같지 않아서 그런지, 넣으라는 설탕을 넣지않아서 그런지, 반죽이 좀 질어 만들기가 좀 어려웠고, 따라서 상온에 절대 오래 내놓지 못하지만 맛만은 어떤 chocolate attack도 두렵지않을 만큼 좋다. ^^
Cooking Note
친구들이 놀러오더니 타르투포를 넣어 두었던 통을 모두 비웠다. 요리엔 영 취미도 관심도 없는 친구가 '맛있다'를 넘어서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 묻는 것을 보니 맛이 있긴 있나보다. ^^ 초콜렛과 생크림의 비율 4:3은 냉장보관 상태로는 훌륭하지만 선물을 한다던가 하는 일은 좀 어렵다. 2:1의 비율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