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2023

영화: 서울의 봄


오랜만에 영화...

웬만하면 been there, done that... 그래서 안 보고...
맥락없는 폭력이 싫어서 안 보고...
창의력, 논리력 부족해보이는 억지를 봐줘야 하나 싶어 안 보고...
인간을, 인간 삶의 추악함과 짜질함을 그렇게 끝까지 까발려서 누구에게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안 보고...

그 와중에 봐 주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밤 마실 기분으로 저녁먹고 동네 극장에 다녀왔다...

서울의 봄...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 소재인 건가, 주제인 건가...

바른 사람들은 처절하게 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하고, 비굴하고, 악하고, 교활한 것들에게...
그리고 비열하고, 비굴하고, 악하고, 교활한 것들은
축배를 든다...
여자를 끼고, 노래를 부르고, 엉덩이를 흔들며...

탐욕만 남은 좀비에게 처참히 짓밟히고 조롱당하는 느낌... ㅠ.ㅠ

딱 지금 현실처럼...

이기는 것이 정의는 아니지만,
이기지 못하면 정의고 뭐고 없는 거지 싶다.

먼 목격자로서도 이렇게 힘든데,
당사자는 그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며 살았고 또 살고 있을까?

그리고 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다수의 무개념의 인간들...
영화 속에서도 그런 인간들이 다수 등장하고...
그런데 늘 의아한 것...
어차피 그들은 선악, 정의, 부조리 같은 가치를 구별할 능력이 없는데
왜 그들은 악에 끌리는 걸까? 왜 악의 편을 선호하는 걸까?
어차피 무개념인데 선의 편에 설 수도 있는 거잖아...

봐, 정의의 편에 서면 저렇게 처참한 꼴을 당하잖아... 라고
역사에서든 영화에서든 
개념없는 자들의 멍청한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면을 끊임없이 보여주지만
그들이 악의 편에 섰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건 왜 주목하고 지적하지 않을까?

그들이 선에 끌려서 선의 편에 섰다면 선이 이겼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세상이 아름다우려고 노력하는 세상이었겠지...

자각...

 


데스크탑이 갑자기 까만 화면에 entering sleeping mode 라는 말을 남기고
작동을 멈추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

부팅 초반에 나타나는 증세였고, 더불어 여러 증세를 보였지만,
그래도 몇번 전원을 껐다 켜면 다시 멀쩡하게 작동하곤 했었다.
아무리 봐도 하드웨어의 문제라 A/S를 부르거나, 수리점으로 들고 가야 하는데,
별 데이터는 없지만 그래도 내 자잘한 일상이 담긴 기계를 통째로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이 영 탐탁치 않아서 그냥 버텼다.
맡길 거면 데이터 다 백업하고, 하드디스크 포맷하고, 비밀번호 다 풀고 맡기라는데
그것도 하기 싫고...

이러다 완전 멈추지 싶은 느낌이 언젠가부터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 오늘이겠어 하며 써왔는데,
드디어 어제 영면에 든 것으로 보인다.

어제 따라 멀쩡히 부팅도 잘 되고, 작동도 잘 돼서 왠일인가 하고 쓰고 있는데
보통과 다른 타이밍에 sleeping mode로 빠졌다,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며...
뭔가 일이 났음을 직감하는 순간에 드는 서늘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이젠 아무리 on/off를 반복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 알겠는데
그래도 요행을 바라며 계속 재부팅... 아무런 신호가 없다.

그러고 찾아온 멘붕...
마음이 진정이 안 되고 생각도 정리가 안 된다.
어차피 오래 쓰기도 했으니 멈추면 바꾸려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도...
핸드폰 포함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다른 IT기기가 5개나 있는데도...
(큰 모니터와 키보드를 잃을 수 없다.)

검색하며 목이 마른데도 노트북 화면을 떠나지를 못한다...
왜 이래, 죽고 살 일이야? 하고 생각이 타박을 하니, 그제서야 일어나 물 몇 모금 마시고...
잘 시간을 훌쩍 넘기고 여전히 검색에 매달려 있다가...
왜 이래, 죽고 살 일이냐고? 하는 생각에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고...
눈 뜨자마자 다시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로 다시 부팅을 시도해보고 역시 영면에 들었음을 또 확인하고...
종종 백업을 해둔 데이터는 확인해보니 잃어서 아쉬울 건 없어 보여 조금 마음이 풀리고...
또 다시 노트북에 매달려서 검색...
아침도 안 먹고... 그야말고 식음 전폐...
죽고 살 일이냐는 꾸지람을 또 듣고, 어제 먹다 남은 파스타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고...

또 검색...
이것 저것 생각하기 싫고, 뭐가 뭔지도 잘 모를 땐 예산이 허락하는 비싼 게 최고...
대기업 것 살까 하다 이번에도 델로...
영면에 든 델의 부실한 하드웨어 데여서 다시는 델을 안 사려 했건만... ㅠ.ㅠ
왜 하필 델이 내 취향하고 제일 맞느냐고???

너무 결정이 빠른게 아닐까 좀더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니니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지만
더 검색해봐야 뾰족히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지 않고...
바꾸고 싶었던 모니터까지 주문 완료...

그러고 나니 좀 속이 풀리고...
뭔가 다른 게 좀 손에 잡힌다..
아마존에서 주문해 먹는 비타민도 주문하고,
밥 먹고 동네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장도 보고, 월동준비도 하고...

1박2일의 멘붕...
독립적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실상 다른 뭣도 아닌 기계에 이렇게 의지하며 살고 있더라는 당황스러운 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