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2007

truth, the whole truth





'the truth, the whole truth, and nothing but the truth'

어떤 나라 법정이 증언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라 한다. 부분적 사실로 왜곡된 진실에 심심치않게 분노하는 현실에 참 감동스러운 표현이었다. 맞다, 사실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어야 진실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느새 일년도 넘은 일이 되어버렸다. 아뭏든... 요즘, sensible한 외모의 dolci 선생님이 추천해준 책, The Professional Chef 8th edition,에 반했다.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방치 당하고 있었는데, Hell's Kitchen에 매번 등장하는 beef wellington의 조리법을 이 책에서 얼핏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들췄다가 감동하여 팔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즐겨 보는 책이 됐다.

요리책들을 많이 보다 보니까 어떤 공통적인 느낌이 있다. 대부분이 진실을 말하고 심지어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파고 들면 the whole truth는 살짝 숨긴다 싶은 인상이다. 그런데 이 책은 사뭇 그 느낌이 다르다. 요리학교의 교재라 한개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인지, 저자로서의 기본 양식인지, 아니면 그냥 프로로서의 자존심인지, 내용이 진지하고 풍부하고 분명하고 투명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단지 풍부하고 잘 정리된 지식이 이런 책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란 것이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요리책일지라도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편협함, 고려청자의 빛 마저도 영원히 재현할 수 없게 만든, 나만의 비법은 며느리도 몰라야 한다는 생각에 머무르는 사회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책이지 싶다.


머랭


요리에서도 법이 있지만 그야말로 참고사항 내지는 권장사항일 뿐 하는 스스로의 stake하에 얼마든지 취향에 따라 아니면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해도 좋은 것이 요리다.

요리가 과학이라고는 하나 rocket science는 아니다보니 뭐 그리 복잡하고 어렵지는 않지만 그나마 제과부문이 가장 체계적 과학적으로 조리법이 정리됐을 뿐 아니라 이해해야할 원리들이 꽤 있다.

한 친구는 제과 실습실에서 계량을 회피하려다 chef에게 주걱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30년 경력의 자신도 저울과 온도계를 쓰는데 감히 배우는 자가 눈대중과 손맛을 자랑하다니... chef로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겠지. 그리하여 창의력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하라는 대로 충실히 따라할 뿐만아니라 공부를 좀 하며 전통과 기본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 이 부분의 morale이다.

따라서 단 것에 관한 공부를 할 땐 겸손한 학생이 된다. 300:50 = 100:x. x=? 반올림까지 해가며 조리법에 가장 근사한 양을 구하려는 산수도 종종 하고 별것도 아닌 것 같은 jargon도 열심히 기억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붙는지 재밌다. 아니면 실험을 즐기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 즐거워하는 타고난 학생기질 때문에 그런지...

최근의 발견은 세가지 버전의 머랭. 계란 흰자를 설탕과 섞어 거품을 낸 것. 다른 것과 섞어서 크림도 만들고, 구워서 쿠키도 만들고 케잌도 만든다. 프랑스식식과 이탈리아식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또 다른 방법, 스위스식도 있었다.

프랑스식은 계란 거품을 좀 내다가 설탕 솔솔 뿌리며 거품을 내고
스위스식은 계란과 설탕을 섞은 후 중탕으로 덥혀서 설탕을 완전히 녹인 후 거품을 낸다.
이탈리아식은 설탕을 나누어 프랑스식으로 하다가 나머지 설탕으로 만든 시럽을 부으며 거품을 낸다.

어차피 머랭인데 쉬운 프랑스식으로 하면 되지 다른 번거로운 방법은 왜 책마다 소개되는 것일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우선 food safety 때문이다. 이탈리아식이나 스위스 식은 계란을 익히지는 않아도 계란이 안전한 온도까지 온도를 올려서 만들기 때문에 생크림으로 사용해도 안전하지만 프랑스식은 완전 날 것이라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크림입자의 곱기와 지속되는 정도가 시럽을 만들어 넣는 이탈리아식이 훨씬 더 좋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머랭을 익히지 않은 상태로 오래 두어야한다면 이탈리아식으로 만드는 것이 안정적인 것이었다.

조만간 온도계를 장만할 이유가 생겼다. ^^

12.22.2007

꽃이 피었다



화려한 꽃이 주렁주렁 지나치게 피었다 싶은 양란 화분들이 한번 꽃이지고 나서는 몇 년이 지나도 잎만 무성하고 좀체로 꽃을 피우지 못해, 양란은 화원에서나 피는 꽃인가보다 했는데... 아파트로 이사온 후 꽃대가 쑥쑥 올라오더니 드디어 꽃을 피웠다. 단독주택에 살면서 한번도 양란이 스스로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진짜 신기하다.

난생처음 대한민국식 아파트 살이. 앞 건물에 가려 하늘도 안보이고, 아침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어렵다. 마지 못한 선택이지만 '에휴.. 대한민국에서, 도시에 사는 한 별수 있나', '편하긴 하다' 하며 마음을 달래지만 맘 한 구석 늘 서운했는데, 오랫 동안 못 피우던 꽃을 당장 피우게 할 만큼 어떤 존재에겐 훨씬 나은 생존 환경이기도 한 걸 보니 그 동안의 서운함이 좀 누그러든다.

베이글


베이글을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한번 만들어야지 하다가 드디어... 아마 어제 빵집 아줌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베이글 두 개 계산하는데 10분을 기다리게 하길래 그냥 와버렸다.

어제 오후부터.. 내가 만든 베이글로 다음날 아침을 먹는 행복을 상상하다 하다가 '오븐에서 바로 나온 것을 먹으려면 아침에 해야지... 일찍 서두르면 아침으로 베이글을 먹을 수 있을 꺼야' 하며 오후에 할까 하다 다음 날로 미뤘다. 사실, 몸은 게으르고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워서라고 할 수 있지.. ^^

머리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처음 해보는 베이글을 느지막히 일어나 만들어 아침으로 먹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한 일이라는 것을... 아예 밥통에 조금 남은 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시작했다.

겨우 파이 반죽이나 할 만한 반죽기로 빵 반죽을 하려니 이건 말 그대로 씨름이다. 밀가루와 반죽이 좀 여기 저기 튀긴 했어도 언제나 사먹을 줄만 알았던 그 맛있는 베이글을 만든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간단한 일이라, 오븐에서 나온 따끈한 베이글로 행복한 점심이 가능하다.

빵굽고,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고, 내일 친구들이 온다해서 메뉴 짜고 닭 뼈 바르고(닭아, 미안해), 남은 뼈로 육수 끓이고, 무료 메가TV 영화 한편 감동스럽게 보고 나니, 배는 고프고 decent한 저녁을 준비할 여유가 없다. 흑흑... 하지만 곧 하하... 나에겐 베이글이 있다.

크림치즈 듬뿍 바른 베이글과 커피가 마시고 싶었지만 대신 우유에 깔루아 조금 넣고 커피를 참는다. 음~~~ 점심에 무리해 먹고서도 또 맛있어 한다. 물에 너무 오래 익혀 구웠는지 질긴 갈비 못지않은 것이 이렇게 마냥 좋은 것은... 맛보다는 아마도... 아침 베이글과 크림치즈, 커피를 시시때때로 그리워하는 내 마음인 것 같다...


Cooking Note:
Yahoo food에 있는 Emeril의 recipe를 보고 하다가 깜짝... 물의 양이 너무 많고 이스트도 너무 많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밀가루 500g, 소금 4g, 물 300g의 비율로 반죽 했다. 이스트는 생효모로 7g을 설탕 1ts와 미지근한 물에 풀어 했는데 한 시간 안에 두배로 잘 부풀었다. 나머지는 그대로... 소금은 꽃소금을 넣었는데 좀 싱거운 듯...

12.11.2007

섭산삼




섭산삼, 궁중음식을 배우기 전엔 들어본 적 없는 음식 이름일 뿐만아니라 이름만으론 어떤 음식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산삼이라 하지만 재료는 더덕이고, '섭-'은 접두어는 다지거나 으깨서 조리한 음식에 붙는 접두어란다. 섭산삼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더덕 튀김이다. 더덕을 튀긴다? 맛이 궁금해지지않을 수 없을 만큼 재료와 조리법의 조합이 생소하다.

과연 그 맛이 어떨까 궁금함에 못이겨 튀기면서 불 옆에 서서 한 입 먹어본 순간의 감동... 순해진 더덕향에 따뜻하고 파삭하고 고소하고 달큰하다. 이렇게 소박한 재료와 단순한 조리법으로 이렇게 delicate한 맛이 나온 다는 것이 감동스럽기만하다.



더덕을 끓는 물에 살짝 담갔다 건져 껍질을 까고, 살살 두드려 부드럽게 한다. 소금물에 잠시 담가 쓴맛을 좀 빼고, 건져 물기를 거둔 후, 찹쌀가루를 앞뒤로 골고루 묻혀, 기름에 보기좋게 튀긴다.


Cooking Note

설탕을 살살 뿌리거나 꿀을 찍어 후식으로 먹는다지만 튀긴 그대로도 충분이 맛있다. 꿀을 찍으니 향이 약한 아카시아꿀임에도 불구하고 향이 너무 짙게 느껴다.

술 안주로는 초고추장을 찍는다는데, 소스의 맛이 너무 강하지 않을까 싶다. 연한 간장소즈나, 아니면 그대로 무즙 넉넉히 넣은 시원한 모밀국수 한 그릇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다음날 식은 것을 초고추장에 찍었는데 짐작과 다르게 그 맛 또한 좋다. 역시 맛은 먹어봐야 안다.^^)


12.10.2007

tartufo (타르투포)



tartufo 또는 복수로 tartufi. 송로버섯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영어론 truffle(트러플).

초콜렛 가게에 가면 작은 공모양 초콜렛 안에 여러 가지 크림 등을 넣고 겉에 이것 저것 묻혀놓은 것을 truffle이라고 한다. 색과 모양이 아마도 울퉁불퉁한 송로버섯과 비슷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닐까.

이탈리아의 tartufo는 초콜렛 가게의 공처럼 둥근 truffles와는 다르다. 진짜 울퉁불퉁 작은 송로버섯 모양이다. 기본 초콜렛으로 만들지만 밤을 섞기도 하는 것으로 봐서 tartufo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보다 모양이지 싶다. 그리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야한다는 사실.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sale e pepe' 12월호에서 tartufi를 발견했다. 무엇보다 dolci에 열중하고 있는 내게 산 마르코에서 간간히 마음과 몸의 피로를 달래주던 그것이 어찌 반갑지 않을까. 마침 같지는 않아도 시도하기에 충분한 재료들이 있어 단순 버전으로 당장 만들어 봤는데... 모양도 울퉁불퉁, 크기도 들쑥날쑥, 모양은 충분히 이름답다.

재료가 같지 않아서 그런지, 넣으라는 설탕을 넣지않아서 그런지, 반죽이 좀 질어 만들기가 좀 어려웠고, 따라서 상온에 절대 오래 내놓지 못하지만 맛만은 어떤 chocolate attack도 두렵지않을 만큼 좋다. ^^

Cooking Note
친구들이 놀러오더니 타르투포를 넣어 두었던 통을 모두 비웠다. 요리엔 영 취미도 관심도 없는 친구가 '맛있다'를 넘어서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 묻는 것을 보니 맛이 있긴 있나보다. ^^ 초콜렛과 생크림의 비율 4:3은 냉장보관 상태로는 훌륭하지만 선물을 한다던가 하는 일은 좀 어렵다. 2:1의 비율이 좋을 것 같다.


12.09.2007

초코칩 머랭 쿠키


때 마침 인터넷에서 초코칩을 넣은 머랭 쿠키 만들기를 발견.

일요일 아침 놀러온 어린 조카, 오븐안에 있는 쿠키를 이제나 저제나 들락달락 눈빠지게 기다리더니 다 되자 마냥 신이 났다. 애타게 기다려주는 것만도 좋은데 들이댄 카메라 앞에 쿠키 몇 조각엔 과분한 포즈를 취해주기 까지 한다.





Cooking Note
재료:
계란 흰자 1개(40g) - 계란 1개에서 흰자만 사용.
설탕 60g (계란의 1.5배)
초코칩 100g
소금 약간.

만들기:
흰자에 소금을 조금 넣고 거품기로 저어 계란이 어느 정도 풀리면 계속 거품기로 저으면서 설탕을 조금씩 넣어준다. 거품이 단단해지면 초코렛 칩을 섞은 후 오븐 용기에 숟가락으로 적당한 크기로 떠놓고 105도의 오븐에서 1시간 동안 굽는다. 그런데 오븐마다 약간씩 달라서 가지고 있는 오븐에 따라 온도며 시간을 약간 조절해야 할 듯. 모양과 높은 온도에서 구웠던 것에 비해 맛이 좀 덜한 것 같아 다음엔 120도 쯤에서 구워볼 생각이다. 초콜렛칩도 양이 너무 많다. 한 2/3로 줄여도 될 것 같다.

12.04.2007

머랭, 메링가, 메링게


meringa, 메링가 또는 복수로 메링게(meringhe), 이탈리아 밖에서는 머랭(meringue)이라고 한다. 쿠키처럼 먹기도 하고 케잌을 만들기도 하고 파이를 장식하기도 한단다.

새털처럼 가볍고 입안에서 파삭 부서지며 달콤하고 부드럽게 녹는 머랭. 하지만 만드는 사람으로서 머랭의 매력은 재료가 무지 간단하고 만들기가 쉽다는 것. 계란 흰자와 설탕이 필요한 재료의 전부.

그래서 메링가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쿠키로 먹기위한...

* * *


계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하여 흰자만 사용하여,

계란 흰자의 무게를 재고 맞추어 설탕의 양을 재고 (설탕:계란흰자 = 2:1),

계란과 설탕을 섞어 눈처럼 희고 단단한 크림 상태가 될 때까지 거품을 내어,



짜주머니에 거품을 넣고 오븐용기 위에 크림을 보기 좋게 짜 놓은 후,



100~110도의 오븐에 90분간 구우면 끝.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 됐는데 복병이 나타났다. 오븐을 150도보다 낮은 온도로는 맞출 수가 없는 것. 할 수 없이 최저 온도 150도에서 40~50분을 구웠더니 눈처럼 희고 속이 꽉 차야 할 것이 갈라지고 갈색 빛이 돌게 됐지만, 맛본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보기보다 맛은 좋은 쿠기가 되었다.



유자 화채


유자 화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니 향이 입안 가득하다.
흰 배, 노란 유자, 그리고 석류 몇 알에 향기만큼 빛깔도 곱다.
어떤 상차림이든 마지막 유자 화채 한 사발로 더 바랄 것 없게 만들 것 같다.



* 석류와 유자: 있는 그대로 자연의 빛깔이 얼마나 예쁜지... *


* 석류 알알이 따고, 유자 껍질 벗겨서 흰 속 껍질과 노란 겉 껍질을 따로 따로 채썬다 *


* 여기에 배를 채 썰어 같이 넣고 설탕, 꿀, 올리고당 등으로 취향껏 단 물을 만들어 부으면 향긋하고 빛깔 고운 유자화채 완성. *


Cooking Note
  • 먹기 전 잠시 두어 단 맛이든 향이 골고루 베게 한다.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3~4일 두고 먹어도 좋다
  • 유자와 배의 비율은 1:2 또는 1:3 정도가 적당하지 싶다. 유자가 많으니 향이 너무 진하다 싶기도 하고, 유자 껍질의 쌉쌀한 맛에 달콤함이 좀 묻히는 것 같기도 하다.



11.23.2007

재밌는 파스타집


비가 온다. 개기일식인가 싶게 깜깜한 하늘...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세운 계획들이 모두 불발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은 그 사람이 출타 중이고, 시장 구경과 쇼핑은 험한 날씨 탓에...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7분 거리에서 살다가, 걷고 마을버스 타고 30분여 거리로 이사온 것 또한 칩거의 습성이 있는 날 더욱 콕 박혀있게 만든다.

이사 후 맘 편히 집을 비울 수 있게된 엄마는 김장을 핑계삼아 3박4일 큰 아들네 나들이를 가시고, 난 홀로 비오는 창을 바라보며 daydreaming???

다시 이탈리아로 떠난 착한 x-방짝 B양이 항공우편으로 요리 잡지들을 보내주었다. 기진맥진 소파에서 좌우로 번갈아 누워가며 많은 시간을 보내다 눈이 번쩍 뜨인다. 학교에 있을 때 초청 chef로 와서 희한한 요리를 보여주고 간 luca를 lombardia음식 특집편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못봤던 가을 재료, 가을 접시도 반갑고... 페이지를 넘기며 마냥 신나다 그리움이 번지며 맘 한구석이 아릿하다. 이 심사의 정체는? 이탈리아의 빛과 색과 바람일까? 하다가, 아니 그것 보다는 갇힌 새의 하늘을 날던 기억이 아닐까...에 생각이 미친다.

B양에게 '급한 것도 아닌데 배로 보내지 뭘 비행기를 태워...'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배로 보내려고 했는데 해상화물 쪽 사람들이 일이 너무 많다고 더 이상 우편물을 받지 않겠다 해서 우체국에서 당분간 해상화물을 접수할 수가 없다고 하더란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이탈리아 우체국에서 배로 소포를 부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안되도 되게 해야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 일 앞에 잠시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혀 분노하고 흥분하지만 이내 이탈리아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 상태가 된다. 그러다 시간도 좀 지나고 또 반복적으로 그런 일을 겪다보면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그럴 수도 있지. 돈 좀 더내고 비행기로 보내면 되잖아' 하며 이해를 하고, 심지어 더 나아가서 '그들이 옳아. 안되는 것은 안된다 인정하는 그들의 여유... 부러워~~'하며 동경의 상태까지도 된다. 이탈리아 사람들... 때로 마냥 대책없어 보이는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속도로,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길들인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찾은 수지 모처의 이탈리아 분식집(^^)이 무척이나 이탈리아스러웠다. 토마토 소스도 안 얹고, 바질리꼬 대신 루꼴라를 올리고, 파마잔 치즈까지 뿌린 피자를 마르게리따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맛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름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진지하게 이탈리아식을 추구하는 부엌은 아닌 것 같은데 주인 아저씨의 스타일 또는 정신은 너무 정통 이탈리아노다.

만들기 어렵고 오래 걸린다며 고르기 위한 고민이 무색하게 과감히 주문을 정리하고, 추가 주문은 불가능하다 잘라 말하고, 오래 걸리니 양해를 해달라 보다는 그런 줄 알라는 식이고... 예약도 안받고, 예약하려는 전화일까봐 아예 전화도 안받는다 하고, 언제면 확실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장담도 못한다하고, 주문을 할 때면 모두에게 음식 늦게 나와도 괜찮다는 다짐을 받고, 7시 조금 넘으니까 몇 테이블 받지도 않았는데 재료 떨어져 더 이상 음식을 못한다며 줄줄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되돌려 보낸다. 지나가다 들렸다기 보다는 구석까지 찾아온 손님들인데, 미안할 법한 일이 많기도 한데 말투만 약간 어눌하고 차분할 뿐 미안해하는 기색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과의 시비는 커녕 불평이나 투덜거림 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 순한 양떼다...

재료며 맛이며 음식은 그저 평범하고 값도 평범하고 하지만 분위기는 독특하다. 일벌레 김모언니조차 테이블 맡으려 칼퇴근을 하고, 음식도 시키라는 대로 시키고, 갖다 먹으라면 갖다 먹고, 부대찌게도 아니고 파스타를 양해는 커녕 고지도 없이 한 접시에 2인분을 줘도 2인분이냐 1인분이냐 우리끼리만 궁시렁댈 뿐 주인 아저씨께는 군소리 한마디 안하고, 추가 주문도 안된다니 '먹고 죽지 뭐' 하며 미리 잔뜩 시키고... 얼마든 기다릴 각오하며, 너무 늦게 나오지 않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하고... 나오는 길엔 현재 방식 '내멋대로~'를 유지하며 성공적일 수 있는 나름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기도 하고... 어디서 우리가 그렇게 대충 서비스 받아도 마냥 흐뭇한 호락호락한 소비자였단 말인가.... 어디 우리만 그랬겠나, 거기 가는 사람들은 다 그랬겠지.

위협적인 인상도 아니고 천하일미도 아니고... 느리고 어눌한 말투와 삼가는 분위기(?) 정도로 서울 언저리의 성마른 소비자를 천하의 순한 양으로 길 들여버렸다. 뿐만아니라 그 곳을 지키자는 팬들까지도 생겨나고 있단다.

내 멋대로 살며, 동네에 분식집 분위기의 파스타집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가진 나로서는, 번보는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분명 한 수 배우고 싶은 business attitude였기에 불만은 커녕 오히려 흥미롭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소위 손님들의 태도는 더 흥미롭다.

주인 아저씨의 말투만 곱지 알고 보면 내용은 험한 말들을... 다 알면서 그곳을 들르다 못해 팬이 되는 사람들. 내 기준 내 방식 보다는 주어진 것을 따라야하는 시대를 살다보니 서툴어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고, 그래서 마치 아저씨 일이 내 일인양 걱정하고, 이해하고, 응원하고, 나도 몰래 돕고 싶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 흐뭇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뜨게 되는 것이 아닐까...


10.29.2007

우리의 뜻을 다시 한번 밝힌다.



교지, 써클 소식지, 돌리고 남은 논문 등을 넣어둔 상자 속에서 '우리의 뜻을 다시 한번 밝힌다. (전국 교수 시국 선언문)'라는 제목의 인쇄물 발견.

하하... 상자 속에 고이 보관한 이것이 무엇이란 말이야... 날짜도 없고, 언제인지 기억도 없다. 종이 는 누렇게 뜨고 가장자리가 너덜너덜 하다. 분위기로 보아 아마도 87년 전후 즈음에 생산된 불온문서(?)지 싶다. 타자 글씨체에 등사기로 밀고, 나름 멋은 있지만 인쇄 질이 별로 높아보이지 않는 것이, 뭐든 색안경을 쓰고 보던 시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불온한 냄새를 확확 풍긴다.

멀지 않은 과거인데 이런 비장한 선언이 필요할 만큼 억압적인 시대였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비장하다고는 하나 완곡하기 그지없는 교수님들의 문구에 해방감을 느낄만큼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느끼며 그 시절을 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교정 어느 구석이었겠지만 길에서 주운 불온문서^^에 감동하여 가방에 챙겨와서 고이 보관한 청년 '나'의 모습이 반갑고 흐뭇하다. ^^

하지만 20년을 고이 보관했던 선언문은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다시 20년이 흘러 문득 40년 전의 나를 발견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반갑고 흐뭇하겠지만, 한 동안 까닭 모르게 쌓여있는 것들과 씨름을 하다보니 아무리 가벼운 종이 두장이라 하더라도 무게와 부피가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지가 않다, 다시 그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10.28.2007

추억


이사가기 전 마지막 주말.
할머니의 이사를 알게 된 후 간간히 할머니 집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더니, 오늘은 할머니 집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며 모두 따라 나선다. 다신 못오겠다 하길래, 여기 살게되는 수녀님이 나중에 놀러와도 된다고 했다 하니 '진짜?' 하며 표정이 한껏 밝아진다. 무언가가 과거가 된다는 것이 미래 말고는 모를 것 같은 어린 녀석들에게도 서운한 일인가보다.

모두 몇 년 씩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있는 할머니 집. 지렁이, 메뚜기, 잠자리, 달팽이, 나비, 벌레들, 곤충들, 고양이, 꽃, 풀, 나무, 돌맹이, 포도, 감... 손바닥 만한 마당이지만 호기심 넘치고 천진한 녀석들을 즐겁게 해줄 만한 것들은 언제나 충분했고, 어른 들에겐 세월이 쌓아놓은 그다지 쓸모도 없고 버리기도 쉽지않은 귀찮은 것들에 불과하지만 녀석들에겐 신기하고 재미있는 놀잇거리인 온갖 잡동사니들이 여기 저기 들치기만 하면 나타나는 곳이기도 했다.

오는 차 안에서는 안도 밖도 모두 사진을 찍겠다는 둥 잠시라도 경건히(?) 보낼 것 같은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더니,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짐 정리에 뭍어 밖으로 나와 여기 저기 널려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취향껏 제멋대로 신나는 놀이에 빠진다.

짧지 않은 삶의 반을 살았던 공간과의 이별(?)을 앞에 두고 까닭 모르게 불안, 초조, 섭섭, 심란... 마음을 어떻게 종잡을 수가 없는데 무엇이든 밝고 맑게 담기는 녀석들의 마음 덕에 즐거운 추억 한 조각이 늘었다.


* 모두 머리에 쓰는 것으로 보였는지 일단 쓰고 본다.. ^^ 이 것의 이름은 용수, 익은 술 독에 박아 술을 거른다. *



* 심은 것, 씨가 퍼진 것.. 때가 되니 여기저기 국화가 폈다 *


* 세 녀석이 물려쓴 주워온 자전거. 훨씬 크고 좋은 자전거가 있음에도 아기 때 타던 낡고 때탄 것을 아쉬워한다. 고모가 사진으로 남겨줄께..^^ *


* 높기만 한 감... *


* 과연 형아가 감을 따 줄 수 있을까??? *


* 형아가 목마 때워줄께. 네가 따... *


* 누나, 빗자루 타고 소금 얻어올께 *


* sweet tooth를 가진 우리 수O, 소금 대신 설탕으로 주면 안되요??? *


* '고모, 그런데 쌀이 밖으로 다 나가면 어떡해?' '어떡하긴... 시어머니에게 당장 쫓겨나지..' 뭐든 열심히하는 녀석... 팔 아프다고 하면서도 쫓겨나지 않을만큼 키질을 할 수 있게 되고 말았다. ^^ *


* 꼬마 마법사??? 왠지 빗자루만 보면 자꾸 타게 되더라... *



10.02.2007

맛있는 일기



같이 살던 조카의 분가. 녀석의 짐을 챙기는 것을 돕다 일기장 뭉텅이가 발견됐다. 2~3년간 매일 저녁 극성맞은 고모의 닦달로 남겨지게 됐다는 슬픈 사연이 있는 일기장들. “오늘은 삼겹살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오늘은 할머니께서 비비큐를 사 주셨다. 참 맛있었다. 오늘은 자장면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하하하, 깔깔깔. 마지못해 할 수 없이 썼던 티가 역력하지만 그 와중에 녀석의 천성이 묻어 나온다. 별 것 아닌 접시 앞에 두고 마냥 행복해지던 천진했던 시절의 모습에 나도 녀석도 모두가 즐거웠다.

속 모르는 남들 보기에 멀쩡한 회사를 그만 뒀다. 모두 월급쟁이의 신세타령쯤이라 생각했던 식당 차리겠다는 말을 실행하겠다며... 그것도 이탈리아 식당을, 그것도 처음부터 배워서... 그리고 조리 복에 앞치마 입고 나서더니, 이역만리 이탈리아까지 가서 초등학생 조카 녀석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기를 나도 썼었다. 두 줄을 넘지 못했던 녀석의 일기는 유전...

산해진미도 아닌 음식에 더없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소년의 마음으로나 가능한 일. 잠시 만사를 접어두고 지친 마음을 달래던 시간의 기록. 단순하고 행복하고 싶었고 단순하고 행복했던 순간의 기록.

녀석의 일기도, 내 일기도 맛있게 이어지는 삶이길...


9.30.2007

치즈: 모짜렐라와 프로슈또를 얹은 포카챠



Roma,장이 선 Campo dei fiori(꽃 광장) 한쪽의 cafe`. 뒤로 희미하게 상인들이 보인다.

focaccia(포카챠)라는 이탈리아 빵 위에 손으로 썰어 두툼한(? 상대적으로) prosciutto(프로슈또)와 모짜렐라 치즈를 얹었다. 달콤하고 향기롭기도 하지만 색깔 때문에 더욱 좋아하는 brachetto 한 잔은 테이블 위에 루비처럼 빛나고...

9.29.2007

치즈: quatre fromages



빠리 오르세 미술관 앞의 작은 bistro. 실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기 보다는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한 긴 줄을 어떻게든 좀 피해보고 싶어 들어가 앉았다.

오래 전이긴 해도 불어를 배운 적이 있는데 메뉴판 정도야... 했던 자신감은 빠리의 메뉴판을 볼 때마다 번번히 좌절이지만 이 집은 미술관 방문 관광객을 배려해서 그런지 메뉴가 국제적이라 더러 이해가 가는 것들이 있다.

그 중 네 가지 치즈를 얹었다는 'quatre fromages(네가지 치즈) 피자'가 눈에 뜨이는데 빠리답게 crepe로 만들어 주기도 한단다. 얹었다는 치즈는 브리, 블루, 까망베르 그리고 하나가 뭐였더라.. 하옇든 별로 두렵지 않아 보이는 것들. 그래 이걸 먹어보자 하고 시켰는데....

접시가 소박해(?) 보이는 것 쯤이야 뭐 하고 한입을 먹었는데 그 맛은? 한마디로 '와~~~'. 이 맛에 비하면 이탈리아의 치즈들은 차라리 달콤하다. 짜고 쓰고 퀘퀘하고 떫고... 달고 고소한 맛을 뺀 나머지 맛들은 모두 난다 싶다.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고 프랑스 사람들은 진짜 이 맛을 즐길까 싶을 정도로 맛이 강하다. 본 고장의 치즈라 그런지 같은 이름의 치즈라도 다른 나라에서 먹는 것에 비해 맛과 향이 X(곱하기)3 정도는 더 강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 침이 고이고 다시 한 입 베어물고 싶은 이 마음은... 확실하게 지금 많이 허기졌다. 다음에 또 갈일이 있으면 다시 시켜볼것 같기도 하고... ㅎㅎ)


치즈: Roquefort



이탈리아에 gorgonzola가 있다면 프랑스엔 roquefort(로커포르라 읽는 것 같다. 불어는 당최 읽기가 어려워서.. ^^)가 있다는 푸른곰팡이가 들어간 치즈 대표 선수 중 하나. 그 맛이 궁금하다. 옆의 bleu(blue)와 보기엔 별 다를 것이 없는데 맛은 어떻게 다른지...
먹는 것에 관한한 끝이 없는 내 관심. ^^

조금 전까지 단식하겠다고 한참이나 정보의 바다를 헤엄쳤는데 과연 그것이 내게 가당키는 한 일인지.. ㅎㅎㅎ


치즈: 빠리의 염소젖 치즈들






미식의 도시 빠리의 창에서 발견한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들.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전시된 치즈도 예쁘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시큼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역한 냄새로 먹기 어려웠던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 그들에겐 그게 맛있나보다.

이 순간에 입안에 침이 고이는 건 조건 반사일까 아니면 운동 후 저녁까지 어떻게 참아보려는 허기짐 때문일까? ^^


9.27.2007

격세지감


이사를 위한 청소를 하다 삼천포로 빠졌다. 묵혀둔 것들을 들척이다 발견한 내용... 진짜야? 싶은 것이 재밌다.

20세기의 극심한 사회변화는 우리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90년 전 한 미국 대학교의 신입생 규칙을 보니 그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대엔 코메디 같은 규칙의 어조는 어찌나 진지하고 엄숙한지... ^^

담배도 안되고, 술도 안되고, 학교에서 여자들과 히히낙낙하는 것도 안된단다. 극장에서 좋은 자리에 앉는 것도 안되고, 전차에서는 윗사람이나 숙녀들을 서게 하면서 좌석에 앉는 것도 안되고... 캬바레도 못가고, 까페도 못가고...


* * *

Ninety years ago the Freshmen Rules were officially adopted on September 30, 1916 when a special Student Council committee was granted permission from the Medical Faculty to enforce the rules. The committee consisted of the president of the senior class, the presidents of the three respective medical fraternities and one non-fraternity man elected from the student body at large.

The Freshmen Rules of 1916

  1. A freshman is any student spending his first year in any Deparment of the University and who is eligible for freshman teams.
  2. Each and every freshman shall wear at all times, except Sundays and special occasions, a cap of the following description: A blue skullcap with a white button. All freshman must have caps by October 7th.
  3. No freshman shall smoke in or about the building nor shall he smoke a pipe on the streets of Buffalo. The smoking room in the Medical building is for upperclassmen only.
  4. No freshman shall indulge in alcoholic liquids, nor shall he be allowed in the G.A. or in any of the cabarets or cafes of Buffalo, unless accompanied by an upperclassman.
  5. Freshmaen must not flirt with girls during school hours.
  6. No freshman shall be permitted to sit in the first six rows, or in the boxes of any theatre unless accompanied by parents or upperclassmen.
  7. No freshman shall occupy a seat in a trolley car when by so doing a lady or an upperclassman may be obliged to stand.
  8. Painting or otherwise defacing the buildings or equipment of the University is forbidden.
  9. All freshmen shall be in their rooms by 11:30 p.m.
  10. No freshmen shall wear a moustache, nor shall he preparatory school in any manner, nor shall he wear any emblem or insignia of that institution.

It is incumbent upon freshmen to remember and observe these rules without having to be spoken to by upperclassmen.


9.26.2007

다시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일



다음에 올 때는 꼭 고모의 생일 선물을 들고 와야한다는 으름장에 '고모 뭘 사주지?', '고모는 뭘 좋아해?' 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살짝 보여준 것 만으로도 모두 용서(?)해주려 했었는데 그 녀석들이 실제 생일 선물을 들고 왔다. 역시 귀여운 녀석들.

한 문장을 '고모/ 생일축하 /해요'로 셋이서 나누어 썼단다. 고모를 담당한 진O. 역시 예사롭지않다. 호시탐탐 동생 놀릴 기회를 노리는 한 살 위 형의 활약의 흔적도 보이고. 하하하...

내년 이맘때 쯤엔 어였한 학생이 되어있을 진O. 앞으로 이런 귀여운 생일 축하 메시지는 받을 수 없겠지.

고슴도치 고모는 별것이 다 기특하고 사랑스럽고 아쉽기만 하다.

제 삶을 온전히 선택하고 사는 일...


>> 삶의 열정을 이야기하는데 왜 하필 뉴욕이어야 했나요?

뉴요커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뉴욕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죠. 전세계에서 꿈을 안고 뉴욕으로 모여 든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 사는 게 쉬울까요?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뉴욕으로 모여든 이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겠다고 삶을 결단한 사람들이지요. 뉴요커들을 보면 제 삶을 온전히 선택하고 사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 같지 않습니다. 저는 뉴욕이 세계의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도시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뉴요커가 가슴에 품고 있는 삶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여행기를 출간한 어느 여행가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



제 삶을 온전히 선택하고 사는... 그리하여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자신의 실력과 노력에만 의지하며 무한히 경쟁하고 우정을 나누고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맞다. 그래서 뉴욕이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9.22.2007

video: who wrote the bible?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밤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프로그램 '성서의 근원을 찾아서'. 원제는 'who wrote the bible?'. 영국의 신학자가 기독교 성서의 출판 경위 또는 과정을 쫓는 다규멘터리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야 그다지 신선할 것 없는 내용일지 모르지만 단순 무식의 세계에 살아온 내겐 일종의 충격이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도 아무도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학자로서의 책임감으로 불경죄를 감수(?)한 것일 수도,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TV'라는 아주 조작된 매체에 의존하고 있는 나같은 '류'의 사람들을 위하여...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럽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분위기는 simple, straightforward, & cool하다. (왜 이리 느낌이 사는 국산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지... T.T)

당시 다시 보고 싶어서 KBS에 문의 하고 온 인터넷을 뒤졌지만 구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 아침 우연히 구글에서 발견. 걸려있는 링크로 보아 이슬람교 쪽에서 propaganda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심히 유감이지만 어느 종교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한 번쯤 봐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9.17.2007

타지마할



Sunny의 눈에 비친 타지마할...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아무리 얽힌 사연이 애절하다 해도, 세계 몇대 불가사의라해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 해도 아무런 호기심도 관심도 없이 스치고 흘려보내던 대상을 친구가 출장 길에 찍어보낸 사진 몇 장으로 비로소 눈길을 멈추고 바라본다. 그리고 그제야서야 넓은 평원 위의 거대하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하얀 대리석(맞겠지?) 구조물에 눈이 부시다.

무언가 내게 어떤 의미가 되는 과정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근거없고 맹목적인지... ^^


9.09.2007

노래: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가끔 매번 들어도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있다. Simon & Garfunkel의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still after all these years'라는 귀절을 따온 노래이기도 하고...

곡은 공유할 수 없고, 가사만...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I met my old lover on the street last night
She seemed so glad to see me, I just smiled
And we talked about some old times and we drank ourselves some beer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I'm not the kind of man who tends to socialize
I seem to lean on old familiar ways
And I ain't no fool for love songs that whisper in my ears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Four in the morning, I'm tapped up and yawning, longing my life away
I never worry, why should I, oh yeah, it's all gonna fade

Now I sit by my window and I watch the cars roll by
I fear I'll do some damage one fine day
But I would not be convicted by a jury of my peers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Still crazy, still crazy,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




치즈: fonduta




퐁듀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가 폰두따(fonduta)이다. Firenze에서 피렌체 대학 근처의 작은 cafe`에서 뭐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세가지 치즈로 만든 fonduta와 빵 몇조각, 그리고 물 컵에 chianti와인 한 잔으로 점심을... 신선한 과일이 몇 조각 말고는 아쉬울 것이 없는 식탁이다.

치즈: gorgonzola소스의 뇨끼




Tortona에서... 작아도 부엌도 있고 슈퍼도 가깝고.. 왠만하면 레스토랑 음식이 먹고 싶지않아서 간단히 뭔가를 만들어 먹곤 했다.

이날은 고르곤졸라 치즈, 아스파라거스, 생크림, 검은 후추로 소스를 만들어 gnocchi를 살짝 버무렸다. 코스가 아닌 한접시 음식이라 아스파라거스도 뜸뿍 넣어... 느끼하고 꼬리꼬리한 맛...

슈퍼에 쌓여있던 온갖 치즈가 그립다.



9.04.2007

복숭아쨈


과일을 좋아하면서도 먹기에 부지런하지 않아 마지막 순간에 처치를 당한다. 이번엔 복숭아. 설탕에 한나절을 재워 쨈을 만들었더니 과육이 살아있는 소위 '마르말레이드'라는 것이 되어버렸다. 과일을 대충 썰어 모양도 별로 없고 조리법보다 설탕을 1/3이나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달긴하지만 향긋한 것이 내 입 맛엔 괜찮다.

동네에 간 김에 고모랑 놀자고 꼬드겨서 데려온 진O에게 맛을 보게 했더니 쫄깃쫄깃하고 맛있단다. 그런데 아빠랑 엄마랑 저랑은 좋아하는 맛있데 누나랑 형아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나... ㅎㅎ

얼마되진 않아도 삼시세끼 밥을 좋아하며 단 쨈을 바른 간식을 할 일이 거의없는 우리집 냉장고에선 일년도 가겠다 싶고 빵에 얹은 쨈부터 핥아 먹는 모양이 어느새 마음을 헤아리는 철부지가 예의 상 맛있다 한 것이 아니다 싶어 가져가겠냐고 물으니 한사코 사양이다. 괜찮단다. 그래서 할머니네는 매일 밥만 먹고 빵을 잘 안먹는다고 하니 그제서야 가지고 가겠단다. 때때로 어찌나 철이 들었는지... 좀 전 동네 서점에서 책하고 풍선하고 장난감하고 세가지를 사달라길래 한 번에 한 가지만 된다 했더니 그럼 두 가지는 안되냐고 졸라대던 녀석은 어느새 없다.

데려다 주는 길, 난생처음 만든 복숭아쨈을 녀석에게 들려 보내는 마음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그다지 달가워하지도 않는데 챙겨놓은 한보따리도 모자라 잠깐 기다리라며 발걸음 재촉하는 자식 대문 밖까지 쫓아나가 이것 저것 들려보내는 엄마의 심정이 이런거였다면 이젠 엄마를 말리지 않으리라...


9.02.2007

치즈: 치즈 분류




*장날, 치즈 상인과 치즈 트럭/ 레스토랑 마당, 치즈 모양의 장식*


김치, 된장, 고추장, 청국장, 젓갈에 심지어는 삭힌 홍어까지 살짝... 온갖 발효식품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Kraft의 체다 슬라이스에서 시작한 치즈 즐기기가 이젠 우리의 어떤 발효식품의 향과 맛을 능가하는 것으로 까지 넓어진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영양면에서 우수한 동물성 단백질을 생명을 손상하지않으며 섭취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약간의 정신적 허영까지도 허용해 더 만족스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치즈를 만들기 위해 어린 송아지가 죽어야 하니까 100% 맞는 말은 아니지만...) 게다가 빵과 치즈, 포도주, 과일 정도였다는 고대 로마인들의 절제된 식탁은 왜 그리 멋있어 보이는지...

어쨌든.. 난 치즈가 좋다. 그리하여 치즈를 좀 들여다 보니...

치즈를 여러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한다. 사용된 원유의 종류, 완성된 반죽(pasta)의 단단함, 지방의 포함 정도, 숙성 기간, 사용된 가공 방법, 등등에 따라...


*치즈용 카트, 레스토랑에서 자신들의 치즈 selection을 레스토랑 한쪽에 내어놓고 손님 원하는 대로 조금씩 잘라준다./ 우유로 caglia(응고제)를 넣어 만든 신선한 치즈*



*에밀리아 로마냐의 Parma와 Reggio지방의 Parmigiano Reggiano치즈와 토스카나주 Siena의 페코리노 치즈*


우선 원유는 우유(latte vaccino), 물소젖(latte buffalino), 염소젖(latte caprino), 양젖(latte ovino)이 사용된다. 우유로 만든 치즈가 가장 많지만, 양젖으로 만든 치즈로 pecorino romano, 염소젖로 만든 치즈 caprino, robiola, 물소젖으로 만든 mozzarella di buffala 등등 우유 이외의 젖으로 만들어진 치즈도 많고 다양하다.

반죽의 단단함, 즉 포함된 수분의 양에 따라 molle(부드러운, 말랑말랑한), semiduro(약간 단단한), duro(단단한)로 분류된다. 말랑말랑한 것으로는 mozzarella, gorgonzola 등이 있고, 약간 단단한 것(semiduro)으로는 fontina, bra, 단단한 것(duro)으로는 grana padano, pecorino romano 등이 있다.

지방의 포함 정도에 따라서는 grasso(기름진), semigrasso(약간 기름진), magro(마른, 기름기 없는)로 나뉜다. grasso는 지방이 42%이상인 치즈를 말하며 gorgonzola, mozzarella가 있고, semigrasso는 지방이 20%에서 40%이하로 bra, pecorino 등이 해당한다. magro는 지방함량 20%미인 것을 말하나 실제 magro한 치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서 지방의 양은 수분을 없앤 상태의 측정치니까 숫자로 놀라지 않아도 된다.

가공 방법으론 원유에 응고제를 넣는 온도, 숙성기간이 있고, 응고된 치즈 반죽을 엿가락 늘이듯 늘여서 만들었느냐, 푸른 곰팡이를 넣어서 많들었느냐 등도 분류의 기준이 된다.

응고제 넣는 온도에 따라서는 crudo(익히지않은: 생유에 응고제를 넣은 것), semicotto(약간 익힌: 38도에서 43도 까지 데운 후 응고제를 넣은 것), cotto(익힌: 43도 이상의 온도에서 응고제를 넣은 것)로 분류한다. 익히지 않은 것(crudo)으로는 gorgonzola, robiola di roccaverano등이 있고 약간 익힌 것(semicotto)으로는 asiago, fontina등이 있고, 익힌 것(cotto)으로는 grana padano, parmigiano reggiano, pecorino romano등이 있다.

숙성 기간에 따라서는 fresco (신선한: 며칠 내), breve (짧은: 한달 이내), medio (중간의: 한달에서 여섯달 사이), lento (느린: 여섯달 이상)로 분류한다. fresco로는 mozzarella가 있고, breve는 robiola, medio로는 fontina, lento는 grana padano가 있다.

우유를 응고시킨 반죽(pasta)을 늘였서 만들은 것은 pasta filata라 부르고, 푸른 곰팡이를 넣었으면 pasta erborinata라 부른다. pasta filata로는 mozzarella 치즈가 있고, gorgonzola치즈가 pasta erborinata로 분류된다.


*Scamorza와 Provolone치즈들과 Scamorza. 두 치즈 모두 늘여 만든 치즈로 녹으면 모짜렐라처럼 늘어나는 성질이 있다. Scamorza 흰색은 훈제하지 않은 것, 옅은 갈색을 띄는 것은 훈제한 것*



*발효된 포도에서 즙을 짜낸 찌꺼기에 발효시킨 치즈/ 파리의 치즈가게에서 발견한 다양한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


또한 이탈리아는 와인 뿐 아니라 치즈, 올리브 기름, 발사믹 식초 등 농축산품을 DOP(Denominazione d'Origine protetta: 보호된 원래의 이름)로 관리한다. 특정 DOP를 얻기 위한 일정한 guideline이 있고 그 guideline을 따라 생산된 제품에만 해당 DOP를 붙일 수 있다. 따라서, DOP를 받은 제품은 일정 수준의 품질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 이탈리아에서라면 왠만한 곳에서 파는 것들이야 믿을만 하니 별 신경 안써도 되지만 수입된 제품일 경우 믿을 만한 수입상이 아니라면 DOP여부를 확인해보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