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2007

재밌는 파스타집


비가 온다. 개기일식인가 싶게 깜깜한 하늘...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세운 계획들이 모두 불발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은 그 사람이 출타 중이고, 시장 구경과 쇼핑은 험한 날씨 탓에...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7분 거리에서 살다가, 걷고 마을버스 타고 30분여 거리로 이사온 것 또한 칩거의 습성이 있는 날 더욱 콕 박혀있게 만든다.

이사 후 맘 편히 집을 비울 수 있게된 엄마는 김장을 핑계삼아 3박4일 큰 아들네 나들이를 가시고, 난 홀로 비오는 창을 바라보며 daydreaming???

다시 이탈리아로 떠난 착한 x-방짝 B양이 항공우편으로 요리 잡지들을 보내주었다. 기진맥진 소파에서 좌우로 번갈아 누워가며 많은 시간을 보내다 눈이 번쩍 뜨인다. 학교에 있을 때 초청 chef로 와서 희한한 요리를 보여주고 간 luca를 lombardia음식 특집편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못봤던 가을 재료, 가을 접시도 반갑고... 페이지를 넘기며 마냥 신나다 그리움이 번지며 맘 한구석이 아릿하다. 이 심사의 정체는? 이탈리아의 빛과 색과 바람일까? 하다가, 아니 그것 보다는 갇힌 새의 하늘을 날던 기억이 아닐까...에 생각이 미친다.

B양에게 '급한 것도 아닌데 배로 보내지 뭘 비행기를 태워...'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배로 보내려고 했는데 해상화물 쪽 사람들이 일이 너무 많다고 더 이상 우편물을 받지 않겠다 해서 우체국에서 당분간 해상화물을 접수할 수가 없다고 하더란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이탈리아 우체국에서 배로 소포를 부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안되도 되게 해야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 일 앞에 잠시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혀 분노하고 흥분하지만 이내 이탈리아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 상태가 된다. 그러다 시간도 좀 지나고 또 반복적으로 그런 일을 겪다보면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그럴 수도 있지. 돈 좀 더내고 비행기로 보내면 되잖아' 하며 이해를 하고, 심지어 더 나아가서 '그들이 옳아. 안되는 것은 안된다 인정하는 그들의 여유... 부러워~~'하며 동경의 상태까지도 된다. 이탈리아 사람들... 때로 마냥 대책없어 보이는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속도로,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길들인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찾은 수지 모처의 이탈리아 분식집(^^)이 무척이나 이탈리아스러웠다. 토마토 소스도 안 얹고, 바질리꼬 대신 루꼴라를 올리고, 파마잔 치즈까지 뿌린 피자를 마르게리따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맛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름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진지하게 이탈리아식을 추구하는 부엌은 아닌 것 같은데 주인 아저씨의 스타일 또는 정신은 너무 정통 이탈리아노다.

만들기 어렵고 오래 걸린다며 고르기 위한 고민이 무색하게 과감히 주문을 정리하고, 추가 주문은 불가능하다 잘라 말하고, 오래 걸리니 양해를 해달라 보다는 그런 줄 알라는 식이고... 예약도 안받고, 예약하려는 전화일까봐 아예 전화도 안받는다 하고, 언제면 확실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장담도 못한다하고, 주문을 할 때면 모두에게 음식 늦게 나와도 괜찮다는 다짐을 받고, 7시 조금 넘으니까 몇 테이블 받지도 않았는데 재료 떨어져 더 이상 음식을 못한다며 줄줄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되돌려 보낸다. 지나가다 들렸다기 보다는 구석까지 찾아온 손님들인데, 미안할 법한 일이 많기도 한데 말투만 약간 어눌하고 차분할 뿐 미안해하는 기색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과의 시비는 커녕 불평이나 투덜거림 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 순한 양떼다...

재료며 맛이며 음식은 그저 평범하고 값도 평범하고 하지만 분위기는 독특하다. 일벌레 김모언니조차 테이블 맡으려 칼퇴근을 하고, 음식도 시키라는 대로 시키고, 갖다 먹으라면 갖다 먹고, 부대찌게도 아니고 파스타를 양해는 커녕 고지도 없이 한 접시에 2인분을 줘도 2인분이냐 1인분이냐 우리끼리만 궁시렁댈 뿐 주인 아저씨께는 군소리 한마디 안하고, 추가 주문도 안된다니 '먹고 죽지 뭐' 하며 미리 잔뜩 시키고... 얼마든 기다릴 각오하며, 너무 늦게 나오지 않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하고... 나오는 길엔 현재 방식 '내멋대로~'를 유지하며 성공적일 수 있는 나름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기도 하고... 어디서 우리가 그렇게 대충 서비스 받아도 마냥 흐뭇한 호락호락한 소비자였단 말인가.... 어디 우리만 그랬겠나, 거기 가는 사람들은 다 그랬겠지.

위협적인 인상도 아니고 천하일미도 아니고... 느리고 어눌한 말투와 삼가는 분위기(?) 정도로 서울 언저리의 성마른 소비자를 천하의 순한 양으로 길 들여버렸다. 뿐만아니라 그 곳을 지키자는 팬들까지도 생겨나고 있단다.

내 멋대로 살며, 동네에 분식집 분위기의 파스타집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가진 나로서는, 번보는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분명 한 수 배우고 싶은 business attitude였기에 불만은 커녕 오히려 흥미롭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소위 손님들의 태도는 더 흥미롭다.

주인 아저씨의 말투만 곱지 알고 보면 내용은 험한 말들을... 다 알면서 그곳을 들르다 못해 팬이 되는 사람들. 내 기준 내 방식 보다는 주어진 것을 따라야하는 시대를 살다보니 서툴어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고, 그래서 마치 아저씨 일이 내 일인양 걱정하고, 이해하고, 응원하고, 나도 몰래 돕고 싶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 흐뭇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뜨게 되는 것이 아닐까...


2 comments:

sunny said...

일요일 눈도 떨어지지 않는데..출근해야 한다는 고객의 요구에 불평한마디 못하고 나와 앉은 사무실..
언니의 글에 ..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 좋아지네요..
그 재미난 파스타집을 언니 특유의 표현력(?)으로 표현해내고 ㅎㅎ
아무 생각없이..재밌게 다녀온 저로서는..아 ~~ 맞아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암튼 전..늘상하는 식당에서 밥먹고 차마시고하는 일상에서 벗어난 것만 같았던..그 날이 즐거웠고..
그런 느낌을 가질수 있게 해줬던 .. 그 파스타 집이 좋았던게 아닐까하는 생각해보네요..

anna said...

일요일 출근, 생각만 해도 싫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조상들의 후손으로 어떤 상황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유전자가 우리에겐 있지요..^^ 나름 즐거운 휴일이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