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2018

예멘


예멘, 예멘…

한동안 예멘 난민들 뉴스가 매일 들렸었다.

중동의 어느 나라라고 들어본 적이 있지만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이 나라가 자꾸 머리 속을 맴돌며 드는 이 느낌은 도대체 뭔지…

그냥 인도주의적 착찹함? 낯선 이방인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 주는 심란함? 뭔지 모르게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다 드디어 예멘이란 단어가 내 머리 속에 각인됐던 장소가 떠올랐다. 에디오피아 다나킬 지역 소금사막.

그곳에서 예멘 사람을 만났었다. 소금을 캐는 아프리카 사람 옆에 앉아 아시아인이라고 구박(?) 받으면서도 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넓디 넓은 소금밭. 가만히 있느니 소금을 좀 캐어볼 만도 한데, 이곳에도 엄격한 서열이 있는지 소금 캐는 일도 못하고, 소금캐는 사람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마도 규격 맞춰 자른 소금을 옮겨 낙타에 싣는 일 정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웃을 때 드러났던 흰 이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도 코고 입도. 그는 너무 까맣게 그을렸고, 나는 햇볓에 눈이 너무 시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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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예멘인]


누군가는 그곳을 보고, 헬 조선은 댈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런 곳으로도 도망을 갈 형편인데, 제주도에는 왜 안 올까. 무슨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가보겠다는 각오가 아니었을까.

다나킬 소금 사막을 떠올리니, 기왕 멀리 온 것, 그래도 천국같은 곳에 닿았으니, 푸대접 받더라도 낯설어 그러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 땅과 조화롭게 살며 좋은 삶을 얻길 바란다.

찌꺼기


컴퓨터가 얼마 전부터 말썽이다. 부팅이 제대로 안 된다.

바이러스 검사하고, 인터넷을 뒤져 같은 증세도 찾아보고, 수상쩍은 프로세스를 중단시키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깔린 없어도 되는 앱(?)들도 지우고 … 부팅 전 검사를 해보려 했으나, vendor 복구 프로그램과 충돌이 있는지 절대 작동이 안 되고, 인터넷을 뒤져 온갖 방법을 써봐도 소용이 없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대원군의 쇄국정책 못지않게 다 차단하다시피 사용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럴 때 필요한 단어가 ‘자괴감’이 아닐까…


뭔가 극단적 조처를 해야 할 순간이 언제든 오고 말 것 같은 느낌.

OS…. ok. 구매한 몇 가지 프로그램… ok.

그럼, 남은 것은 데이터…

외장하드를 사왔다. 이런 일이 있기 전부터 조잡하더라도 백업시스템 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파국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보니 드디어 몸이 움직인다.

다 그런거지, 뭐… 소를 잃을 지경에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거지. 그래도 잃기 전에 고치는 것이 어디야…

외장하드에 들어있던 Drive Manager라나 뭐라나를 깔아보니 오토백업 기능이 있다.

밤새 열심히 하라 켜놓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절전기능이 작동해 10여 퍼센트 밖에 안됐다… 아니, 어떻게 파일 복사가 일어나는데 idle상태가 되는지… 요즘 컴퓨터는 그러니?

아침 내 서너 시간 걸려 마치더니, 몇 백만개의 파일 중에 4개가 오류로 백업되지 않았다는데, 그 파일이 뭔지는 한번 호로록 지나가더니 절대 다시 알려주지 않는다.  으악… 로그를 남겼어야지…

파일 탐색기를 열어보니 백업된 파일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확인을 해야하는데, 미덥지 않게 생긴, 손바닥만한 창으로 백업된 목록을 보여주며 내 precious한 파일 들이 복사됐단다. 심지어 파일을 열어서 확인해볼 수도 없다.

화면의 온갖 자잘한 버튼들. 매뉴얼을 뒤져도 설명이 없고, 눌러도 도대체 작동을 안한다. 껐다켜도 소용없다. 다른 버전의 설치파일(영어 사용자용으로 추정)이 있어 다시 깔아보니 그제서야 버튼들이 눌린다. 내가 널 믿어야 하는 거니? 이젠 이것 보다 나을 역량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이것저것 테스트를 하다 아무래도 안돼겠다. 파일 탐색기를 열어 무식하게 copy & paste 시작.

쏜살처럼 지나가는 복사되는 파일 이름들. 내 precious가 맞니?

음악과 사진만 남기고 깨끗이 포맷해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안다. 결국 대부분 쓸 데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절대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아주 오래 전, 회사에서 쓰던 노트북 하드디스크가 나갔다. 그래서 복구를 요청하니 담당자가 단칼에 거절했다. 하드디스크를 가득 채운 것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00% 복구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왠만하면 서버에 저장하던 시절이라서 그랬는지 정말 일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

언제쯤 난 찌꺼기를 다 떨어내고 모자라게, 부족하게, 단정하게, 가볍게 사는 사람이 될까?


단말기에서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제대로 뭔가를 할 수도 없는 지루한 작업.

그래서 백만년 만에 이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