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2006

포스트잇 부적(?)


포스트잇을 보더니 필요도 없고 용도도 잘 모를 것 같은 녀석들이 '필요해, 정말 필요해' 하며 서로 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서랍을 뒤져 나누어줬더니, 여섯살짜리 녀석이 글씨를 써야겠다 한다. 그러더니 삐뚤삐뚤 한살 위 형 이름을 쓴다. 형 이름, 제 이름 쓰며 배운 글씨 자랑하려나 보다 했더니, 아 글쎄 형 이름 아래 엑스(X)표시를 하고 책상에 떡 붙인다. 그리고는 '형아 여기에 못오게 하는 것'이라며 마냥 신이 났다.

꽈당~~~ 포스트잇의 용도도 제대로 알고 있었을 뿐더러 응용하여 형 쫓는 부적을 만들다니... 녀석의 엉뚱함과 천진함에 언제나 항복...

8.29.2006

존엄사


수술 후유증(?)으로 여타의 다른 운동이 여의치 않아 걷기나 하자 하고 나선 아침. 한시간 가량을 걷는데 2,3 미터 옆에서 100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내는 소음이 거슬리는 것 빼고 걸을 만 하다. 워낙 day dreaming에 일가견이 있는지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그 시간을 즐긴다. 요즘 날씨는 이도 저도 아니게 뿌옇고 끈끈하지만 몸과 마음은 아주 상쾌하다.

문득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요시무라 아키라'라는 일본 작가에 관한 기사가 떠올랐다. 유명한 작가라지만 난 그의 죽음을 통해서 그를 알았고 또 그 것으로 그를 기억하리라... 요점은 불치의 병으로 의료기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던 중 스스로 장치들을 제거하고 가족들에게 이제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숨졌다한다. 가족들 또한 그의 존엄사의 의사를 존중하여 기구들을 다시 장치하지않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하고 부인은 그의 자살을 지켜보아야만 했다는 것이 심했다고 눈물을 흘렸다한다.

80 가까이 살았고,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 거동도 못하고 회복의 가능성도 없고 기구에 의지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상황에 그만 가길 원한다면 그의 의사를 존중해 기꺼이 그를 보내는 것이 맞는게 아닌가 싶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갈 수 있도록...

서양에 가면 무덤이 마당에도 있고 동네에도 있고, 성당 바닦에도 있고, 살고 있는 건물 안에도 있다. 죽음이 그만큼 삶과 가까이 있다. 무섭고 슬프고 가슴아픈 죽음을 왜 가까이 두고 있는 지가 의아했는데 살다보니 모든 죽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떠나지 못하게 매달리고 안타까워하는 것 보다 기꺼이 보내 주는 것이 마땅해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더이상 살지않음, 죽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두려워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말 그대로 언젠가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것, 인간으로서의 통과 의례일 뿐이라 느껴진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바로 보지 못한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라는 것, 슬픈 것이라는 것, 학습된 감정이 아닐까...

그러다, 어딘가 숨어있던 삶의 무게 느껴지며, 최소한 삶을 멈추는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삶이 좀 가볍게 느껴지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미래가 희망이기 보다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대비로 쌓기에 열중하게 되었다. 늘어난 수명 때문에 얼마는 있어야 한다던데, 어쩌나...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내리막길로 곤두박질 치는 삶을 목격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고, 비관적인 날은 그런 삶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이러면 어떨까... 꿈과 이상을 펼치기 위해 모색하고 시도하고 열심히 살만큼 살고 나서 삶을 마치고 싶다면, 또는 건강을 잃어 더 이상 스스로 품위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그만 삶을 마치고 싶다면 타고 가던 차에서 내리듯 삶에서 내릴 수 있고 주위 사람들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하는 것, 삶을 소중이 생각해야한다는 것,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살아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그 어느 것에도 이의가 없고 마땅하다고 생각하나 희망없는 삶이나 누군가의 손에 연장되는 삶은 싫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만일 내 삶의 끝을 결정할 권리가 내게 있다면 그런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롭고 늘어난 수명을 앞세운 온갖 보험, 투자, 재태크 등등의 협박으로 부터 자유롭고 훨씬 더 경쾌하고 적극적인 삶의 모색과 시도가 가능할 것도 같다.

** 오래 전에 한 생각인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해보니 역시 태어나고 죽는 것은 신의 귄리지 인간의 권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 것만은 어떻게 신과 잘 사귀어 어떻게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ㅎ

cool한 cindy


신디 크로포드가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사람들이 식이요법과 화장품으로 젊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며 노화와 싸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얼굴에 칼을 대는 것뿐... 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화장품이 피부 결을 곱게 유지해줄 수는 있지만 탄력 유지를 위해서는 비타민, 보톡스와 콜라겐 주입만이 유효하다"면서 “지금 내 피부는 성형외과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다.

이소라 또는 초창기 수퍼모델의 role model이였다 할 수 있는 그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좋다는데 난 늘 "뭐가?"라고 했었는데... 멋진 구석이 있었다.

한편, 주름에 늘어지는 피부에... 세월의 흔적을 비껴가지 못해 때때로 비관스러운 내게 '뭐 그리 특별히 나쁜 유전자를 타고 나지 않았구나'하는 위안을 주기도 한다. ^^

8.24.2006

필라델피아 거리



거리.. 멀리 가운데 필라델피아 시청이 보인다.



멀리 올라가는 계단이 영화에서 록키가 훈련하는 계단이라는 걸 제일(?) 자랑으로 삼는 필라델피아 박물관(philadelphia museum of art)이 보인다.



Singing in the rain? 모른다. 왠 극장 앞에 동상이 막 스텝을 옮겨놓을 것 같은 자세로 서있다.



아무리 햇볓이 따가운 날에도 그늘을 드리워 줄 수 있는 가로수가 좋다.


Hardrock cafe... 어디나 있는데, 기타가 멋있다.

Mercer Museum



Henry Mercer의 공장, 집, 박물관이 있는 Doyles Town거리.
레스토랑, 커피가게, 식료품점, 예쁜 물건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있다.
갈 때마다 가본 다른 곳과는 다르게 Hang-out하는 10대들도 많이 보이고..

그 동네에선 제법 분주한 타운이지만 내겐 한가롭고 한적하게만 느껴진다.
밥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고, 생각나는 것 끄적이며 쓰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사람들은 볼 것도 없고 심심하다 할지 모르나 하루 종일 놀라고 해도 기꺼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이다.



Mercer Museum이라는 곳이다. 정말 다양하고도 많은 도구들이 있다. 과연 이 도구들이 다 각각 쓸모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아마도 타일을 만들기 위해 그 시대에 사용된 온갖 연장, 기계, 도구들을 전시해놓은 것 같은데, 타일을 만드는 일꾼들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도구들도 짬짬이 눈에 띄어 섬뜩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전시를 한 방식이 재밌다. 건물 중앙에 뻥 뚫린 공간이 있고 연장들이 그 공간 어디에나 어지럽게 매달려있다. 농담을 하고 있는 같다.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 색다른 멋이 있다. 그 자유로움, 얽매이지 않음, 엉뚱한 시도를 너그러이(?) 수용하는 태도... 그 공간이 자아내는 멋이다.

fonthill museum



Henry Mercer가 살았던 집이다. 내부가 온통 타일과 시멘트라 카메라 후레쉬에 손상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사진 찍기는 절대 안된단다. ;-( 그래서 외관만...

집들이 대체로 집 주인의 취향이나 성격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 집은 그런 면에서 더욱 유난하다. 박물관이된 여느 부자나 수집가의 집과는 구별되는 독특함이 있다. Mercer의 꼼꼼함, 시멘트에 대한 사랑, 그리고 타일 공장 사장(?)으로서의 전략, 수집가로서의 취미, 집의 미래에 대한 계획 등등 집에 그가 온통 담겨있다.

직접 설계해서 지은 집이라 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재능과 관심을 보여주는 예다. 집은 안팎 구석 구석 시멘트로 지어졌다. 목조 건물이 대다수던 시절, 그는 이웃에 자신의 시멘트 건물을 자랑하기 위해 때때로 밤이 되면 지붕에서 장작불을 피우곤 했단다.

내부 구석 구석은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천장, 바닦, 벽난로, 기둥, 벽, 책장... 투박한 타일로 덥힌 내부 공간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직각, 완벽한 곡선, 완벽한 평면은 보기 어렵다. 기울고, 둥글고 울퉁불퉁하고 휘어지고 투박하고, 천장도 낮고... 바위에 굴을 파서 만든 공간이나 흙으로 지은 집을 연상시킨다.

방이 40여개나 되는 건물의 내부는 미로같다. 하지만 엄격하고 치밀했던 그의 성품을 느낄 수 있다. 현관에 칸칸이 번호가 붙은 장이 있었다. 방마다 번호가 있어 그 방의 열쇠는 그 번호의 위치에 보관했다 한다. 서재의 책장은 모두 시멘트였는데 책장마다 영구적인 번호가 새겨져 있다. 특정 번호의 책장에 보관되는 책도 같은 번호를 붙였다 한다. 그의 공장에서 생산된 타일과 수집한 타일들이 섞여 벽에 붙여져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수집품은 번호를 붙여 역사를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 미래 박물관으로 쓰일 것을 생각해서 한 것이란다. 손님 방을 유난히 더 많은 타일로 장식함으로서 중요한 고객을 위한 타일 전시장으로도 활용하기위한 계산도 있었다한다.

지병이 있어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던 사람의 집, 외로움은 커녕 그의 부지런하고 유쾌한 삶이 옅보인다.

8.23.2006

The Moravian Pottery & Tile Works





Henry Mercer라는 19C말에 살았던 사람이 세운 타일 공장. 박물관이 아닌가 했는데 현재도 여전히 타일을 생산 중이란다. 얼핏 보기에도 시멘트로 거칠고 투박하게 세워진 공장의 건물. 하지만 투박함이 건물의 곡선과 주변의 초록과 조화되어 아름답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타일의 craftmanship 또한 거칠어 보였는데 어쩌면 그게 Henry Mercer가 추구한 스타일이였을지도... 타일이라는 것의 반복적 쓰임새에서 그 거친 타일들의 조화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형성한다. 그 아름다움을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공장 내부와 이 공장에서 생산된 타일 등등...

8.21.2006

한 영화 감독의 사과


"이번 관객들의 질타를 계기로 차분히 제 영화와 영화작업을 돌아보니 참으로 한심하고 이기적인 영화를 만들었고, 한국 사회의 어둡고 추악한 모습을 과장하여 관객에게 강요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불쾌감 갖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군 대한민국 4분의 1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보지않은 어떤 영화의 개봉이 계기가 되어 설화를 자초한 한 영화감독이 그간 자신의 언행에 대한 사과에 포함된 그야말로 통렬한 자기반성이다. 읽는 순간 '아 맞아, 바로 이거였어'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누군가 좋은 영화(?)라며 빌려준 비디오를 통해 본의 아니게 그 감독의 어떤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간접경험에 불과한 영화의 분위기와 장면들이 마음에 상처를 남길 만큼 충격적이었다. 해외 영화제 수상작이었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작품성을 칭송한다지만 난 영화가 끝나고 credit이 올라 가는 동안 '그래서?' 란 신경질적인 질문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감독의 영화는 다시 보지않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 후 때때로 사람들이 감독의 높은 자질을 언급할때 마다 짜증스러움 말고 내 안에 형성되어 있는 그 감독의 영화에 대한 frustration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없었다. 잊혀지는 영화라면 차라리 좋았을 걸, 상처로 남아 잊혀지지도 않고... 자극적 극단적 표현 방식 조차도 다른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영화에 흔해서, 아무리 점수를 주려해도 줄 것이 없었고... 한마디로 '많은 잘 포장된 쓰레기 중의 하나야'라고 하는 것 말고는. 그런데 바로 그것이었다. 새로울 것 없는,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의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데 실패하지 않는, 어둡고 추한 현상 내지는 대상에 대한 과장된 폭로로 우울하고 두렵고 불쾌하게 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 그 영화와 그런 것을 세상에 쏟아놓은 감독에 대한 내 언짢음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감독으로서의 그를 높이 평가해왔지만 난 한결같이 영화만드는 기술자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토대를 의심해왔다. 그런 그의 자신의 영화에 대한 반성... 영화 감독이니 얼마나 그럴싸하고 멋있는 말로 어떤 것이든 포장할 줄 아는 사람이랴... 과연 짧은 시간에 말로 표현된 깊이의 통찰에 다다르는 것이 가능한가? 하지만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표현에서는 진실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다.

그의 사과의 본질이 결코 그의 영화로 인해 내가 받은 충격과 상처는 아니지만, 어떻든 포함된 내가 받아야할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가 새롭게 만드는 영화를 기대해보기로 한다.

8.19.2006

진O가 자랐다



엄마랑 하루 종일 떨어져서 잘 놀더니 저녁 무렵이 되니 시무룩해져서 "엄마는 언제와?"하고 묻는다. 그래서 "우리 진O가 엄마가 보고 싶구나?"하니 "응..."한다. 엄마 생각을 골똘히 해서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주의를 돌릴 생각으로 살짝 질문의 각도를 바꿔 "진O야 엄마 좋아?"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응..."하더니 곧 이어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고 고모도 좋고 다 좋아." 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러다 며칠 후... 여섯살 밖에 안된 녀석이 영어 같이 배우는 또래 친구네 집에 수업 끝나고 엄마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놀러갔더란다. 그래서 '그 친구가 좋아?' 했더니, 또 다시 '고모도 좋고 그 친구도 좋고 다 좋아'라고 대답한다.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나 확실 했는데... 절대 동점자는 없었는데... 순서를 정하고, 심지어는 팔을 이용해서 좋아하는 정도를 크기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리하여 녀석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후 거의 2-3년간 아무도 넘볼수 없게 '차트 1위'를 고수하다 최근 2등 3등 4등.. 이렇게 떨어지는 비애를 맞보아 왔는데... 과거의 영광에 집착한 고모가 아무리 애절한 심정을 담아 물어도 고모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사실대로 대답해서 물은 고모를 더욱 비참^^하게 했었는데... 그러던 녀석이 불과 한 두달 사이에 이젠, 다 좋단다. 예/아니오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고모보다 OO가 더 좋아'라는 솔직 대담 무쌍한 대답에 상처(?)를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고모도 좋다는 대답이 서운하다. 녀석이 막 떨어뜨린 다시 주워 가질 수 없는 어린아이의 순진함, 솔직함, 당돌함의 한 조각이 막 아쉬워진다. 그저 더불어 살아야하는 삶을 위해 배워야할 것을 배웠을 뿐일텐데...

8.11.2006

목의 가시


이탈리아에 온다고 다시 읽기 시각한 로마인 이야기... 다른 책들보다 쉽게 술술 읽혀 다시 들긴 했지만 다시 읽어도 일본 제국주의자의 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변하지않게 한다.
그녀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제국주의의 희생이 되었던 역사를 가진 나라 사람들의 목에 걸릴 수 밖에 없는 숨겨진 가시들이 도처에 있다. 책을 들자 마자 그 가시들이 튀어나와 여지없이 목에 걸린다.

무릇 이웃나라끼리는 사이가 나쁜 법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계 개선이 더욱 어려워지고, 좋은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머리를 싸쥐고 골치를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실정입니다.
내 생각에는 두 나라 국민이 서로 자기네 이야기만 하는 것도 그 요인의 하나(이건 어디까지나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지만)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상대의 결함을 들추어 왈가왈부 말다툼을 하는 이웃처럼 말입니다.
(한국어판에 부치는 저자의 말 중)

식민활동은 늘어난 인구를 자국 안에서 부양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1권 p.108)

시오노 나나미 여사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읽은 것을 다 잊어버려서 한번 다시 읽고 그 이후로 나온 신간을 읽을 생각으로 1권을 다시 펼쳤다.

역시 책을 잡은지 얼마 읽지않아 여사의 선무당 사람잡기 식 또는 음흉한 저의가 있는 역사 해석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처음 읽을 때도 그랬다. 그 여러 권의 책들을 읽는 내내 시오노 여사를 상대로 싸웠다. 물론 나만 아는 싸움이지만.

로마의 역사를 읽기 쉽게 썼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 이유로 시오노 여사의 짜증스러운 여러 억측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책에 의지하게한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구나 너도 나도 읽어도 좋은 책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 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정치가며 기업가며 이 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권하는 도서에 든다는 것은 경악할 노릇이다. 책을 읽다보면 여사는 제국주의자의 딸이라는 것,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 자신의 조국이 이루지 못한 제국주의의 꿈에 대한 연민이 있다는 것, 로마제국의 긍정적 영향에 빗대어 자신의 조국, 일본의 제국주의 행위를 합리화하려 한다는 것을 어렵지않게 느낄 수가 있다.

그런 사람을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무슨 대단한 지성이라도 되는 양 모셔오고 가고... 그런 생각이 어렵지않게 읽혀지는 책을 훌륭한 책이라느니 뭐니 온간 말로 치켜 세우는 목소리는 하늘을 찌르는 대신 비평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않고... 가슴을 칠 노릇이다.

뮤지컬: 지킬박사와 하이드


9일을 병원에서 보낸 다음날 남산 기슭에 있는 국립극장으로의 외출. 난생처음 가본 국립극장은 이름이 주는 classic(?)하리라는 선입견을 넘는 멋진 공간이었다. 그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보상이 되었는데 거의 최고라 손꼽히는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까지... 아쉬움이 없어야하나 그런데...

공연 자체만으로는 뭐, 뭐라 딱히 꼬집을 것은 없다. 극장 훌륭하고, 무대 장치, 의상 깔끔했고, 연기 흠잡을 데 없고, 뮤지컬 배우들 성량도 풍부했고... 굳이 들자면 멀리 앉아서 배우들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는 것. 그거야 대한민국 국민들의 문화활동 이상열기에 적응하지 못한 내 탓이고... (평일 공연 조차도 한달 반 전에 좋은 자리 표를 구할 수 없었다.) 배우들의 발음이 때때로 이상했다는 것. 정확하지 않거나 ㅈ->ㅊ ㅅ->ㅆ 현상이 좀 과하게 느껴졌다는 것. 뭐 그 정도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인데 우리 배우들이 우리말로 바꿔 한 것 뿐이란다. 딱 브로드웨이 뮤지컬 같았다. 노래할 때 발성법까지... 이런 경우 original과 identical하게 하는 것이 잘 했다고 해야하는 것인가? original과 유사한 quality를 한국에서 즐긴다는 것에 의미를 두라는 것인가?

그래도 예술인데 독창성, 창의성이 있어야하는 것이 아닌지??? 물론 뒷 이야기야 어떻든 상관없이 절대적인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내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대상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구성해서 표현된 결과가 공연 예술인데... 공연 내내 이 production team은 original을 그대로 따라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싶은 것이 그다지 즐겨지지가 않았다.

어떻든 공연의 흥행은 대 성공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그렇지만 난 original을 보고 창의적인 노력의 흔적을 확인한 후 비로소 이 공연팀에 기꺼운 마음으로 환호의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