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2006
존엄사
수술 후유증(?)으로 여타의 다른 운동이 여의치 않아 걷기나 하자 하고 나선 아침. 한시간 가량을 걷는데 2,3 미터 옆에서 100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내는 소음이 거슬리는 것 빼고 걸을 만 하다. 워낙 day dreaming에 일가견이 있는지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그 시간을 즐긴다. 요즘 날씨는 이도 저도 아니게 뿌옇고 끈끈하지만 몸과 마음은 아주 상쾌하다.
문득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요시무라 아키라'라는 일본 작가에 관한 기사가 떠올랐다. 유명한 작가라지만 난 그의 죽음을 통해서 그를 알았고 또 그 것으로 그를 기억하리라... 요점은 불치의 병으로 의료기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던 중 스스로 장치들을 제거하고 가족들에게 이제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숨졌다한다. 가족들 또한 그의 존엄사의 의사를 존중하여 기구들을 다시 장치하지않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하고 부인은 그의 자살을 지켜보아야만 했다는 것이 심했다고 눈물을 흘렸다한다.
80 가까이 살았고,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 거동도 못하고 회복의 가능성도 없고 기구에 의지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상황에 그만 가길 원한다면 그의 의사를 존중해 기꺼이 그를 보내는 것이 맞는게 아닌가 싶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갈 수 있도록...
서양에 가면 무덤이 마당에도 있고 동네에도 있고, 성당 바닦에도 있고, 살고 있는 건물 안에도 있다. 죽음이 그만큼 삶과 가까이 있다. 무섭고 슬프고 가슴아픈 죽음을 왜 가까이 두고 있는 지가 의아했는데 살다보니 모든 죽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떠나지 못하게 매달리고 안타까워하는 것 보다 기꺼이 보내 주는 것이 마땅해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더이상 살지않음, 죽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두려워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말 그대로 언젠가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것, 인간으로서의 통과 의례일 뿐이라 느껴진다. 누구나 죽지만 죽음을 바로 보지 못한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라는 것, 슬픈 것이라는 것, 학습된 감정이 아닐까...
그러다, 어딘가 숨어있던 삶의 무게 느껴지며, 최소한 삶을 멈추는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삶이 좀 가볍게 느껴지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미래가 희망이기 보다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대비로 쌓기에 열중하게 되었다. 늘어난 수명 때문에 얼마는 있어야 한다던데, 어쩌나...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내리막길로 곤두박질 치는 삶을 목격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고, 비관적인 날은 그런 삶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이러면 어떨까... 꿈과 이상을 펼치기 위해 모색하고 시도하고 열심히 살만큼 살고 나서 삶을 마치고 싶다면, 또는 건강을 잃어 더 이상 스스로 품위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그만 삶을 마치고 싶다면 타고 가던 차에서 내리듯 삶에서 내릴 수 있고 주위 사람들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하는 것, 삶을 소중이 생각해야한다는 것,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살아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그 어느 것에도 이의가 없고 마땅하다고 생각하나 희망없는 삶이나 누군가의 손에 연장되는 삶은 싫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만일 내 삶의 끝을 결정할 권리가 내게 있다면 그런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롭고 늘어난 수명을 앞세운 온갖 보험, 투자, 재태크 등등의 협박으로 부터 자유롭고 훨씬 더 경쾌하고 적극적인 삶의 모색과 시도가 가능할 것도 같다.
** 오래 전에 한 생각인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해보니 역시 태어나고 죽는 것은 신의 귄리지 인간의 권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 것만은 어떻게 신과 잘 사귀어 어떻게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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