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2007

Firenze: David



몇 년 전 Mercedes Benz 광고가 다비드 상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벤쯔 모델의 헤드라이트가 다비드의 눈동자 모양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광고였나??? 아뭏든 어떤 내용인지 잘 기억할 수 없지만 그의 눈동자의 반짝임이 하트 모양이라는 것을 그 광고를 통해서 알게 됐었다.

Firenze에 왔으면 한 번 쯤 그를 만나야하는데... 하루는 갔다가 긴 줄 때문에 돌아왔고, 한번 줄을 보고 나니 무서워 그곳을 향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마냥 길 것 같던 피렌체 여행의 끝이 보이는 오늘...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싶어 다녀오긴 했는데 영 마음이 서운하다.

어쩌면 그와 눈은 한번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하여 그의 눈에 달이 떴는지 별이 떴는지 하트가 떴는지 정도는 확인 할 수 있을꺼야 했던 막연한 생각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 건지...

익히 주의 깊게 보지는 않았어도 Palazzo Vecchio 앞의 실제 크기의 복사본을 통해 그가 6척 장신도 훨씬 넘을 뿐 아니라 받침대에 올라서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설사 받침대가 없다 하더라도 등을 굽힐 수도 고개를 숙일 수도 없는 그와 내가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기대를 가졌었던 건지... ^^

게다가 좀 과장해서 하늘에 떠있는 구름처럼 멀리 있는 그의 머리는 왜 그리 커보이며, 팔은 왜 그리 길어보이며, 손과 발 또한 왜 그리 비율이 맞아 보이지 않는지... 내 눈이 이상한가 싶어 그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팔과 손과 머리 크기의 비율을 보며 그와 비교해 보기도 하고... 또한 과연 그의 표정이 승리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 천재의 천재성에 탄성을 지르며 감동해야 하는 순간인데 왜 이런 삐따닥한 생각이...

비율이 맞아 보이지 않는다하자 누군가는 원래 광장에 세우기 위한 조각이었고 그래서 realistic 하기 보다 그 공간 내에서 사람들이 그를 보는 시각을 고려하여 신체의 비율을 결정한 것이라고, 지금 전시 공간은 그에게 적절하지 않은 공간일 뿐일 것이라 한다. 비로소 천재의 천재성에 동의할 구실을 찾긴 했는데... ㅎㅎㅎ

줄서고 돈 내며 미술관을 다시 갈 순 없는 일이고 원래 그가 서있던 자리의 복제품을 각도와 거리를 달리하며 봐도 여전히 비율이 맞아보이지 않는다.

그의 눈에 달도 별도 아닌 하트가 떴다는 사실은 엽서를 통해, 그에 관한 책 표지를 통해, 옆에 설치된 컴퓨터의 회전 가능한 3D 이미지를 통해 확인 했지만 기술이 부족할리 없는 천재의 걸작이라 칭송 받는 그의 신체의 이상한 비율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 이외의 다른 것은 너무나 realistic하기에 더욱..

6.22.2007

Firenze: 밤 산책길의 콘서트


 Arno강가를 따라 노을 구경 겸해서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
강이 넓지도 않은데 강 건너편에선 불 빛만 보여서 뭘까 했는데 건너서 보니 작은 콘서트였다. 그냥 음악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서 동네사람들 끼리 음악회를 빙자한 파티를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격식 갖춘 음악회 쯤이야... 그들에겐 뭐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이라..(ㅎㅎ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느낌 또는 상상..)

그러다 보니 음악 자체는 그다지 만족스럽진 않았어도 무엇을 더 바라랴... 강가에 걸터 앉아 강변의 밤풍경 감상에 감동을 더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한참을 있다 시간이 늦어 발걸음을 재촉하며 돌아오는데.. Vecchio 다리에서 영 다른 종류의 음악소리가 들린다. 관광객으로 왁자지걸한 광경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다리 저 편에 금관악기로 구성된 재즈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다. 거리밴드라는 이름의티셔츠까지 맞춰입고...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사람들이나 모두들 신이났다. 며칠 전 밤 산책길엔 가스펠 찬양단(?)을 만나서 신나게 춤 추고 노래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얌전히 손뼉만 치며 음악감삼을 한 적이 있는데...

신나고, 자유롭고, 편안하고, 유쾌하고...

6.21.2007

Firenze: 가죽향 그윽한 피렌체


피렌체 도착 첫날... San Lorenzo 성당 근처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장이 섰고 다양한 가죽 제품을 팔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근처 거리는 온통 가죽 제품 냄새로 가득하다.


피렌체가 가죽으로 유명하다고 들어본 적은 있는데 빈말은 아니었다. 도시 곳곳에서 온갖 종류의 가죽 제품들로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피렌체 스타일(?) 가죽 가방을 맨 사람들도 유난히 눈에 띄고... 짐의 무게에 몇번 데인 후, 다 짐이라는 생각이 왠만한 경우에 날 잘 말린다는 것을 알지만 가죽으로 된 무엇없이 이곳을 떠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색과 디자인이 현란하다.


옷, 벨트, 지갑 등등 일상적인 것에서 부터 가죽으로 뭘 할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는 듯한 물건들 까지... 그 속에서 진지하며 한편 진지하지 않은 그들의 즐거운 시도들이 느껴진다.




* 장이 선 San Lorenzo 성당 주변 *





* 피렌체의 문장을 새긴 열쇠고리와 장갑, 가방... 무엇보다도 현란한 색이 유혹한다. *





* 가죽으로 만든 장기판, 가면, 마네킹... *


6.16.2007

Firenze: 증거...




Firenze 한 골목에 있는 작은 건축 studio 쇼윈도우에 걸린 집 설계도. 어떻게든 창을 내고 가능한한 넓게 테라스를 만들어 밖을 안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는게 이탈리아 집들이 주는 인상인데 그들이 들이고 싶은 '밖'은 햇빛은 아닌지 빛 잘 드는 남쪽(sud)을 꽉 막아버렸다.

벼랑 끝에 집을 짓지않나, 깊은 산중에 집을 짓지않나, 산 꼭대기에 마을이 있지않나, 시내(centro)를 가려면 산을 올라야 하질 않나... 그런 것들이 색다르고 멋있기는 하지만 왠지 편안하지 않다. 아마도 도대체 그게 뭐야 싶은 우리(?)스러운 것이 내게도 무의식으로 잠재되어 있나보다.

아뭏든, Firenze 골목에서 발견한 그들은 우리와 다른 풍수를 믿는 것이 틀림없다는 내 짐작을 뒷바침하는 증거가 반갑기만하다...ㅎㅎㅎ

6.14.2007

Firenze 가는 중


아무리 기차 안이라지만 도대체 인터넷에 연결이 시원치않아 포기하고 그동안 언젠가는 정리하리라 모아놓았던 영수증을 정리했다. 두 시간 정도 하니 거의 정리가 된다. 시간이 없었는지 영수증의 숫자조차 생각하기 싫을 만큼 피곤한 일상이었는지, 시작하니 정말 그렇게 쉬운 일일 수가 없는 일을 늘 개운해하지 않으며 남겨두고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세달 남짓의 stage생활을 끝내고 피렌체 가는 길.

어떻든 기차가 볼로냐에 도착하자 네트워크 상태가 현저히 좋아진다. 어떻든 이 틈을 타 며칠 canelli에서 뭐가 문제인지 연결하지 못했던 네트워크에 연결..

토스카나, 피렌체... 맛있는 것 아껴먹듯이 남겨 놓은 곳..
어떤 모습으로 날 맞아줄지 궁금한 것 보다, 떠날 때 난 또 얼마나 아쉬움을 가지고 떠날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며 한구석에 떠오르는 생각이, 어제, 마지막 날을 그 작은 마을 canelli에서 보내며 그 곳을 떠나는 것 조차 아쉬워했는데 ristorante san marco를 떠나는 마음, 즉 스테이지를 마치는 마음에는 어찌 그리 한점 아쉬움이 없고 그곳을 벗어난 것이 좋기만 한지... ㅎㅎㅎ

forse ho fatto piu` che abbastanza.. 아마도 이렇게도 저렇게도 미련도 아쉬움 없이 할만큼 다 했나보다.

짬짬이 부지런히 놀기도 했지만, 그 동안 마음 다스리며 좋은 마음으로 정말 다채로운 뜻의 '험한' 생활을 해낸 내게 '장하다. 수고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6.12.2007

Plan B: Bocconcino

 

Piemonte를 떠나기 전에 미쉘린 별 셋에 빛나는 Piemonte의 자랑 Guido ristorante에 가기로 했다.

예약도 해야 하고, Pollenzo에 있다고 하니 일단 폴렌쪼까지만 가면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알만한 곳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한번 위치를 봐야 하는데, San Marco에서 며칠 째 무선인터넷 접속이 안 된다. 같이 가기로 한 x-roommate B양에게 기본 정보를 알아보라 했는데, 문을 닫는지 알아보라는 말을 깜빡한 것이 영 마음에 걸리지만 다시 연락을 하긴 시간이 늦었다. 벼르고 별러 가는 구이도인데 그래서 더더욱 Plan B가 필요해 보인다.

약속한 날 아침.

Pollenzo 까지는 커녕 아스띠 까지도, 축제로 버스정류장이 있던 까넬리 광장에 성(?)이 들어서고 정류장이 바뀌어 버스를 놓쳐, 이리저리 묻고 뛰고 버스 타고 걷고 기차 타고 겨우 도착했는데...

B를 만나Pollenzo행 버스에 올라 한 숨 돌리고 테이블을 예약하려 구이도에 전화를 했더니, 벼르고 벼른 그날 하필 저녁 서비스만 한단다.

(Canelli->Asti->Pollenzo: 대중교통으론 이렇게 갈 수 밖에 없다.)

IMG_0090 IMG_0100 IMG_0102

 

다른 곳은 안가도 Guido는 한 번 가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한 가장 좋은 가능한 방법은 저녁 먹고 호텔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는 것.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내키지가 않다. 아쉽지만 다음 이탈리아여행을 기약하며 그냥 Plan B를 수행하기로 했다. 버스가 Bra를 거쳐가니, Bra에서 내려 예전에 봐둔 Slowfood headquarter와 한 건물에 있는 Bocconcino라는 레스토랑에 가는 것.

Bra 역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사진 찍고 가게마다 들어가서 구경하고... 신났다. Plan A가 어그러진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은 우리에게 없다. 어느새 우리에게 Plan B는 Plan A가 되어있었고 역에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Bocconcino 가는 길은 아무리 가까워도 이러다 점심시간 놓치겠다고 서로 발걸음을 재촉해도 더디기만 하다.

IMG_0111 IMG_0116 IMG_0121

우리의 상황을 아는지 Bocconcino 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다. 편안하고 깨끗하고 충분히 우아하다. 군더더기 없는 메뉴, 친절한 서비스, 착한 가격. 길지 않은 엄선된 와인 목록. 소박하고 맛있는 음식.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내 미래의 레스토랑이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정도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IMG_0127 IMG_0132 IMG_0143

IMG_0135 IMG_0141 IMG_0139 IMG_0146 IMG_0148 IMG_0150 IMG_0151 IMG_0157 IMG_0158 IMG_0149  IMG_0140 IMG_0152IMG_0155 IMG_0163  IMG_0165 

 

이탈리아 생활 몇 달에 깨달은 Plan B. 어떤 돌발상황으로 Plan A가 어긋날지 알 수 없기에, 이곳에선 언제나 어디서나 Plan B가 필요하다. 어디를 가야 한다면 [A: 예정된 시간에 간다; B: 몇 시간 늦는다.; C: 못 간다]. 뭐 이런 식으로... 꼭 못 간다 까지...^^

이 나라는 ‘절대로, 반드시, 꼭… ‘ 등등의 부사어가 필요한 일은 세상에 없다, 하는데 까지 해보고 안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라는 것을 이해하게 해준다. ^^

이 무책임하고 나태해 보이는 -왠만하면 뭐든 예정되로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회에 살던 사람에겐 특히- 속 터지는 그들의 철학(?)은 기차가 안 와도, 갑자기 버스 정류장이 바뀌어도, 뚜껑 열었다 닫았다 하며 풀풀 김을 내는 대신, ‘흠~~, 그렇다면?’으로 사고를 전환하게하는, 같은 상황에도 훨씬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ㅎㅎㅎ

6.07.2007

영수증으로 가득찬 지갑




가방에서 커다란 지갑을 꺼냈다 넣었다 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번화한 도시에서 얼마나 좀 도둑의 표적이 되는 일인지를 알게 되어 바지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작은 지갑을 마련했다.

이탈리아 답지 않아보이는(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기특한 일중의 하나. 몇전짜리를 사든 꼭 영수증을 준다. 얼마나 쓰는지 기록을 해 두겠다는 의도로 줄 때마다 챙겨 작은 지갑에 접어 넣기는 해도 비교적 자주 비워주는데...

비운지 얼마 되지않아 작은 지갑은 또 영수증으로 가득 차고 돈은 온데 간데 없다. 도대체 어디다 쓰는 건지... T.T

6.06.2007

카메라가 부서지다


전날 저녁 페루지아 가는 도중 갈아타는 기차역. 노을이 예쁘길래 카메라를 꺼내 아무런 문제 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다음날 아침 내 기특한 카메라가 켜지질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리 저리 둘러보니 한 귀퉁이가 어딘가에 세게 부딛힌 흔적이 있고 안에서 뭔가가 떨어져서 움직일 때 마다 소리를 낸다. 고장 난 것도 아니고 부서졌다. 귀신이 곡할 일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닐지... 그럴 정도로 어딘가에 부딛혔으면 당연히 알아야하는 일인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카메라로 이미지를 모으기도 하지만 정말 이 생활의 여행의 둘도 없는 친구인데... 아무렇게나 들이대도 알아서 예쁘게 잘 찍어줘서 참 고마워하던 친구인데...

Ella의 카메라를 빌어서 찍은 페루자의 사진은... 선뜻 빌려준 그녀에게는 무지 미안한 말이지만 색감이 너무 맘에 들지 않는다. 사진관에 가서 물었더니 캐논 이탈리아에 보내야한다고.. 25일이 걸릴꺼라고... 5주인데 이사람들 말로 5주면 도대체 얼마가 걸린다는 이야기인지..

한국에 보내서 고치자 하고 UPS와 DHL을 물었더니 보내고 받는 값이 카메라 값의 절반이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답이없다. 지금 카메라가 너무 좋은데 그렇다고 똑같은 카메라를 사자니 그것도 그렇고, 다른 카메라를 장만하자니 그것도 내키지 않고...

'엉엉... 조금만 더 버텨주지... 내가 널 얼마나 아끼고 고마워 했었는데...' 그렇게 속상하고 서운하고 난감할 수가 없다..

휴가가 끝나다.


휴가를 마치고 Perugia에서 Asti로 올라가는 기차안... 거금 들여 장만한 무선인터넷 카드 덕 좀 보려는데 왜 그렇게 터널은 많은 것인지.. 터널에 들어가면 여전히 끊어지고 기지국이 바뀔 때 마다 다시 연결을 해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다지 신통하진 않지만 장시간 기차타기를 덜 지루하게 할 만큼은 충분하다.

하늘은 찌뿌리기만 하고 간간히 비가 내리고, 여전히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다.

떠나는 날 아침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 눈물에 콧물에 재채기에 본격적으로 감기가 시작됐다.

언젠가 Contratto cantina 앞 길 하늘에 걸려있는 stop sign이 뭔가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날이 있었는데...




로마 도착 첫날. 예상치 않게 ex-방짝 B양과 B양 오빠의 로마 근교 집에서 치솔하나 달랑 들고가 머물게 됐다. 자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는 것이 얼마만이지 하는 생각이 확 스치고 어이없이 눈물이 핑 돈다.

B양의 오빠이긴 하지만, 낯설기만 한 어떤 총각 집의 화장실이 이렇게 편안하게 느껴지다니...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닌가? 화장실과 잠자리 때문에 항상 정말 떠나고 싶어 계획한 여행이 떠나기 싫던 난데... 익숙한 화장실이 아닌 화장실이 싫어 하루 종일 화장실을 가지 않는 적도 많은데...

요리를 배우는 것은 둘째 문제고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과 사람들 안에서 어떤 답을 찾고 싶은 생각에 기꺼이 기어를 맞추고 하던 생활인데... 불편하긴 해도 불만은 없고, 그런 생활속에 좀 덜 까탈스럽고, 덜 예민하고, 좀 둥글고 너그럽게 달라지는 날 은근 기대한 것도 사실인데...

갑작스럽게(?) 달라진 날 발견하는 일이 그렇게 기쁜 일만은 아닌가 보다. 그러면서 돌연 정상적인(?) 생활이 그립다. 내 침대, 내 화장실... 방해 받지 않고 자는 것, 씻는 것, 내 입맛에 맞춘 음식, 트렁크에서 옷 꺼내입지 않아도 되는 생활, 늘 지니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신용카드, 여권, 비행기표..

Perugia의 Ella... 이런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언니 이번 여행 잘못왔다...' 한다. 정말 이번 여행의 메지지가 내게 부정적인 것일까?

화장실 잠자리는 그렇다 하더라도 좀체로 걸리지 않던 감기. 그래도 현재 casa(집)라 부르는 곳인데 레스토랑을 떠나자 거짓말 처럼 없어지는 변비... 어깨 허리 결림과 늘 뻐근한 팔과 손, 잦지는 않아도 간간히 느껴지는 왼쪽 무릎의 통증... 과연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예정된 시간까지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한달 남짓 남은 시간... stop, stop, stop... 누군가가 stop sign이 통하지 않자 더 강력한 message를 내게 보내고 있는 걸까?

6.03.2007

마음을 뺏기다


묵던 성당에 딸린 수녀원에 방도 없고, 시간도 마냥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서운하기만한데... '나중에 다시 와서 한달 쯤 있다가 가자. 그때 실컷 느끼다 가면 되지 뭐' 라는 기약없는 약속으로 맘을 달래던 아침...

로마제국의 황제를 좋아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만 왠지 마음이 가서 그의 흔적에 한번 더 발걸음과 시선을 멈추게 되는 roman emperor hadrianus. 그의 별장이 있는 Tivoli로 향했던 마음을 돌려 로마 시내에 머물기로 하고...




어느새 머리 속에 좌표가 좀 잡힌 로마의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vocca della verita`(진실의 입)가 있는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멀리서 제복입은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음, 어떤 dignitary들이 로마에 왔나보나 했는데 좀더 다가가 보니 행진을 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제복입은 아저씨에게 무슨일이냐 물었다, 역시 책임질수 없는 일은 벌이는 것이아닌데 싶을 만큼 알아들을 수 없게 설명을 해준다. 이해 못했고 다시 말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마음을 실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아저씨, 이심전심 그저 사람 좋게 웃고 나도 그냥 웃고 만다. 나중에 알고보니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고 그 날의 행사로 군인들이 시가행진을...



*가운데 사진 속 군복의 색에 놀랐는데, 타이밍을 놓쳐 사진이 영 그렇다. 진짜 특이한 색의 초록과 파란 베레모의 조화. 한번도 본적없는 것 같은 색과 색의 조화(?)였는데...*


줄 맞춰 씩씩하게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우렁차게 한 목소리로 군가로 짐작이 되는 선동적(?)인 느낌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왜 우리 학교다니던 시절, 어린 청소년들에게 체육복 똑 같이 입혀 줄맞춰 구령하며 행진하기를 시켰는지 좀 이해가 될 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보여주고 있는 '질서(?)'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있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무리에 섞여 한참을 구경꾼이 되었는데...




괜한 질문을 던졌던 옆의 제복의 아저씨, 한 무리가 목청껏 노래부르며 들어서자 구경꾼들 틈에서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거수경례를 하는데, 내 상상일지 모르지만, 그 표정엔 행진하는 젊은 청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애정이 넘친다.. 그런 광경에 난 또 한없이 감동한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동물이든, 조국이든... 무엇이든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겐 한없이 아름다워보이고 그 순간 내 마음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bella figura(폼잡기:어디까지나 나의 해석...^^) 빼면 시체라는 이탈리아 남자들. 제복입은 남자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리오... bella figura의 상징 motocicleta와 cellulare*


잠시 멈춰 서는 동안 엄숙하고 긴장된 표정을 풀고 이탈리아 ragazzo로 돌아오기도 하고, 행진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는 언제 우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행진을 했지 싶게 박수치고 노래하는 관광버스가 되기도 하고, 길에 서서 관광객들과 같이 포즈를 잡아주기도 하고, belle ragazze들에게 특유의 장난스러운 시선을 던지기도 하고...




무리가 만들어내는 질서... 태어나서 청년 시절까지 군인 출신이 다스리던 나라에서 자란 내가 모르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획일적인 것, 자연스럽지 않은 것, 연출된 것, 형식에 맞추어야하는 것... 그런 것들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해도 태생적으로 맞지도 않을 뿐더러 형식이 지나치게 중요한 곳에 오래 살다보니 약간의 거부감까지 있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질서에 국군의 날 행사에서 받지 못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이런 감동이 내겐 의외이고 낯설다.




저렇게 다양한 모양의 제복이 있구나, 제복도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 다양한 모양과 의외의 색과 디자인의 제복이 질서와 자유로움의 균형을 맞춘 걸까? 특별히 계획되어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지만, 놀랄만큼 아름다운 거리와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일까?




*베네찌아의 san marco 보다, il ristorante san marco가 먼저 떠오르다니.. ㅎㅎㅎ*


뭔가 짐작이 되는 것, 의외이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은 너무 '이탈리아스럽지 않다'라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잡은 그들에 대한 생각과 다른 그들의 모습, 격자무늬의 대열을 신선하게 느끼는 것일까? 행진 중간중간에, 끝에 병사이기 이전 이탈리안인 그들의 모습에서 느낀 자유로운 질서의 냄새가 날 감동하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좀체로 보기드문 한 무더기의 잘 생긴 제복의 이탈리아 청년들과 신사들(간간이 숙녀들도 있었다)이 그저 감동일까? ^^



*카메라 들이대고 'posso.. (저...)' 한마디에 삼삼오오 흐트러져서 수다떨기에 바빴던 그들이 서둘러 하던 대화를 멈추고 담벼락에 일제히 달라붙어 사진찍기 포즈를 취한다. 어찌 그들을 귀엽다하지않을 수 있을까.. ㅎㅎㅎ 내가 찍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속옷(?). 하얗고 파랗고 빨갛고.. 보이지않아도 저렇게 알록달록한, 그들의 깃발 색이기도 한 속옷을 군복안에 폼나게 받쳐 입고 있었던것*


덕분에 길도 막혀 바쁜(^^) 와중에 한참을 서서 기다리기도 하고, 지하철 역도 닫혀 한참을 더 걷기도 하고... 하지만 마음은 non c'e` problema... 아무 문제 없어요... 가 된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기준으로 보면 참 종잡을 수 없는 그들에게 난 왜 이렇게 자꾸 너그러워지기만 하는 것인지... ^^



*개선문 찍는 척하며.. 그레고리 펙을 닮은 경찰(?)이 콜로세움과 개선문으로 향하는 길을 막는다. 다리도 아프고 돌아가기는 한없이 멀고... 이 진하고 잘생긴 아저씨를 그냥 감상하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