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2007

마음을 뺏기다


묵던 성당에 딸린 수녀원에 방도 없고, 시간도 마냥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서운하기만한데... '나중에 다시 와서 한달 쯤 있다가 가자. 그때 실컷 느끼다 가면 되지 뭐' 라는 기약없는 약속으로 맘을 달래던 아침...

로마제국의 황제를 좋아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만 왠지 마음이 가서 그의 흔적에 한번 더 발걸음과 시선을 멈추게 되는 roman emperor hadrianus. 그의 별장이 있는 Tivoli로 향했던 마음을 돌려 로마 시내에 머물기로 하고...




어느새 머리 속에 좌표가 좀 잡힌 로마의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vocca della verita`(진실의 입)가 있는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멀리서 제복입은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음, 어떤 dignitary들이 로마에 왔나보나 했는데 좀더 다가가 보니 행진을 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제복입은 아저씨에게 무슨일이냐 물었다, 역시 책임질수 없는 일은 벌이는 것이아닌데 싶을 만큼 알아들을 수 없게 설명을 해준다. 이해 못했고 다시 말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마음을 실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아저씨, 이심전심 그저 사람 좋게 웃고 나도 그냥 웃고 만다. 나중에 알고보니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고 그 날의 행사로 군인들이 시가행진을...



*가운데 사진 속 군복의 색에 놀랐는데, 타이밍을 놓쳐 사진이 영 그렇다. 진짜 특이한 색의 초록과 파란 베레모의 조화. 한번도 본적없는 것 같은 색과 색의 조화(?)였는데...*


줄 맞춰 씩씩하게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우렁차게 한 목소리로 군가로 짐작이 되는 선동적(?)인 느낌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왜 우리 학교다니던 시절, 어린 청소년들에게 체육복 똑 같이 입혀 줄맞춰 구령하며 행진하기를 시켰는지 좀 이해가 될 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보여주고 있는 '질서(?)'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있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무리에 섞여 한참을 구경꾼이 되었는데...




괜한 질문을 던졌던 옆의 제복의 아저씨, 한 무리가 목청껏 노래부르며 들어서자 구경꾼들 틈에서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거수경례를 하는데, 내 상상일지 모르지만, 그 표정엔 행진하는 젊은 청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애정이 넘친다.. 그런 광경에 난 또 한없이 감동한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동물이든, 조국이든... 무엇이든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겐 한없이 아름다워보이고 그 순간 내 마음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bella figura(폼잡기:어디까지나 나의 해석...^^) 빼면 시체라는 이탈리아 남자들. 제복입은 남자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리오... bella figura의 상징 motocicleta와 cellulare*


잠시 멈춰 서는 동안 엄숙하고 긴장된 표정을 풀고 이탈리아 ragazzo로 돌아오기도 하고, 행진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는 언제 우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행진을 했지 싶게 박수치고 노래하는 관광버스가 되기도 하고, 길에 서서 관광객들과 같이 포즈를 잡아주기도 하고, belle ragazze들에게 특유의 장난스러운 시선을 던지기도 하고...




무리가 만들어내는 질서... 태어나서 청년 시절까지 군인 출신이 다스리던 나라에서 자란 내가 모르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획일적인 것, 자연스럽지 않은 것, 연출된 것, 형식에 맞추어야하는 것... 그런 것들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해도 태생적으로 맞지도 않을 뿐더러 형식이 지나치게 중요한 곳에 오래 살다보니 약간의 거부감까지 있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질서에 국군의 날 행사에서 받지 못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이런 감동이 내겐 의외이고 낯설다.




저렇게 다양한 모양의 제복이 있구나, 제복도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 다양한 모양과 의외의 색과 디자인의 제복이 질서와 자유로움의 균형을 맞춘 걸까? 특별히 계획되어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지만, 놀랄만큼 아름다운 거리와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일까?




*베네찌아의 san marco 보다, il ristorante san marco가 먼저 떠오르다니.. ㅎㅎㅎ*


뭔가 짐작이 되는 것, 의외이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은 너무 '이탈리아스럽지 않다'라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잡은 그들에 대한 생각과 다른 그들의 모습, 격자무늬의 대열을 신선하게 느끼는 것일까? 행진 중간중간에, 끝에 병사이기 이전 이탈리안인 그들의 모습에서 느낀 자유로운 질서의 냄새가 날 감동하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좀체로 보기드문 한 무더기의 잘 생긴 제복의 이탈리아 청년들과 신사들(간간이 숙녀들도 있었다)이 그저 감동일까? ^^



*카메라 들이대고 'posso.. (저...)' 한마디에 삼삼오오 흐트러져서 수다떨기에 바빴던 그들이 서둘러 하던 대화를 멈추고 담벼락에 일제히 달라붙어 사진찍기 포즈를 취한다. 어찌 그들을 귀엽다하지않을 수 있을까.. ㅎㅎㅎ 내가 찍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속옷(?). 하얗고 파랗고 빨갛고.. 보이지않아도 저렇게 알록달록한, 그들의 깃발 색이기도 한 속옷을 군복안에 폼나게 받쳐 입고 있었던것*


덕분에 길도 막혀 바쁜(^^) 와중에 한참을 서서 기다리기도 하고, 지하철 역도 닫혀 한참을 더 걷기도 하고... 하지만 마음은 non c'e` problema... 아무 문제 없어요... 가 된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기준으로 보면 참 종잡을 수 없는 그들에게 난 왜 이렇게 자꾸 너그러워지기만 하는 것인지... ^^



*개선문 찍는 척하며.. 그레고리 펙을 닮은 경찰(?)이 콜로세움과 개선문으로 향하는 길을 막는다. 다리도 아프고 돌아가기는 한없이 멀고... 이 진하고 잘생긴 아저씨를 그냥 감상하기로.. ^^*

4 comments:

asterope said...

회사에서 POST를 막은 거 같아요... 한국은 이제 여름 느낌 납니다. 에어컨 틀고, 짧아진 옷 길이에... 로마 스냅사진 참 좋슴다 ^^ 오늘도 행복하게 ~~

asterope said...

앗.. 올라가네요... 으흐흐 ~~ 여기 Blogger도 Update 기능 제공하면 좋겠당 ~~

anna said...

어느새 여름이에요? 열흘 여행 내내 어찌나 추웠던지.. 더워지기전에 로마여행하자 생각했었는데 제대로 더위 피한것 있죠... ㅎㅎ
그런데 슬픈소식.. 갑자기 3일전부터 카메라가 작동을 안해요.. 슬프다 못해 비통하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Chief Seattle said...

흐흐... 마음 뺏기는 거 좋아.
로마에서는 청소부들도 주황색 Overall 한 쪽 어깨끈을 쓰윽 내리고 멋드러지게 연출해서 입더래죠.
그들 보면서 나는 침을 쓰윽~ 닦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