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2006

테디베어 만들기

보라.분홍 자매의 탄생.
지난 해 사무실에서 우연히 테디베어 강사 자격증을 가진 동료를 알게 되어 배우겠다 시작한 곰인형 만들기. 누군가의 왜 만드냐는 물음에 옆에서 누가 대신 대답했다. "그거라도 만들지않으면 미치는 거지..." 흐흐흐... 꼭 맞는 말도 아니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가사시간 이후로 심각한 바느질을 해본적이 없다보니 처음엔 바느질을 왼손으로 했던가 오른 손으로 했던가 바늘잡는 손도 헷갈렸고, 디지털 시대에 소프트웨어 엔지니가 바느질을 한다는 사실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아무생각없이 한땀 한땀 떠서 모양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첫번째 연습삼아 만든 포비는 만들기가 무섭게 조카 녀석이 기다렸다 들고 가고, 둘째 보라는 솜을 너무 많이 넣어 딱딱하지만 낙천적인 표정을 지닌 녀석으로 태어났다. 셋째 분홍이는 어이없게도 재단을 잘못해서 천을 구해서 해야지 미뤄뒀었다. 결국 천은 못 구하고, 남은 천을 이어 붙여 해를 넘겨 끝을 냈다. 여기 보라.분홍 자매의 모습이... 분홍이는 곧 다른 조카의 선물로 줄 예정이다.

4.27.2006

음식: 타파스(tapas)


바게트 빵 위에 새우를 얹은...
야채 샐러드와 절인 멸치를 얹은..
올리브 오일과 마늘, 소금을 뿌려 구운 양송이 위해 새우를 얹어 주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에 나온 스페인 음식인데 설명으로 보아 이탈리아의 부르스케따(Bruschetta)와 비슷한 음식으로 보이는데 맛있겠다. ^^

4.26.2006

책: 소심하고...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2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김남희.미래M&B.2006

긴 제목이 마치 날 가리키는 것 같아 첫번째 책을 회사 자료실에서 빌려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 친구 지O를 닮은 윤O책임이 보내준 책이라 더 동기부여가 됐다. 은행에 가야했는데, 제치고 단숨에 읽었다.
당장 Camino de Santiago에 서는 한국인 순례자가 많아질 것 같다. 그 고단하고 먼 길.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환대. 서로 나눈 격려, 우정, 음식, 배려, 이해.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사람들을 변하게 하는 모습이 상상이된다. 순례자의 시선이 머무는 풍경은 책 속의 사진에 이미 머리속에 있는 스페인의 이미지가 더해져서 더 없이 아름다운 곳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여정의 고달픔을 감안해 읽더라도 좀 서운함이 있다. 제목처럼 글쓴이의 까탈스러움이 글 속 여기 저기 묻어난다. 순례자로서 고행은 충분하지만 여유와 관조가 부족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마무리하며 여행의 의미를 끌어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솔직함을 약간 잃어버려 전체가 어설퍼진 것이 아닌가 싶다.
Anyway, 이 책을 통해 지구 상의 멋진 공간 Camino de Santiago를 알게 되었고, 그 길은 마라톤에 이어 언젠가 도전하고 싶은 꿈이 되었다.


... 그 길을 걷고 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문명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에 등 돌릴 힘이 내기 있다는 것을.
서문에 지은이는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감동적인 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 표현이 과장스럽다 느끼지도 않았는데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땐 진짜 마음을 써야겠구나, 그래야 글로 인한 그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 허세를 부리며 무언가를 표현해본 기억도 없고 누군가로 부터 글로인한 괜한 비난을 받아본적도 없는데...
책을 더 읽다보니 이 멋진 표현은 지은이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표현에서 따온 것이었다. 역시, 영적인 인디언다운 표현이다.


... 사람이 하늘을 날지 않는 것은 그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길을 더 즐기려 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에밀 자멜


참 긍정적인 생각이다. "말도 안돼. 어떻게 날수 있는데 걸어만 다니겠어?" 이런 핀잔 또는 비웃음의 말을 무색하게 하는 진정함, 진지함이 느껴진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에서 푹 쉬고 난 후 다시 걷는다. 나비들이 내 주변을 날아 다닌다. 살그머니 말을 걸어본다. "나비야, 이리와서 내 어깨에도 앉으렴. 난 꽃은 아니지만 가끔은 꽃처럼 아름다워 지기도 하는 사람이란다."
자신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시선이 예쁘다.


... 벗들의 편지를 읽다가 눈물이 났다. 서울에서 산다는 것. 그 삶이 밀어가는 속도와 그 삶이 강제하는 무게와 그 삶이 남겨주는 절망과 희망. 그 거대한 도시의 귀퉁이에서 저녁이면 혼자 대문을 따고 들어가 어떻게든 버티어 보려고 비척거렸던 시간이 떠오른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고,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을 가고, 내가 나 자신이기 위해 힘들게 싸워야했던 곳. 뿌리가 약한 나를 지치게 하고, 흔들리게 하고, 두리번거리게 만들었던 곳.
얼마 전까지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던 것 같아서...


북미 인디언들은 "신과의 만남이 이렇듯 침묵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이유는 모든 언어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하고, 진리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언어는 많은 상황에 많이 부족하다. 나이를 먹을 수록 이 말이라는 것을 어떻게 현명하게 하느냐가 숙제처럼 느껴진다.


긴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 내게 보내온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자꾸 뒤돌아 보지는 마. 한번 길을 나섰으면 그냥 앞만보고 가."
그때는 뒤돌아 보지 않으려고, 남겨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곤 했다. 하지만 지금 난 뒤돌아 보는 나를 허용한다. 지금껏 걸어온 길이 나를 이루어 왔기에 가끔은 뒤를 돌아보는 일도 필요하지않을까.

난 대체적으로 마음이 원하는 자연스러움에 반해야한다는 것이 싫다. 사람이니까 절제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생에 뒤 돌아보고 싶으면 보는 것이지 뒤돌아 본다고 소금기둥이 되는 것도 아닐텐데 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뭔가? 마음은 자꾸 돌아보라 하는데 돌아보고 싶지 않은 척 앞만 바라본다고 앞으로 가지는 것이 아니다. 보고 싶을 때 마다 자꾸 뒤를 돌아봐서 뒤를 돌아보는 것이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앞으로 가는 발을 뗄 수 있거나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 성 프랜시스가 겨울에 편도나무를 들여다보며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해 달라고 부탁하자, 갑자기 그 나무에 꽃이 만발했다고 한다. 나도 사람들이 산티아고에 관해 이야기 해달라고 할 때, 내 얼굴이 미소로 덮이고 내가 환한 꽃으로 피어나기를 꿈꾸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눈앞에 펼쳐진 밀밭이 일제히 꽃을 피워낸다해도 감동할 여유가조차 없이 그저 걷고만 있을 뿐이다. 나만 홀로 어떤 낯선 시간, 낯선 공간에 떨어져있다는 격절의 느낌 속에서
여정의 고단함이 제대로 느껴진다.


(미국의 평화의 순례자라 불리던 여인의 말이다. 그녀는 걷기 시작한 이후로 돈은 한푼도 지니지도 쓰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여행하고 싶으면 일어서 걷기만하면 된다. 나를 구속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쉴 곳이 생길 때까지 걷고 먹을 것이 생길 때까지 굶는다. 나는 달라고 말하지않는다. 말하지않아도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선하지 않은가! 나는 평균 40킬로미터를 걷는다. 걷는 중에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가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말이다. 하루에 80킬로미터를 계속 걸은 적도 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거나 마땅히 쉴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추운날 밤에는 밤새도록 걸으면서 체온을 유지한다. 나는 철새처럼 여름에는 북쪽으로, 겨울에는 남쪽으로 이동한다!


(독일의 신부가 한 말이란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이제 선교의 목적이 될 수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교란 불교도가 더 나은 불교도가 되게 끔, 이슬람 교도가 더 나은 이슬람 교도가 되게 끔, 힌두교도가 더 나은 힌두교도가 되게 끔 돕는 거지."


Work like you don't need the money,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Dance like nobody's watching,
Song like nobody's listening,
Live like it's heaven on earth.

어떤 프랑스 작가가 쓴 책에 나왔던 귀절인데.. 책이 생각이 안난다.
그런데 'Work...'만 빼고 찬성이다. 대한민국에는 그렇게 일하면 바보로 아는 회사, 상사, 동료들이 종종 있다. ^^


미국인 아줌마 캐시가 들고 다니는 수첩에는 사소한 것까지 빼곡하게 적혀있다. 이 여행을 준비할 때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이 엄마에게 그 수첩을 선물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면 저도 그 길을 걸을 거니까 저를 위해 그 수첩에 좋은 정보를 많이 남겨주세요."



... 늘 웃되 진심어린 미소이기를...
나 또한 그런 바램을 가져본다.


... 인디언들의 세계관에 나는 마음이 끌린다. 인디언들과 신 사이에는 성직자가 필요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신과 곧바로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 누구나, 홀로, 침묵속에서 신과 만났다. 장엄한 대 자연 앞에서 말을 잃을 때면 인디언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예배하는 자세를 갖추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굳이 일주일 중 하루를 신성한 날로 정할 필요가 없었다. ... 신전도 없이, 신의 대리자도 없이, 주일도 없이.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살았던...


... 그러니까 내게 필요했던 건 결국 확신이었던 거야.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있다는 믿음...



(프랑스 할아버지가 글쓴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어쩌면 지금이 바로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네 가슴이 말하는 것을 따라가며 인생을 즐길수 있는 시기인지도 몰라.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에 우리(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50년지기 친구)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결정을 해야할 일이 생길 때면 대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 "카미노가 결정하게 끔 내버려두자."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때로는 그렇게 삶이 스스로를 결정하게 끔 내버려두는 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순간에 인생이 내게 하고 있는 말 같기도 하다.

4.09.2006

책: 여자의몸


여자의 몸. 신성림. 시공사. 2005
회사 친구가 친구 쓴 책이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나의 그림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필요 이상 자극적이란 인상도 있었고, 이런 류의 책을 들 여유가없어 한동안 방치하다, 선물 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하며 갑자기 한가해진 참에 펼쳐들었는데...
제목이 주는 인상을 극복할만큼 신선하고 진지하고 재밌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마케팅, 전략, 기술 이런 것과 동떨어진 인문서 자체가 주는 신선함도 있었다.
세상의 주체였던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작품 속에서 여성의 몸이 표현된 방식을 통해 남성에 의해 설정된 여자의 몸, 나아가 여성 자체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그 이데올로기에 무심코 지배당해온 삶과 의식에 생각이 미치게한다.

책 속에서...
신학적, 역사적, 문화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의 몸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남성이었다. 신/남성/예술가의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손아귀에서 '역사적인' 여자의 몸이 빚어졌고, 그의 시선이 그녕의 몸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상징적인 창조 작업은 완료되었다. ... 만들어진 몸이란 있는 그대로의 몸이 아니라 그랬으면 하는 몸, 그래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 *

클림트의 <아담과 이브> ... 눈을 감고 있는 아담. 어둠을 지우면서 더 환하게 드러나는 빛처럼 매혹적인 이브... 태도나 표정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수하다. ... 새상을 향해 쏟아지는 빛을 혼자 다 빨아들인 듯 밝게 빛난다. 그녀는 왜 빛나는가? ... 정신과 육체사이의 긴장을 볼 수 없다. 아직 거울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그러하듯. 갓 태어난 그녀는 몸과 관련한 어떤 종류의 분열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초의 몸은 ... 누가 엿보라고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생겨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모르고, 불만도 모든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몸이다.  이브의 몸이 빛나는 까닭은 그 몸이 아름다운 여자의 몸이어서가 아니라 이 같은 '소박한 단일성(혹은 자족성)'을 보여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덴에서나 가능한 그 상태를 전혀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는 그녀 앞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은 질투와 놀라움으로 물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거울은 내 몸을 바라보는 타인의 눈이다. 클림트의 이브가 자족적인 단일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아담과 함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눈을 감고 있는 순간은 아주 짧았다. 그가 눈을 뜨면서 여자의 몸은 '굴절'된다. 그의 시선에 따라 환상 또는 괴물로...
괴물은 공주를 탐내는 다른 남자일 수도 있고, 공주를 얻기위해 주인공 남성이 거쳐야 할 난관의 총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보면 그 괴물은 공주 안에 있는 어떤 특질일지도 모른다. ... 괴물, 그것은 성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힘이든 여자 안에 있는 어떤 부분, 그들이 포섭하거나 이해하거나 지배할 수 없는 부분을 대변하고 있다. ... 기독교 이전의 신화나 초기 성서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읽으면 자신의 욕망에 부합하는 여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렇지 않은 부분을
괴물로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욕망과 모순되는 다른 욕망 역시 분명히 존해한다. ... 그럴 때 몸(여자)은 영혼(남자)이 신의 세계로 상승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 욕망(결국 육체)을 키워 이성의 건강한 판단을 가로막은 사악한 유혹자가 된다. 인간이 신의 세계(영혼/이성)로 진입하는데 장애가 되는 몸, 극복해야할 몸 자체가 여성이 되는 것이다.


* * *

네발로 기어다니던 인간이... 허리를 펴고 서게 되면서... 인간의 중심 감각기관이 후각에서 시각으로 옮겨갔다. ... 인간이 세게를 인식할 때 가장 크게 의존하는 감각의 종류를 바꿔놓았는데... 생산성을 추구하던 의식(시선)이 한단계 진보하여 문화적/미적/성적 의식(시선)을 가지게 (됐다). 즉, 보이는 것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결정하는 단계가 개입된 행위(고)...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남성'이었다. 결국 시선을 독점하게 된 남성들은 아름다운 몸, 특히 아름다운 여자의 몸이 어떠해야하는지 결정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 * *

만일 그림 안에서 여자의 옷을 벗기는 의도가 흔히 설명하는 대로 여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일 뿐이었다면 어머니의 몸이라고 벌거벗지 못할 까닭이 없다. 실제이건 그림 안에서이건 벗은 여자의 몸이 남자의 즐거움과 욕망의 도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남성 화가들은 성모의 몸을 겹겹이 감싸고, 어머니의 목을 겹겹이 감싸고, 임산부의 몸을 겹겹이 감쌌다. ... 물론 이같은 금기에 도전한 사람도 있다. ... 클림트는 <희망1>에서 임산부의 누드를, 그것도 부풀어 오른 배가 돋보이도록 옆쪽에서 묘사하였다. ... 사회적 파장을 염려하여 깊이 감춰졌던 이 그림은 남성의 편의에 따라 여성을 둘로 나눠오던 오랜 이분법을 깨고 있다. 성모와 이브가 한 몸이 되었고, 어머니와 창녀가 한 몸이 된 것이다. ... (하지만) 당대의 금기를 깨는 작품을 제작했다고는 해도 결국은 남성화가가 갖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 그래서 여자는 인습에서 벗어난 불길한 관능으로 남성의 욕망을 한층 더(혹은 색다르게) 부채질하고, 그녀의 몸도 또 다른 욕망의 대상이 될 뿐이다.


* * *

번 존스의 <기만당한 멀린>은 전설적 마법사 멀린이 제자 니무에에게 속아 넘어가 산사나무에 갇힌 장면을 담고 있다. ... 동침을 하겠다는 니무에의 약속에 눈이 먼 멀린은 ... 산사나무에 갇혔다 나중에는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탑에 유폐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림 속의 나무에는 이런 내용과 무관한 듯 몹시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가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치가 여러 곳에 숨어 있다. 그녀의 맨발은 멀린을 사로잡은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머리카락의 뱀은 결국 그녀가 착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가장 위협적인 부분은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이다.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지식을 소유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아주 최근까지도 여자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일이다. 남성만이 장악해야 할 지식의 세계를 넘본 것만으로도 니무에는 용서받기 힘든 죄를 저지른 셈인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결국 그 지식을 자기 손안에 넣고야 말았으니 외모와 달리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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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눈이 당당하게 직시하는 모습에서 매력을 발위한다고 여겨진 반면, 여자의 눈은 공손하고 다소곳하게 내리뜰 때 미덕을 갖는다고 강조되었다. ... 결국 여자의 눈은 바라보는 눈으로서의 기능보다 보이는 눈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 * *

흔히 남성 노인들은 오랜 세월을 겪은 심오한 영혼과 깊은 통찰력이 육체의 상실을 어느 정도 보상해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여성노인들은 생명과 성적 매력의 상실이라는 이중의 상실을 보상해줄 어떤 성과물도 없이 퇴락한 모습으로 묘사될 뿐이다.


* * *

마네의 올랭피아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 비슷한 자세로 기대고 있으며, 왼손을 음부 근처에 두고 있는 것까지 똑같다. ... 마네의 그림만이 커다란 물의를 빚으며 외설적이란 비난을 받았다. ... 옷을 벗은 여자를 다룬 그림은, 당시에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무수히 많았다. ... 문제는 옷을 벗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바라보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는데 있었다. 그것도 교태를 부리며 살짝 훔쳐보는 것이 아니다. 그 여자의 눈은 나는 네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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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의 기능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여자의 입에 대한 관심은 먹고 말하는 입 자체보다 입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 입술 자체가 여성적인 기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자의 입술이 입술 전체를 대표하는 표피적인 승리 뒤에는 여자의 입이 겪어야 했던 대대적인 수난과 박해의 역사가 숨어있으며, 이것은 여자의 언어능력과 관련이 있다. ... 칠거지악... 그 여섯 번째가 수다스러움이었다. ... 조선 말기에는 ...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와 질투가 심한 경우가 강제 이혼 사유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수다는 여전히 규제해야 할 특징으로 남았다. 여자의 말에 대한 병적인 혐오 혹은 두려움을 새삼 확인 할 수 있다.
* * *

... 여자의 발은 비천함이나 고난보다 성적 암시가 강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 결국 남자의 발이 신체의 이동 가능성이라는 발의 원래 기능과 결부되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상징이라면, 여자의 발은 성적인 암시가 강한 은밀한 부위였다. 남자의 발이 발 그 자체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면 여자의 발은 남자의 눈에 보일 때의 의미를 강조한 셈이다. ... 자처해서 자기 발을 묶는 심리적 전족은 어디까지가 내 다리이고 어디서부터 사냥개의 이빨인지도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의문이 들 때는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을 생각한다. 두툼한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달려가는 그 여자들의 튼튼한 다리를 바라본다. 그들의 옷이 헤쳐져 속살이 드러나고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지만, 그들의 관능적인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저 달리는 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칼로가 날개보다 더 갖고 싶었을 다리, 심리적 물리적 전족에 시달리던 여자들이 꿈꾸었을 다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 * *

... 인간의 나체를 다루는 작품은 이 같은 성차를 반영하는 동시에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 <아폴론의 벨베데레>와 <메디치의 비너스>를 함께 놓고 보면, 이런 차이가 얼마나 뿌리 깊고 공공연한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폴론 벨베데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몸과 당당한 자세를 통해 위대한 남성신의 권위와 위엄을 잘 보여준다. 그는 옷을 벗고 있지만 아무것도 가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보는 이를 의식하지도 않고, 자신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의식도 없다. 사신이 존해하는대로 받아들이고 섬기라고 명령하는 듯 한 자연스러운 권위. 그가 신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메디치의 비너스>... 같은 신이고, 그녀의 몸 또한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권위와 위엄을 포함하는 신성은 그녀의 몫이 아니다. 아폴론은 활과 화살로 무서운 괴물을 물리쳐 도시를 구한다. 비너스의 무기는 무엇이고 그녀는 무엇을 하는가. 양팔로 자기 가슴과 음부를 가리고 있다. 순결한 비너스의 자세로 칭송되었던 자세.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몸이 사유와 관조에 제공되는 수동적 대상임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끼는 자의 자세일 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몸을 약간 굽힌 듯한 태도로 고개를 가볍게 앞으로 기울인 자세, 여성적인 우아함을 환기시킨다는 그 자세는 여성의 성적 취약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성에게 필수적인 덕목인 겸손을 지시한다. 이상적인 여자의 몸이 드러내는 신성함이란 순결과 겸손의 옷에 불과했던가. ... 여자가 옷을 벗을 때 마지막까지 결코 벗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옷인지 모른다. 자세가 만들어 주는 관념적인 옷.

4.08.2006

Journal



오래된 팝들이 심장마사지를 한다. 맛사지할 때 뭉친 곳을 건드릴 때 아픈 것 처럼 마음 이곳 저곳이 예사롭지 않은 통증에 움찔거린다. Try to remember,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early in the morning, Sealed with a Kiss... 그리고 The Band란 밴드...

원미산에 갔다. 날이 흐려 사진을 찍겠다는 어제의 생각은 보류.

오는 길에 홈플러스에 들려 'Grab it'의 한국버젼 'Catch it'과 Book ends, 독서대, 세일 중인 '맛있는 우유 GT' 1리터 짜리 두 팩, 그리고 한달도 더 빚진 진O 생일 선물을 샀다. Classic Board Game, 블루마블.

bookends 산김에 책상도 책들도 좀 정리하고, 역시 신통한 'Catch it'한 장으로 방이며 마루며 구석구석 먼지들을 닦아내고. 청소기를 돌려볼까하다 해야하는 일은 오늘은 여기까지 싶어 my own formula의 커피 한잔을 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원미산 입구 무렵 제법 넓은 밭 저편에 하얀 목련꽃나무 숲을 뒤로 하고 있는 마당이 아주 넓은 오래된 낡은 집이 눈에 뜨인다. 내려오는 길에 그 집을 찾았다. 얼핏 보기와 달리 주변 골목이 복잡했고 골목 사이사이 작은 쓰러져가는 것 처럼 보이는 집들이 있었다. 하지만 골목 사이사이의 나무들과 환하게 핀 꽃들은 그 곳의 삶을 부럽게 했다. 집을 찾았고 한 바퀴 돌았다. 주소도 외웠다. 역곡동 xxx-x. 대문은 열려 있었고 입구에 서있는 녹슨 경운기 달구지로 보아 농부의 집으로 보인다. 새마을 운동 양식의 건물은 오랫동안 손질하지 않은 듯 보이고, 다른 한 쪽 소 외양간 정도로 쓰였을 것 같은 곳에는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넝쿨로 담장을 삼은 사이으로 보이는 밭터는 묵어 잡풀이 덮인채로 있고, 엄마 말씀이 젊은 사람들은 다 나가고 두 노인네 겨우 농사지으며 사는 집 같단다. 그래도 흔하지 않은 꽃 잎 작은 목련이 그 긴 담을 둘러 몇 십년은 있어온 것처럼 보이는 것 하며 집 뒤로 심어진 나무들 하며 유복했던 농부의 삶의 흔적이 보인다. 얼마전 누군가가 집은 원하면 내것이 된다는 말이 있다했다. 그 집 또한 원하면 내 것이 될까? 우리집 열배는 될 것 같은데. 고삐 풀린 상상은 마음껏 나래를 펼친다. 산, 나무, 햇볓, 들... 주변 자연이 있어 필요없는 것들 버리고 청소만 깨끗이 하면 더 이상의 장식은 필요없을 것 같아. 이웃집을 고려할 때 근사한 외관의 집은 Non-sense야. 태양열로 따뜻해지는 집이면 좋겠지. 외관은 그대로 놔두고 부엌과 침실 욕실만 깨끗하게 고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 근사한 아웃도어용 테이블과 의자 몇 개면 4계절 늘 행복할 것 같아. 등등...

사주풀이 아주머니 말씀이 사주에 흙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흙(자연)과 가까이 있어야한단다. 살풍경한 공동주택에 살아본 적은? Cambridge에서 작은 세로 쪽 창이 전부인 Studio에서 산 적이 있다. 창밖 풍경이 대다수 우리나라 아파트의 그 것 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사람들의 활기가 없으면 무표정한 도시의 얼굴이 되어버리는 거리였다. 다분히 집순이 기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말 내내 그 안에 있는 것은 불가능 했다. 창 옆에 앉아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을 내려다 보곤하던 내모습이 영문도 모른채 감옥에 갖혀 웅크리고 앉아 사각의 작은 창으로 보이는 하늘만 바라보던 영화 속 부시맨 같이 처량히 느껴지기도 했었다. 얼마 후, Brookline으로 이사를 했고, 그집은 하루종일 볕이 좋았지만 아침햇살이 너무 아름다웠고 창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나무로 둘러쌓였다, 나즈막한 2,3층의 집들, 작은 공원과 오래된 교회건물. 주말 집에 머물면서 햇볕과 계절을 즐기는 것으로 마냥 행복해 했던 기억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 아파트가 되어 버린지 오래지만 난 아직 우리나라 식의 아파트에 살아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서 살기를 싫어하다 못해 두려워하고, 땅, 나무 그늘, 꽃, 햇볕을 유난히 그리워하는 까닭은 타고난 사주가 그래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2006.04.13.목)


원미산 등산. 엄마가 절에 가셔야하므로 짧은 코스로. 엄마는 찔레 잎을 따는 아주머니가 그냥 지나쳐지시질 않는다. 카메라를 들고 나온다는 것을 깜빡. 내일.^^

번역강좌 두 시간 전 신촌에서 수O을 만남.
신촌. 오랫동안 집처럼 편안한 적이 있던 동네이고, 떠올리면 늘 마음 한구석이 찡할 만큼 그리운 곳이다. 실제 신촌거리에서 서면 난 이방인인이 됨을 느껴도 그곳에서 만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내 청춘이 반갑다, 오래 전 언제가 부터...
20년전 즐겨 가던 '궁'을 찾아 헤메는 나의 시선은... 어리숙함을 넘어서 어리석음이란 신호가 오고. 태림 레코드도 없고, 용약국도 없고, 신촌로터리에 있던 서점(앗,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도... 나의 신촌시절 초반 까지는 아니더라도 후반기의 corner stone이 되어주었던 곳들 까지도 안 보인다.

일본식 라면, 초밥, 도시락, 샤브샤브 칼국수, 파스타. 그 모든 가볍고 fancy한 곳을 외면하고 그 시절 즐기던 맛을 기대하며 즉석떡볶이를 먹으러 들어갔는데, 그 맛은 참... 뭐라고 해야할지. 떡볶이 같이 맛없게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 왜 그래야만했을까?

어떻든, 후식이 필요했다. 파스쿠치에서 이름으로 정체가 짐작이 되는 쇼콜라쇼콜라와 마지막 모금까지 우유거품 하트가 떠있는 카푸치노로 마무리하며,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뜨거워 데일 것 같은 열정에 냉소를 보냈다.

번역강좌는 유익하다.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사소하다고 생각되지만 원칙이 필요할 것 같은 부분을 긁어준다. 미리 Question List를 Compile해서 질문을 서슴치않은(?) 나답지 않았던 내가 기특하다. ^^ 무엇보다 강선생님의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 느껴지는 접근 방식은 삼성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지 않은 그 모든 것에 숨이 막히기 일보직전이었던 내게 산소마스크 같다. 첫 날 전직 IT라 밝힌 것이 화근이 되어 IT관련된 다음 번 Text 번역을 대표로 하게 되었다.

백수 삶의 전형인 밤 낮 구별 안하고 사는 짓은 하지 말고 살아야하는데, 새벽 두 시 넘어까지 인터넷 뒤지며 그리스 신들의 가계도 그림. 으---, 하는 일이 없어 피곤하지도 않은데다, 늦게 방심하고 커피를 마신 것이 화근. (2006.04.12.수)


오랜만에 원미산을 올랐다, 그 것도 좋은 봄날, 평일 아침에. 대문을 나서 정상까지 돌아오면 한시간 남짓 걸린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 목련 등등 꽃들이 만발했다. 무채색의 가지 끝이 붉으레하거나 아니면 연 초록을 품었다. 생명이 움트는 봄이란 계절이 느껴진다. 엄마는 눈에 띄는 나무와 풀을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다. 무슨 나물이며 어떻게 먹고 어디에 좋다더라... 그런 이야기는 매번 반복이 되도 듣기 지루하지 않다. 나또한 듣고 잊고, 듣고 잊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엄마는 언제 나물깨러 와야겠다 벼르신다. 난 진달래 몇 잎 몰래 따다 '화전'이란걸 한번 부쳐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원미산 진달래 축제는 우리의 코스를 비껴 일어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진달래가 지천이다. 해마다 이 무렵 이 풍경에 아버지 입원하셨던 한양대 병원에서 보이던 산을 붉긋하게 물들이던 진달래와 함께 아버지가 생각난다.

돌아오는 길에 있는 시장에서 뉴질랜드 산이라는 단호박 한 통, 브록콜리 등을 샀다. 시장아저씨 왈 단호박은 뉴질랜드 산이 가장 맛있단다. 점심으로 밥대신 과일, 채소 등을 먹으려는 생각. 일도 안하면서 세끼를 밥으로 먹는다는 부담도 있고, 인천공항 프로젝트로 3개월간 요가를 쉬는 동안 다시 찐 지난해 뺀 살의 반과 더불어 목표 체중(?)까지 빼야한다는 꿍꿍이도 있다. (2006.04.11.화)


오랫만에 친구 만나러 나간 김에 백화점에 들렀다.
마땅한 디자인이 없어 못사던 신발을 무심코 사고, Lip Balm, Lip Gloss도 사고,
세일하는 철 이른 봄을 위한 Wool 스카프도 사고...
머리하고 나온 미O을 만났다.
Krispy Kreme 오리지널 grazed 도넛과 커피, 떡볶이 야채튀김 먹고
화제는 물론 나의 퇴직과 앞으로의 계획.
한동안은 반복해야할 이야기인 것 같다.
당분간 취미생활(?)하며 계획없이 놀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많은 것은 부럽지만 긴축경제의 상황은 부럽지않단다. ^^(2006.04.08.토)

휴식(?) 첫날
8시 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신문읽고 다시 한숨 자고...
4월말 미국으로 떠나는 정O의 문자에 전화해서 약속하고...
샤워, 음악파일 정리.
지O와 정O을 만남. 일년만에 만난 지O는 boy가 되어있었고
정O과 스위트룸이라 붙여진 'Where the truth lies'란 영화를 보고,
Colin Firth의 파괴적, 폭력적 연기에 상처받음.

주말 같다. (2006.04.07.금)

4.06.2006

마지막 출근


마지막 출근. 사연많은 Notebook 반납하고, 팀 사람들과 점심먹고, 인사하고... 남들처럼 메일로 그동안 같이 일을 해 영광이고 기쁨이다 뭐 그런 빈말을 별로 하고싶지않아 메일 열었다 닫고, 가까이 지내던 동료들과 저녁먹고 차마시고 그렇게 Software Engineer로서의 10여년의 월급쟁이 생활을 정리했다.

4.05.2006

혼자 하는 여행


어느 날 TV를 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도시 베로나(Verona)에서 7,8월에 오페라 축제를 한단다. 현존하는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공연을 한다는데, 원형경기장의 구조가 음향시설 없이도 소리가 아름답게 울린단다. 관객들이 어깨와 어깨를 걸고 아리아를 합창하기도 했다. 순간, 너무 그 곳에 가고 싶어졌다. 곧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고, 몇 시간 내에, 그 곳은 가야만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고는 무지 분주하다. 축제 일정과 회사 일정 맞춰서 여행 날짜 잡기, 부장님 구워삶아 휴가 결재 받아내기, 휴가철 성수기에 비행기 표 구하기, 호텔예약하기... 떠나기 며칠 전에서야 갈 수 있는 조건들이 만족되고 그제서야 휴~~ 하고 한숨 돌리고 발에 땀나게 회사일 갈무리 하고, 드디어 떠나는 날 아침. 비행기표, 여권, 신용카드? OK!!!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결되니까 상관없어 하며 집을 나섰다.

* * *

Aida, Rigoletto, Carmen, Nabucco... 한 주에 오페라 네 작품을 봤다. 청명한 한 여름 밤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 관객으로 앉아있는 것만도 감격스러운데, 하늘엔 별, 빙 둘러 꽉 채운 관객들 손에 손에는 일렁이는 촛불. 그 멋진 공간을 꽉 채운 본토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 화려한 무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다. 하루 저녁에는 이탈리아 대통령과 독일 수상 가까이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영광도 있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를 통해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하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내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아주머니는 독일어로 난 영어로 서로 포기하지 않으며 인내심 있게 communicate 해서 결국 통했다. 호텔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제대로 이해를 했다.

호텔의 풍성한 아침. 빵, 시리얼, 요구르트, 계란, 과일, 치즈, 커피. 혼자 먹는 아침을 한 시간 넘게 앉아 꼼꼼하게 먹었다. 하도 걸어 불 나는 발바닥을 식힐 겸 끼니 때 마다 평소 좋아하던 이탈리아 음식을 이 것 저것 시도해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급할 것 없는 이탈리아 웨이터들이 번번히 바쁜 여행객의 심정을 너무 몰라준 것이 조금 섭섭했지만. 각 종 파스타, 피자, 치즈 구이, Gnocci, 식당의 하우스와인, Prosciutto 와 멜론, 티라미수, 해산물 샐러드, 시큼한 이상한 생선 절임 등등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책과 같은 정보매체 속에만 있던 호기심, 관심, 동경의 대상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신기함, 지친 다리 이끌고 광장 한 켠 그늘 진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 먹으며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맛. 틈틈이 풍경 사진 찍고 확인하는 재미, 낯선 사람과 주고 받는 몇 마디 대화의 신선함. 광장 옆 노천 까페에 앉아 카푸치노 한 잔 앞에 하고 여행의 감상을 끄적거리는 재미. Verona에 이웃하는 Venice와 Padua도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구석구석 구경하고 돌아왔다.

* * *

여행에서 돌아와서 며칠은 현실이 꿈처럼 몽롱하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면 그 곳은 언젠가 꾸었던 꿈처럼 아련해지고, 그러다 비가 온다거나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거나 하면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여행의 기억이 찐한 그리움 뚝뚝 흘리며 모르는 새 내 이야기 속에 등장하곤 한다.

그럼 이내 돌아오는 질문은
“누구랑 갔다 왔어? “
“혼자... “
“패키지? “
“아니... “
그 대답에 이은 다음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눈이 커지며, "어머! 무섭지 않니, 어떻게 혼자 갈 생각을 할 수가 있니? 위험하다던데, 겁도 없다..."
아직도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걱정스럽게 하는 일인가보다. 여성과 문화의 세기인 21 세기에도 말이다.

* * *

여행을 좋아한다. 늘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살다 보면 어쩌다 정말 여행을 가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회사원 같이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 때 무엇보다 시간이 가장 문제다. 항상 일정을 약간의 무리를 감수하고 길게 잡는다, ‘내 휴가 내가 쓰는 상황’에 번번히 기색을 살펴가며 누군가를 구워삶아야 결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비행기 값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만은 아니다. 떠나고 싶었던 만큼,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떠나면 일상의 조각조각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찼던 머리가 깨끗이 비워지고 난생처음 존재하는 낯선 공간과 나, 그렇게 단순해 지는 그 느낌이 좋다. 낯선 곳을 헤매는 조금은 긴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하나도 변하지 않은 현실이 새롭게 다가오는 그 느낌도 좋다.

여행 일정, 여행지, 여행 패턴. 몇 개 안 되는 것 같은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동반자를 구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그래서 몇 번 홀로 여행을 하게 되었고 그 맛을 알게 되어버렸다. 혼자 하는 여행과 누군가와 같이하는 여행은 많이 다르다. 어떤 것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둘 다 좋다. 그런데 삶에 지쳐서 또는 삶이 던지는 여러 issue들로 마음이 복잡할 때 떠나고 싶다면, 경험으로 보건대 혼자 하는 여행에서 뜻 밖의 답을 얻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할 뿐이다.

살다 보면, 놓친 버스가 고장 나 서있을 때, 운전할 때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면할 때 등등 종종 ‘운이 좋았어’ 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날 보호하고 있구나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이 혼자 여행할 때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

* * *

베로나에서 가까운 국제 공항 중의 하나가 베니스 마르코 폴로 공항인데 밤 11시쯤 되어 도착 했다. 일단 택시로 메스트레(Mestre) 역 근처의 호텔로 가려는 계획이었고 택시비 바가지를 안 쓰려고 공항 여행안내소에 역까지 대략의 택시비를 물었다. 그런데 안내소 청년이 대답대신 “뭐 때문에 택시를 타니?” 하고 물었다. 늦어서 위험할 것 같다고 하자 “얼마 정도인데 버스 비의 한 열 배쯤 되거든. 그런데 여기가 뉴욕인줄 아니?” 하며 비웃는 듯한 답이 돌아왔다. 그 청년의 태도에 혹해 버스를 탔고 역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는데, 문제는 방향치가 지도도 없이 마의 시간(자정) 근처에 물어서 호텔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역 주변 골목을 한동안 이리저리 헤맸다. 그러다 가장 믿어지는 방향을 선택해 가고 있었는데 점점 골목이 깊어지고 인적이 끊어져 또 길을 잘 못 들었구나 하는 참에 길 건너편에 곱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서 시선을 내게 고정하고 걷는 것이 느껴졌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짐을 버리고 뛸 수도 없는 일인데다 지나친 경계의 태도가 더 위험하겠다 싶어, 태연한 척 먼저 말을 걸었다. “나 어떤 호텔 찾는데 아니?” 하며. 그러자 그 사람이 길을 건너 왔다. 어디에 있는지 안다며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다.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는데 그 사람의 의지를 잦아들게 하는데 실패했다.

이런 저런 이야길 하며 진행방향으로 계속 갔다, 방글라데시 사람이란다. 골목은 점점 더 깊어졌고, 공포 수준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다 왼쪽의 더 좁은 골목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아, 이거 무슨 일 당하는 거다 싶었다. 그런데 기적같이 경찰이 나타났다. 그 순간 호의를 베풀고 있는지도 모르는 저의 안내자의 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경찰에게 달려가서 그 사람이 말하는 길이 맞냐고 물었고 맞다고 했다. 그러고 나니 일단 근처에 경찰이 있기에, 그리고 경찰과 나, 그 사람이 얼굴을 마주 했기에 그 사람이 날 범죄의 대상으로 할 확률은 무지 낮아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놓였다.

하지만 한편 무지 미안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한다면 언짢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 “같은 아시아사람인데 널 해치겠냐? 혼자 다닐 때 이런, 이런 상황과 사람을 조심해라.”하고 하며 날 이해한다는 태도로 돌아왔다. 그 사람의 말처럼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다시 모퉁이를 돌자 호텔이 있었다. 호텔 앞에서 “다 왔다” 하는데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고 미안하던지. 10유로를 극구 사양하는 손에 쥐어주었다. 사례비 조로가 아니라 미안함과 고마움의 뜻으로 뭔가를 주고 싶은데 줄 것이 돈밖에 없었다. 그 밤 그 사람은 누군가 보내준 천사였다. 그리고 오래 전 비슷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 * *

첫 번째 ‘나 홀로’ 여행이었다. Brussel, Belgium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에 내렸다. 기차가 한 시간 넘게 지연됐고, 그래서 같은 구간의 기차표를 공짜로 준다는 방송이 나왔다. 물어, 물어 줄 서서 표 받고 런던 시내에 도착하니 예상보다 한참 늦어져 믿었던 여행안내소는 이미 문을 닫았다. 땅거미가 내릴 무렵 숙소도 정하지 않은 채 난생 처음인 곳에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혼자 서 있다 보니, 순간적으로 긴장이 되는 것이 마음이 침착해지질 않았다. 긴장을 넘어서서 공포라 해야 적당한 표현이리라. 어쩌나 하다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들고 있던 여행가이드에 있는 B&B중 하나를 무턱대고 찍어서 가자고 했다.

B&B는 런던 외곽에 있었는데 다행이 방이 있어 짐을 풀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긴장 내지 공포는 까맣게 잊고는 저녁 9시에 시작하는 뮤지컬을 보겠다고 택시를 타고 다시 시내로 나갔다. Les Miserables을 보았다. 공연이 계속되는 어느 순간 이 후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점점 마의 시간(자정)을 향해가는데 공연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떻게 보는 뮤지컬인데, 중간에 나갈 수도 없고. 결국 자정을 넘겨 끝이 났다. 집에서도 불가피한 상황 아니면 자정 넘어서 다니는 일이 없는데, “아무리 뮤지컬도 좋지만 내가 미쳤지 미쳤어” 하며 택시를 잡으려 하는데, 순간 극장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긴장을 하니, 영국의 좌우가 바뀐 도로 시스템이 더욱 적응이 안되어, 택시를 잡으려 이리 저리 길을 건너 다니는 동안, 서너 번은 죽을 뻔 했다. 차가 안 오는군 하고 건넜는데 끽~~ 소리를 내며 차가 옆구리에 서기를 몇 번. 인적은 점점 뜸해지고 그 시간쯤에 만날 법한 눈 빛과 걸음걸이의 이상한 사람들만 눈에 뜨이고, 머리 속은 공황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택시 한대가 끽~~ 하고 앞에 섰다. 무서워서 제 정신이 아닌 무단 횡단자 때문에 급정거를 한 것이려니 했는데 기사가 “택시 탈래” 하며 묻는 것이었다. 구세주 만난 기분으로 올라타 목적지를 말하려 보니, 글쎄 아까 B&B에 데려다 준 그 택시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 젊은 청년 기사도 알아보고는, "또 너구나. 어디 가는지 알 것 같은데" 하며 유쾌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몽이 될 뻔했던 밤이 누군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추억으로 남았다.

* * *

살아가는 것은 동반자가 있더라도 긴 여정을 가진 혼자 하는 여행이다. 때로 생활은 힘겹고 미래는 뿌옇고 두렵기만 하다. 어떤 순간은 삶이 두려워 제자리를 맴 돌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아닌 모습이 되기도 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하지만 차분히 돌이켜 보면 삶의 고비마다 누군가 어디에선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왔다. 그러니까, 영화 Billy Eliot에서 엄마가 편지로 Billy에게 남긴 ‘Always be yourself’라는 말처럼, 두렵게 느껴지는 삶과 세상을 믿으며 내 모습대로 자신 있게 당당하게 살아도 괜찮은 것이었던 것이다. 든든한 누군가와 같이 한 여행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들이 새삼 일깨워준 사실이었다.


4.04.2006

시선이 머물다



필리핀의‘무브먼트 8’의 디자이너 토니 곤살레스 씨의 작품. ‘무브먼트 8’은 1999년 필리핀의 가구 및 액세서리 디자이너 8명이 결성한 디자인 그룹.
(출처:donga.com)



iPod의 모든 버전과 호환되고 MP3와 CD 플레이어, 데스트톱 컴퓨터, 랩탑 등 다른 장치에서도 고질의 오디오를 들을 수 있도록 해 준다한다. 가볍고 작아 외부 어느 곳에서나 최상의 음향을 즐길 수 있다한다. iPod 충전, 동기화도 가능하다고 한다. 컴퓨터용 스피커가 필요한데, 이거면 많은 시간 서랍에 갖혀있는 iPod활용도도 높일것 같고...

4.01.2006

여행: Siem Reap, Cambodia

Siem Reap, Cambodia(2005.02.04 - 2005.02.11)


2005.02.10 저녁 8시5분 Siem Reap에서 Ho Chi Min시를 거쳐 서울로...
어둠이 내린 Siem Reap을 공항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 드문드문한 불빛 사이로 동서로 난 길 하나와 남북으로 난 길 하나가 유난히 두드러 진다. 두 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부터 북쪽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옮긴다. 그 길 어딘가에 앙코르 사원이 있으리라... 시선따라 도로 왼편으로 어렴풋이 조명이 여러개의 탑이 모여있는 사원을 밝힌 듯 한 이미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내게서 멀어지는 앙코르 사원이고 Siem Reap, Cambodia이며, 여행 내내 당황스런 풍경, 손길, 눈길 - 그 안에서 복잡 다단했던 내 마음이기도 하다.

여행사 광고에 시선을 뺏겨 일정 가격 날짜를 체크하는 날 심심치않게 발견하고... 그러다 문득 직항 노선으로 앙코르와트 여행이 쉬워졌다는 광고며 올해부터 restoration으로 공개를 제한하는 곳이 많아질 것이라는 소문, 한 겨울 망고를 비롯한 열대 과일의 만만치않은 유혹... 부담없이 패키지로 4박5일을 다녀오리라 하던 처음 생각은 막상 여기 저기 묻고 인터넷을 뒤져 알아보고 나니 갈 맛이 떨어지고. 게다가 설 연휴라 원하는 날짜에 비행기표도 없고...
인터넷을 뒤져 테마세이투어를 찾았다. 가격이 싸지않은 것을 보니 사기칠것 같지는 않은데, 원하는대로 일정 조정이 가능하고, 원하는 날짜에 비행기표도 있다한다. 호텔예약과 비행기 표를 부탁하고 2년만의 여행에 마구 들떠있는데... 막상 비행기표 사러 간다고 하니 마구 당황해 하면서 좌석 예약이 안됐다한다. 이럴 수가... 싸우려면 싸울 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랴... 그냥 구하면 가고 못구하면 말자로 마음 정리를 했는데, 왠지 느낌이 좋았다. 비행기표때문에 못가게 될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차츰 여행날짜 다가오면 나타나는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잠자리와 화장실에 대한 공포... 표를 못 구해도 괜찮다가 못 구해서 차라리 잘됐다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표가 구해지고 말았다. 이제는 가야만 하는 것이다. ^^
...

가야만 했던 여행이었던것 같다, 답답한 표정들과 사고방식들로인한 질식사를 방지하기 위해...


현지 물가도 생각보다 높았고 - 관광객에게는 턱없이 높았다. - 날씨도 그렇게 더울 줄 몰랐고, 기대했던 여행과 양상이 다르기도 했고...
늘 그렇듯이 mind bothering하는 복병이 여기 저기 숨어있었기도 하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Siem Reap, Cambodia는
작열하는 태양아래 거대하게 쌓아올린 돌과 조각의 사원들,
사원이 나무 뿌리에 삼켜진 신기하기만 한 광경,
뽀얀 붉은 흙 먼지로 덮인 모든 것,
아이들의 찌든 옷차림, 구걸하는 손과 목소리, 차라리 외면해 버린 어린 눈빛들...
모든 것을 바삭바삭 말려 버릴 듯 한 햇볓과 습한 바람...
자존심있어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늘로 곧게 뻣은 spoan나무 밖에 없어 보이는 서글픔...
이념을 구실로 사람들을 그런 삶으로 몰아버린 잔인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분노...
Red Piano의 노천 테이블에 앉아서 바라보던 나른한 풍경과 그랜드 앙코르, Le Bistrot에서의 호사...
Cambodia Silk의 선명함과 흙 먼지로 덮인 듯한 뿌우연 일상...
그 아릿한 낭만으로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