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2006

책: 여자의몸


여자의 몸. 신성림. 시공사. 2005
회사 친구가 친구 쓴 책이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나의 그림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필요 이상 자극적이란 인상도 있었고, 이런 류의 책을 들 여유가없어 한동안 방치하다, 선물 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하며 갑자기 한가해진 참에 펼쳐들었는데...
제목이 주는 인상을 극복할만큼 신선하고 진지하고 재밌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마케팅, 전략, 기술 이런 것과 동떨어진 인문서 자체가 주는 신선함도 있었다.
세상의 주체였던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작품 속에서 여성의 몸이 표현된 방식을 통해 남성에 의해 설정된 여자의 몸, 나아가 여성 자체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그 이데올로기에 무심코 지배당해온 삶과 의식에 생각이 미치게한다.

책 속에서...
신학적, 역사적, 문화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의 몸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남성이었다. 신/남성/예술가의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손아귀에서 '역사적인' 여자의 몸이 빚어졌고, 그의 시선이 그녕의 몸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상징적인 창조 작업은 완료되었다. ... 만들어진 몸이란 있는 그대로의 몸이 아니라 그랬으면 하는 몸, 그래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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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아담과 이브> ... 눈을 감고 있는 아담. 어둠을 지우면서 더 환하게 드러나는 빛처럼 매혹적인 이브... 태도나 표정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수하다. ... 새상을 향해 쏟아지는 빛을 혼자 다 빨아들인 듯 밝게 빛난다. 그녀는 왜 빛나는가? ... 정신과 육체사이의 긴장을 볼 수 없다. 아직 거울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그러하듯. 갓 태어난 그녀는 몸과 관련한 어떤 종류의 분열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초의 몸은 ... 누가 엿보라고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생겨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모르고, 불만도 모든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몸이다.  이브의 몸이 빛나는 까닭은 그 몸이 아름다운 여자의 몸이어서가 아니라 이 같은 '소박한 단일성(혹은 자족성)'을 보여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덴에서나 가능한 그 상태를 전혀 주저하지 않고 드러내는 그녀 앞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은 질투와 놀라움으로 물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거울은 내 몸을 바라보는 타인의 눈이다. 클림트의 이브가 자족적인 단일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아담과 함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눈을 감고 있는 순간은 아주 짧았다. 그가 눈을 뜨면서 여자의 몸은 '굴절'된다. 그의 시선에 따라 환상 또는 괴물로...
괴물은 공주를 탐내는 다른 남자일 수도 있고, 공주를 얻기위해 주인공 남성이 거쳐야 할 난관의 총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보면 그 괴물은 공주 안에 있는 어떤 특질일지도 모른다. ... 괴물, 그것은 성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힘이든 여자 안에 있는 어떤 부분, 그들이 포섭하거나 이해하거나 지배할 수 없는 부분을 대변하고 있다. ... 기독교 이전의 신화나 초기 성서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읽으면 자신의 욕망에 부합하는 여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렇지 않은 부분을
괴물로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욕망과 모순되는 다른 욕망 역시 분명히 존해한다. ... 그럴 때 몸(여자)은 영혼(남자)이 신의 세계로 상승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 욕망(결국 육체)을 키워 이성의 건강한 판단을 가로막은 사악한 유혹자가 된다. 인간이 신의 세계(영혼/이성)로 진입하는데 장애가 되는 몸, 극복해야할 몸 자체가 여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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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로 기어다니던 인간이... 허리를 펴고 서게 되면서... 인간의 중심 감각기관이 후각에서 시각으로 옮겨갔다. ... 인간이 세게를 인식할 때 가장 크게 의존하는 감각의 종류를 바꿔놓았는데... 생산성을 추구하던 의식(시선)이 한단계 진보하여 문화적/미적/성적 의식(시선)을 가지게 (됐다). 즉, 보이는 것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결정하는 단계가 개입된 행위(고)...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남성'이었다. 결국 시선을 독점하게 된 남성들은 아름다운 몸, 특히 아름다운 여자의 몸이 어떠해야하는지 결정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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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림 안에서 여자의 옷을 벗기는 의도가 흔히 설명하는 대로 여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일 뿐이었다면 어머니의 몸이라고 벌거벗지 못할 까닭이 없다. 실제이건 그림 안에서이건 벗은 여자의 몸이 남자의 즐거움과 욕망의 도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남성 화가들은 성모의 몸을 겹겹이 감싸고, 어머니의 목을 겹겹이 감싸고, 임산부의 몸을 겹겹이 감쌌다. ... 물론 이같은 금기에 도전한 사람도 있다. ... 클림트는 <희망1>에서 임산부의 누드를, 그것도 부풀어 오른 배가 돋보이도록 옆쪽에서 묘사하였다. ... 사회적 파장을 염려하여 깊이 감춰졌던 이 그림은 남성의 편의에 따라 여성을 둘로 나눠오던 오랜 이분법을 깨고 있다. 성모와 이브가 한 몸이 되었고, 어머니와 창녀가 한 몸이 된 것이다. ... (하지만) 당대의 금기를 깨는 작품을 제작했다고는 해도 결국은 남성화가가 갖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 그래서 여자는 인습에서 벗어난 불길한 관능으로 남성의 욕망을 한층 더(혹은 색다르게) 부채질하고, 그녀의 몸도 또 다른 욕망의 대상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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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존스의 <기만당한 멀린>은 전설적 마법사 멀린이 제자 니무에에게 속아 넘어가 산사나무에 갇힌 장면을 담고 있다. ... 동침을 하겠다는 니무에의 약속에 눈이 먼 멀린은 ... 산사나무에 갇혔다 나중에는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탑에 유폐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림 속의 나무에는 이런 내용과 무관한 듯 몹시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가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치가 여러 곳에 숨어 있다. 그녀의 맨발은 멀린을 사로잡은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머리카락의 뱀은 결국 그녀가 착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가장 위협적인 부분은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이다.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지식을 소유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아주 최근까지도 여자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일이다. 남성만이 장악해야 할 지식의 세계를 넘본 것만으로도 니무에는 용서받기 힘든 죄를 저지른 셈인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결국 그 지식을 자기 손안에 넣고야 말았으니 외모와 달리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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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눈이 당당하게 직시하는 모습에서 매력을 발위한다고 여겨진 반면, 여자의 눈은 공손하고 다소곳하게 내리뜰 때 미덕을 갖는다고 강조되었다. ... 결국 여자의 눈은 바라보는 눈으로서의 기능보다 보이는 눈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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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남성 노인들은 오랜 세월을 겪은 심오한 영혼과 깊은 통찰력이 육체의 상실을 어느 정도 보상해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여성노인들은 생명과 성적 매력의 상실이라는 이중의 상실을 보상해줄 어떤 성과물도 없이 퇴락한 모습으로 묘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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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올랭피아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 비슷한 자세로 기대고 있으며, 왼손을 음부 근처에 두고 있는 것까지 똑같다. ... 마네의 그림만이 커다란 물의를 빚으며 외설적이란 비난을 받았다. ... 옷을 벗은 여자를 다룬 그림은, 당시에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무수히 많았다. ... 문제는 옷을 벗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바라보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는데 있었다. 그것도 교태를 부리며 살짝 훔쳐보는 것이 아니다. 그 여자의 눈은 나는 네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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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의 기능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여자의 입에 대한 관심은 먹고 말하는 입 자체보다 입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 입술 자체가 여성적인 기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자의 입술이 입술 전체를 대표하는 표피적인 승리 뒤에는 여자의 입이 겪어야 했던 대대적인 수난과 박해의 역사가 숨어있으며, 이것은 여자의 언어능력과 관련이 있다. ... 칠거지악... 그 여섯 번째가 수다스러움이었다. ... 조선 말기에는 ...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와 질투가 심한 경우가 강제 이혼 사유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수다는 여전히 규제해야 할 특징으로 남았다. 여자의 말에 대한 병적인 혐오 혹은 두려움을 새삼 확인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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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발은 비천함이나 고난보다 성적 암시가 강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 결국 남자의 발이 신체의 이동 가능성이라는 발의 원래 기능과 결부되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상징이라면, 여자의 발은 성적인 암시가 강한 은밀한 부위였다. 남자의 발이 발 그 자체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면 여자의 발은 남자의 눈에 보일 때의 의미를 강조한 셈이다. ... 자처해서 자기 발을 묶는 심리적 전족은 어디까지가 내 다리이고 어디서부터 사냥개의 이빨인지도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의문이 들 때는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을 생각한다. 두툼한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달려가는 그 여자들의 튼튼한 다리를 바라본다. 그들의 옷이 헤쳐져 속살이 드러나고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지만, 그들의 관능적인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저 달리는 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칼로가 날개보다 더 갖고 싶었을 다리, 심리적 물리적 전족에 시달리던 여자들이 꿈꾸었을 다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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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나체를 다루는 작품은 이 같은 성차를 반영하는 동시에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 <아폴론의 벨베데레>와 <메디치의 비너스>를 함께 놓고 보면, 이런 차이가 얼마나 뿌리 깊고 공공연한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폴론 벨베데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몸과 당당한 자세를 통해 위대한 남성신의 권위와 위엄을 잘 보여준다. 그는 옷을 벗고 있지만 아무것도 가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보는 이를 의식하지도 않고, 자신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의식도 없다. 사신이 존해하는대로 받아들이고 섬기라고 명령하는 듯 한 자연스러운 권위. 그가 신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메디치의 비너스>... 같은 신이고, 그녀의 몸 또한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권위와 위엄을 포함하는 신성은 그녀의 몫이 아니다. 아폴론은 활과 화살로 무서운 괴물을 물리쳐 도시를 구한다. 비너스의 무기는 무엇이고 그녀는 무엇을 하는가. 양팔로 자기 가슴과 음부를 가리고 있다. 순결한 비너스의 자세로 칭송되었던 자세.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몸이 사유와 관조에 제공되는 수동적 대상임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끼는 자의 자세일 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몸을 약간 굽힌 듯한 태도로 고개를 가볍게 앞으로 기울인 자세, 여성적인 우아함을 환기시킨다는 그 자세는 여성의 성적 취약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성에게 필수적인 덕목인 겸손을 지시한다. 이상적인 여자의 몸이 드러내는 신성함이란 순결과 겸손의 옷에 불과했던가. ... 여자가 옷을 벗을 때 마지막까지 결코 벗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옷인지 모른다. 자세가 만들어 주는 관념적인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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