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2008

까미노 그 후: 단식을 마치며...



뭐든 막상 맞부딪치면, 부딪치기 전에 겁내고 걱정하던 것 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단식도 역시...

한끼 굶고 본의 아니게 '갈 지'자로 걷게 됐던 기억으로 난 절대 굶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삼시세끼를 성실히 챙겨왔는데, 그래서 단식은 실행하기 까지 큰 결심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 일이었는데, 막상 하고 보니 지나치게(?) 수월했다. 처음이라 어려울 것이라며 4일 단식을 권하는 단식원 원장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7일이나(?) 했음에도 ...

3일 감식, 7일 단식, 7일 보식... 평소보다 기운이 좀 없다 뿐이었다. 기운이 없다 해도 일상생활을 하는데는 별 지장이 없는 정도의 상태. 잠시 속이 불편하다 싶기도 했으나 힘든 정도는 아니었고. 뭔가 먹고 싶어도 그저 평소에 뭔가가 땡긴다 하는 정도였을 뿐 눈앞에 뭐가 날라다니고 온통 먹는 생각 밖에 없을 정도로 괴롭지 않았다. 그럴 때 물마시고 요가하고 하면 그나마도 없어지고... 기타 별 다른 명현반응이라는 것도 없었고...

과정이 수월해서 결과도 싱거운지, 살이 좀 빠졌다는 것(굶었던 날에 비하면 허무할 정도로 조금이긴 하지만...), 산티아고 길 걸으면서 재발(?)한 다리의 부종이 깨끗이 사라진 것, 피부가 좀 맑아졌다는 것 정도지 그다지 드라마틱한 효과는 느껴지지 않는다.

'먹는 것에 금을 긋고, 선을 넘지 않는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기대를 접을 수 없었던 체중 감소량은 실망(?)스럽다. 원장님께 단식원 최소 기록 아니냐고 물으니, 원장님 대답 회피... ^^

하지만 예전에 병원을 전전하다 한약 먹고 고쳤던 부종을 병원 가지 않고 약 먹지 않고 고친 것,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먹는 것에 있어서 조차 얼마나 조금만 필요한 존재인지 확인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그다지 서운할 것 없을 것 같다.



7.15.2008

까미노 그 후: 단식 5일째...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먹는 것과 관계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한번은 해봐야 할 일 같기도 했지만, 40여년을 살며 몸에 쌓인 묵은 때를 떨어 버리고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남들 다 걷는다 하지만, 나는 못 걸을 것 같던 800km를 걷고 보니, 필요했던 건 용기...
용기를 내보기로...

그냥 생짜로 굶고 있는 중은 아니다. 집에서 하기는 하지만 매일 단식원에 가서 체조도 하고 지도를 받기도 하고, 하루에 효소라는 것을 탄 물을 500cc씩 마신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굶는 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식을 시작하기 전에 감식할 때가 오히려 어려웠고, 단식 시작하고 하루, 이틀째에는 배가 고파 효소를 감지덕지 몇모금 마시기도 한 것 같은데 이젠 효소 마실 생각도 안나 마실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오늘은 아침 우주의 맑은 에너지를 끌어와 쓰신다는 단식원 원장님의 기공 마사지 덕분인지 아니면 간청소(?) 때문인지, 어제 채 3시간을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도 맑고 몸도 가볍다.

5일을 굶고도 이렇게 멀쩡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배고픔과 기분이 너무 관계 있는 체질이 개선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끼를 굶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 강박은 없어지지않을까...



까미노 그 후: 빠리 공항 주변 모처에서...



바르셀로나 호텔 근처에 있던 여행사를 통해 파리행 비행기표를 사며 파리 공항 근처 호텔을 예약했었다. 그런데 파리 공항에 도착해서 info에 호텔의 위치를 물으니...

걷어 갈 수도 없고 버스도 없고 택시로만 갈 수 있는데, 택시비가 30~40유로가 나온다나... 그 말을 들었을 땐 진짜 딱 기가 막혔다. 그럴 거면 파리 시내 호텔을 잡았지... 호텔비를 미리 냈으니 취소할 수도 없고... 와.. 스페인 것들.. 바르셀로나 호텔로도 그리 어이없게 만들더니 이번엔 파리에서 조차... 누구도 진실을 알면 예약을 취소할 것 같으니 예약할 때 호텔비를 여행사에 지불하게 했던 것이고, 난 또 봉이 된 것이다...

빠르게 계산을 해보지만 가까운 곳에 왕복 택시비로 호텔을 잡는 게 아무래도 경제적일 수는 없다. 어쩌랴... 이곳도 우리나라 공항처럼 외국인 등쳐먹으려는 택시기사가 (김포공항에서는 외국인 뿐 아니라 한국사람 등도 치더라만은...) 많은지 꼭 그리로 가야한다는 택시 승강장에서 면허 제대로 있는 택시 기사들이 호텔의 이름과 주소를 보고 어딘지 모른다 할 땐, 내 다시 스페인 것들을 믿나보자 했다.

그래도 끝나지않은 우여곡절 끝에 navigator가 있는 택시를 탔고... 프랑스어 못한다 했거늘, 기사 놈은 뭐가 불만인지 계속 나를 향해 'ne pas bon'을 지껄여댄다. 아무리 불어를 못해도 '네 빠 봉' 정도는 알아 들을 수 있다는 걸 저 자식은 어찌 알았을까...^^ '제발 어리바리 관광객이라고 돌리지만 마세요' 했더니 제대로 내려준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는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배낭을, 실어준 것도 아니고 트렁크 뚜껑만 열어줘놓고는 짐 실었다고 1유로를 더 내라나... 옛다 먹고 떨어지슈.. 달라는 대로 주고 잔돈도 '잘 먹고 잘 살아' 하는 마음으로 '됐어, 너 가져' 하니 그말은 프랑스어가 아니라도 어찌나 잘 알아듣던지 기껏 20전도 안되는 잔돈에 태도 180도 돌변이다. 자유, 평등, 박애.. 그런 것이 프랑스 정신이라 하지 않았나? 그렇게 자유를 외칠 때는 언제고, 아주 제대로 돈의 노예다. 이민자든 프랑스 사람이든 프랑스어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프랑스어 못하는 관광객에게 알아들을 수 있을 법한 말 한마디 시도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프랑스의 정신 1%는 보여줘야하는 건 아닌지...

간간히 비행기 뜨고 내리는 소리로만 공항 근처라는 것을 알 수있는 out of nowhere에 내려졌을 때는 '당장 내 집으로 갈래' 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더니만 길 건너 KFC에서 닭날개 8.5쪽 먹고, 슈퍼 찾아서 물도 사고 자몽도 사먹고 영원한 비상식량 바나나도 하나 사놓고, 없다던 공항 행 버스도 묻고 헤매고 찾아 정류장과 시간 알아놓고, 바람 솔솔 부는 호텔 앞 야외테이블에 맨발에 다리 펴고 앉으니 어떻게 내일 12시까지는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남기... 이건 완전 까미노에서 터득한 것이지 싶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서 깨끗이 씻고 다 빨아널고 개운한 느낌으로 있고 싶다. 아무리 씻고 빨고 해도 여행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좀 편안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이탈리아도 가서 구르고, 까미노 알베르게도 불사했지만 그나마 용이 되긴 했어도 어쩔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르셀로나에서 도착한 비행편의 baggage claim에서 유난히 밀치며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 짜증이 났고, 그런 사람들을 피하느라 레일에서 몇 발짝 떨어져있으니 어떤 놈이 말 그대로 코앞을 막아섰다. 순간 욱 해서 "넌 눈이 없니?"라고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그런데 상황을 파악하고 보니 상식을 기대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까짓 것 별 것도 아닌데 살짝 비키면 됐던 것을 뭐 그리 똑같겠다고 상태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그런 사람인줄도 모르고 뱉었는지... 까미노를 걸으며 원했던 내모습은 결국 그대로 제자리구나 싶은 것이.. 마주하는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늘 나로 있고 싶다고 했거늘...

어제도 Bar에서 옆사람 아랑곳 않고 담배연기를 아무렇게나 뿜어내는 사람의 발을 밟고(물론 의도적은 아니었지만) 입으로는 미안하다 말하고 있었지만 속으론 좀더 세게 밟았어야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긴 여행의 마지막날...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관광객을 봉으로 아는 유럽 놈들 때문인지, 길을 떠나서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 때문인지 이래저래 마음이 언짢다.



까미노 그 후: Barcelona에서의 첫날



지도 한 장 없이 난생 처음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고보니 어이가 없다. 여긴 산티아고길이 아닌데... 답을 줄 동료 순례자가 어디나 한 명쯤 있는 곳이 아닌데... '말도 안 통하면서 너무 세상을 만만히 보는 것 아니야?' 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다.

일단 공항 안에선 말이 통할테니 최소한은 해결하자 싶어, info를 찾아 호텔 예약 부탁하고 렌트카카운터에서 공짜 지도도 한장 얻고 공항에서 시내가는 방법 알아서 까탈루냐 광장에 내렸는데...

방향치인 나, 다시 머리 속이 하얘진다. 모든 사람은 빠르게 스쳐지나가는데 나만 정지된 시간 속에 있는 듯... 지도 펴들고 대책없이 서있는데...

"Are you OK?" 하고 누군가 물어준다.

"No, I'm not... I'm looking for a hotel and have no idea." 진정 다급한지 교과서 영어가 튀어나온다. ^^

"Oh, that's very easy... blah, blah, blah.."

천사다. 까미노 밖에도 천사가 있구나... 히죽히죽...

천사 덕분에 방향도 잡고, 마침 서점도 있어 내 애독 여행서 lonely planet Barcelona편도 한 권 사고, 여기까진 좋았는데...

그 유명하고 번화하고 복잡한 las Ramblas거리를 따라 내려가는데 '왠지 my kind of city가 아닌걸' 하는 느낌이 슬슬 온다. 그래도 '가우디 보러 온건대 뭐..' 위로를 하며 호텔을 찾았는데, 세상에...

한국에서 홍등가를 몇번 지나친 적은 있지만 외국에서 이런 곳은 처음이다. 몸을 파는 아가씨들과 그녀들의 고객이 모여드는 광장 한켠에 호텔이 있는 것...

기가막힌다. 분명 위치를 언급했건만 무조건 제시한 가격에 맞는 곳만 찾아준 것이다. 찾았다는 표현이 무색할 따름. 하지만 어쩌리요. 설상가상 미리 예약한 기간 전체 호텔비를 지불하고 check-in을 해야한단다. 당연하지... 그렇지 않고 누가 하루 이상 이곳에 머무르려한단 말인가...

묻는 것이 어리석지만 그래도 물어야겠기에 안전하냐 하니,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간에도 입구를 잠가놓으면서, 대답은 역시 안전하단다. 그냥 지나치면 시비걸지않는다나... 어쩌리... 말못하는 동양의 관광객, 누구에게나 봉일 수 밖에...

무조건 배낭을 던져놓고 나왔다. 허기도 지고 일단 다른 호텔부터 찾아야겠기에, 더이상 스페인의 info는 믿을 수 없고, 내 발로... 일단 하와이 Mark아저씨가 말한 150년 전통의 닭집을 찾는데 골목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이번엔 앳띠고 계집애 같이 차린 보이와 늙수구레한 서양남자. 그 보이의 차림새와 호텔 앞이라는 것이 상황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긴한데, 왠지 호텔 이름이 낯이 익어 lonely planet을 펴보니, 가지 않으려고 기억하려던 게이들이 선호하는 호텔. 청년들이 몸파는 장면 또한 난생 처음이다.

Barcelona, 제게 지금 왜 이러시나요? 아무리 관광객에 가까운 순례자라지만 저 지금 산티아고에서 날아오는 길이거든요. 뭘 원하시나요? 이런 질문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근처의 쌈직해보이지만 결코 싸지않은 호텔들 조차 모두 fully booked란다. 도대체 바르셀로나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그러다 들어가본 호텔 중 위치대비 가장 저렴한 하지만 절대적으로 결코 저렴하지 않은 곳을 그냥 지르고 말았다. '속은 쓰리나 후회하지 않으리.' 하면서... "까미노를 걸으며 더 확실해지는 건데, 무언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하는거야(Just go for it)..."라는, 산티아고 성당에서 여섯 번의 뽀뽀와 함께 남은 삶을 축복해준 피터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빚을 지는 것도 가세가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Why not? Go for it...

[다음 날 queer parade가 있었다. 난 TV에서만 보던, 그것도 얼핏 보던 그 퍼레이드를, 하필 liberal한 도시의 대명사인 그곳에서, 난생처음으로,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말았는데... 요즘 표현으로 진짜 '안 본 눈'을 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