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오기 전, 오랜 친구와 닮은 ex-동료가 집에 가서 풀어보라며 조그만 상자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어릴 적 교통이 불편해 멀리 사는 손님이 오고 가는 일도 적고 한번 오고 가는 것이 큰 일이던 시절, 누군가 다녀 갈 때 엄마가 여비로 쓰시라며 손님의 손에 쥐어주시던 기억, 친척집 다녀올 때 엄마의 엄한 표정이 떠올라 덥석 받지 못하고 사양하는 손에 꼬깃꼬깃 접힌 돈을 쥐어주시던 기억이 떠오르며 무지 고맙고 흐뭇했다.
첫 이탈리아 여행. 모두들 좋지않는 기억 한가지 씩을 이야기 하며 소지품을 주의할 것을 이야기해 초긴장 상태로 이탈리아 땅을 밟았으나 정말 아무일 없이 이탈리아 땅을 떠났다. 두번째도 마찬가지로...
세번째 이탈리아. 두번이나 아무일 없었는데 설마하며... 더이상 경계하는 것 조차도 귀찮아 완전 신뢰를 회복하고 길을 나섰다.
Bologna, 만나기로 한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수다를 떨며 길을 가는데 여기 뭐 없어진것 없는지 확인하라는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 여권, 신용카드, 현금 모두 들어있는 지갑을 넣어놓은 곳이 열렸다. 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주시하는 녀석이 열고 갔다한다. 천만 다행으로 지갑은 제자리에 있었고 없어졌으면 겪었을 번거로움에 생각할 수록 어찌나 아찔한지... 그리고 잘 접어 지갑 카드 사이에 넣어 둔 '행운의 100 유로'가 떠올랐다. Whatever it is, 'grazie mille'!!!
결국, 아무래도 좀도둑을 유혹할 수 있는 현재 가방이 못미더워 이탈리아 관광 style(?) 가방을 사게됐다. 좀도둑이 뭔가를 꺼내기도 어려운. 하지만 내가 뭔가를 넣고 빼기도 쉽지않다. ^^
그리고 그 다음 주 Torino, 호텔까지가 좀 멀어 버스를 탔는데, 짜잘한 2인조가 달라붙어 노골적으로 날 따라다닌다. 한번의 경험으로 완전 경계의 태도가 된 나. '내겐 행운의 100 유로와 이탈리아 관광 스타일 가방이 있으니 알아서 하렴'하며 길도 물으며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내리고 보니, 같이 간 친구의 카메라가 녀석들의 손에... Asti로 돌아가는 길, 호텔에서 역까지 짐들고 걷는 것이 쉽지않아 또 버스를 탔는데 이번엔 모녀로 보이는 집시들이 달라 붙는다. 이번엔 같이간 친구와 둘 다 모두 만방의 태세를 갖추긴 했으나 가방 앞 가져가도 괜찮은 것 넣는 앞 주머니가 혹시 열리지않았나 궁금했다. 그런데 무사... 드디어 역에 도착, 만방의 경계를 풀고 표사고 기차를 타려는데 앞주머니가 활짝 열려있다. 이탈리아의 좀 도둑들... 2주 연속으로 경험을 하고 보니 진짜 annoying이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니 '행운의 100유로'와 이탈리아용 가방 정도로 방어가 가능하고 더 이상의 위협이 없다는 것을 고마워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틈만나면 어디든 나간다. 왠만한 가게 점원들과 모두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가 될 정도로 손바닦만한 centro이지만 틈만 나면 한바퀴 돌아주고 바람을 쐬어야 심리상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오후 dolci 수업이 일찍 끝난 관계로 cucina 조임에도 불구하고 한시간십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누가 기다리지도 않는 로마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Roma에서의 대화:
나, 아저씨: Buona Sera!
아저씨: Mi dica!
나: Vorrei un aperitivo.
아저씨: Dolce o secco?
나: Secco.
아저씨:(더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아저씨 열심히 이것 저것 넣어서 만들더니) Ecco.
나: Come si chiama?
아저씨: Carficio!
나: Grazie. Quanto costa?
아줌마: Tre Euro.
나: Ecco.
나, 아줌마: Grazie!
아저씨: (돈을 치루는 사이 아저씨 Salami를 넣은 stuzzichini 한접시를 만들어와 묵묵히 바 위에 올려놓음)
나: (묵묵히 들고 창가 구석 테이블에 앉아 조금씩 홀짝 홀짝.)
향기로운 술 한잔 앞에 혼자 앉아 사람들과 뒤섞여 보낸 하루를 뒤로하며 내일 맞을 준비를 한다. 잔의 술은 더욱 향기롭고, 못먹을 정도로 싫어했던 짭쪼름한 salami를 넣은 미니샌드위치는 더욱 맛있다. 그리고 기껏 aperitivo 한잔이지만 오늘도 그 짧은 이탈리아어로 communicate했다는 흐믓함도.. ㅎㅎㅎ
8주 중 4주차를 맞은 이곳에서의 일상은 거의 변함없이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이탈리아어 수업이 있는날은 8시반 그렇지 않은 날은 9시 또는 9시반까지 Costigliore centro에 있는 학교로 간다.
우리는 그룹은 아(A), 비(B), 치(C) 3개 조로 나뉘어서 움직인다. 수업 외에 3개의 attivita`가 있는데 cucina, sala, mise en plus(?)로 세개 조가 번갈아 하게 된다. cucina조는 부얶에서 식사준비를 돕고, sala조는 서빙을 담당한다. 미장플러스라고 하는 것은 수업의 재료를 준비하고 수업시간에 chef를 도와 수업이 원활이 진행되는 일, 뒷정리 등을 담당한다.
그렇게 꽉짜여진 시간과 규칙속에 하루를 마치고 Cascina Saleria로 돌아와서 씻고 책상에 앉으면 15분전 아홉시...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노라면 어느새 몽롱해진다. 잘 시간을 놓쳐 한두시간 뒤척이기라도 하면 회복할 길이 없는 빡빡한 일상이라 서둘러 잠자리에 들곤한다.
주말. 기다리지않아도 빨리온다. 지나고 나서 아쉬워하지않으려 부지런을 떤다. 금요일 빨래를 돌리고 주말계획에 바쁘다. 기차시간표 알아보랴, 구경거리 공부하랴... 주중보다 더 서둘어 낯선 거리에 발을 내려 놓으며 한숨을 돌린다. 주말이 있어서 이 생활이 가능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늘어져 쉬고 싶은 몸을 이끌고 나오길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많이 하고, 보고, 느끼고, 기억하고 싶다. 하지만 정리해서 차곡 차곡 쌓아 영구 메모리로 남길 시간을 찾기 쉽지않아 아쉽고 때로 지나갔던 시간처럼 흘러가 버릴까 걱정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