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07

행운의 100유로와 이탈리아용 가방


떠나오기 전, 오랜 친구와 닮은 ex-동료가 집에 가서 풀어보라며 조그만 상자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어릴 적 교통이 불편해 멀리 사는 손님이 오고 가는 일도 적고 한번 오고 가는 것이 큰 일이던 시절, 누군가 다녀 갈 때 엄마가 여비로 쓰시라며 손님의 손에 쥐어주시던 기억, 친척집 다녀올 때 엄마의 엄한 표정이 떠올라 덥석 받지 못하고 사양하는 손에 꼬깃꼬깃 접힌 돈을 쥐어주시던 기억이 떠오르며 무지 고맙고 흐뭇했다.

첫 이탈리아 여행. 모두들 좋지않는 기억 한가지 씩을 이야기 하며 소지품을 주의할 것을 이야기해 초긴장 상태로 이탈리아 땅을 밟았으나 정말 아무일 없이 이탈리아 땅을 떠났다. 두번째도 마찬가지로...

세번째 이탈리아. 두번이나 아무일 없었는데 설마하며... 더이상 경계하는 것 조차도 귀찮아 완전 신뢰를 회복하고 길을 나섰다.

Bologna, 만나기로 한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수다를 떨며 길을 가는데 여기 뭐 없어진것 없는지 확인하라는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 여권, 신용카드, 현금 모두 들어있는 지갑을 넣어놓은 곳이 열렸다. 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주시하는 녀석이 열고 갔다한다. 천만 다행으로 지갑은 제자리에 있었고 없어졌으면 겪었을 번거로움에 생각할 수록 어찌나 아찔한지... 그리고 잘 접어 지갑 카드 사이에 넣어 둔 '행운의 100 유로'가 떠올랐다. Whatever it is, 'grazie mille'!!!

결국, 아무래도 좀도둑을 유혹할 수 있는 현재 가방이 못미더워 이탈리아 관광 style(?) 가방을 사게됐다. 좀도둑이 뭔가를 꺼내기도 어려운. 하지만 내가 뭔가를 넣고 빼기도 쉽지않다. ^^

그리고 그 다음 주 Torino, 호텔까지가 좀 멀어 버스를 탔는데, 짜잘한 2인조가 달라붙어 노골적으로 날 따라다닌다. 한번의 경험으로 완전 경계의 태도가 된 나. '내겐 행운의 100 유로와 이탈리아 관광 스타일 가방이 있으니 알아서 하렴'하며 길도 물으며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내리고 보니, 같이 간 친구의 카메라가 녀석들의 손에... Asti로 돌아가는 길, 호텔에서 역까지 짐들고 걷는 것이 쉽지않아 또 버스를 탔는데 이번엔 모녀로 보이는 집시들이 달라 붙는다. 이번엔 같이간 친구와 둘 다 모두 만방의 태세를 갖추긴 했으나 가방 앞 가져가도 괜찮은 것 넣는 앞 주머니가 혹시 열리지않았나 궁금했다. 그런데 무사... 드디어 역에 도착, 만방의 경계를 풀고 표사고 기차를 타려는데 앞주머니가 활짝 열려있다. 이탈리아의 좀 도둑들... 2주 연속으로 경험을 하고 보니 진짜 annoying이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니 '행운의 100유로'와 이탈리아용 가방 정도로 방어가 가능하고 더 이상의 위협이 없다는 것을 고마워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18.2007

day trip: Milano


설날 파티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연이은 강행군으로 좀 쉬어줘야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이번 주말엔 가까운 밀라노나 하루 가볍게 다녀오자 했으나 그다지 가볍진 않았다. 첫차를 놓치기 않기 위해 새벽부터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뛰고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움직이려하지 않는 다리를 끌다시피하며 뛰었으니...

Milano Centrale에서 내렸다. 거대도시 주변에 살다보니 도시에 관한한 다 작아보이는 경향이 있는 내게도 밀라노는 메트로폴리탄의 느낌을 준다. 중앙역 정면엔 Ella가 좋아하는 D&G ragazzi가...


Metro linea 3을 타고 Duomo역에 내리니 몇년 전 기차 시간 때문에 지나친 그 Duomo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facade를 반도 더 가려놔서 감동이 별로라 서운하다.


오늘 '밀라노 패션투어' 가이드가 될 roommate를 만날 때까지 시간이 남아 Duomo 안을 구경했다. 거의 모든 창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규모며 자재며 장식의 화려함이 그 시대 이곳의 부를 짐작하게 한다.



roommate를 만나기로한 서점이 있는 Duomo 옆 Vittorio Emanuele II 갤러리. 그 공간의 아름다움에 할말을 잊는다.



roommate의 밀라노 network를 이용해 한국식당을 찾아 맵다 매워 하며 김치찌개 먹고, 패션업에 종사했던 roommate의 도움으로 이해가 필요한듯 한 이태리 패션 공부(?)도 좀 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이해할 수 있는 베네통에서 여름까지 지낼 옷가지 몇개 사고 Costigliole에 돌아와서 Maddalena에서 저녁먹고, Bar Roma에서 친절한 아들내미가 추천해주는 설날기념 와인 한병 사들고 들어와 하루를 마쳤다.

2.17.2007

TGIF


Thank God, it's friday(Grazie a Dio, è venerdì)! 주말의 시작.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작은 celebration을 갖는다. 조금 전 5년전 이 학교를 다녔다던 미국 친구 David 한 말처럼 도시 생활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boring한 곳임에는 틀림없는 이곳... 게다가 12시간에 이르는 쳇바퀴 돌듯 꽉 짜여진 일정.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말리는 손 뿌리치다시피 하며 하는 일이지만 또 한 주를 잘 살아낸 나에게 작은 보상. 보상이라야 고작 하루도 다르지않은 기숙사의 아침을 거부하고 동네 바에 가서 아침을 먹는 일이지만... ㅎㅎ

이탈리아에서는 아침으로 그 흔한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얹어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지만 Bar Roma나 Pasticceria Bisco에서 진한 우유 거품의 쌉쌀한 카푸치노나 latte macchiato에 단 빵이나 햄을 넣은 샌드위치도 그리 나쁘지 않다.


Bar Roma

Pasticceria Bisco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침 "colazione"는 bar에서 커피한잔에 기껏해야 brioche 하나 정도라 한다. 조금 일찍 바에 가면 출근 전 바에 서서 colazione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이 동네는 작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빨래터 정도를 연상시킨다. 한명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면 최소한 서넛과 인사를 하고 소식을 나눈다. 어느새 나도 때로 인사를 나눌 사람이 있기도 할정도로... ㅎㅎㅎ

연금생활자로 보이는 몇몇을 빼고는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빠른 속도로 먹고 할말하고 인사를 나누고 문을 나서긴 하지만 일행이 아니어도 바에서 만나면 허물없이 같이 먹기도 마시기도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아직도 이웃은 확장된 가족의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14.2007

다시 찾은 Venezia


금요일 밤 11시반 난생처음 밤기차를 타고 새벽 다섯시 반쯤 Venezia S. Lucia역에 내렸다.



5년만에 다시 찾은 Venezia. 한 여름 빛나도록 눈부신 베니스는 아니었지만 그 화려함은 새벽 불빛 아래에서도 바래 보이지않았다.




Rialto다리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생선시장을 구경하고...




San Marco 광장을 돌아보고 Cafe Florian에서 벼르던 cioccolata calda를 한잔 마시고...




광장 근처 예약해둔 5년전 묵었던 호텔에 check-in. 놀랍게도 호텔 front의 아저씨도, 벨보이도, 바의 barista도 방 청소해주는 아주머니도 다 알아볼수 있을 정도로 변한 것이 없다. 그들의 얼굴엔 짧지않은 세월 조차도 느껴지지않았다.


게다가 가게도 레스토랑도 심지어 거리의 쇼윈도우도..

(너무 같아보여서 5년전 찍었던 사진과 비교해보고 싶은 쇼윈도우... ^^)

스쳐지나며 기억나는 것들, 너무(?) 변함없이 없다.

이탈리아 사람들, 결코 한번 먹은 마음 한결같은 사람들로 느껴지진 않는데 이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2.07.2007

달콤한 휴식



틈만나면 어디든 나간다. 왠만한 가게 점원들과 모두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가 될 정도로 손바닦만한 centro이지만 틈만 나면 한바퀴 돌아주고 바람을 쐬어야 심리상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오후 dolci 수업이 일찍 끝난 관계로 cucina 조임에도 불구하고 한시간십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누가 기다리지도 않는 로마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Roma에서의 대화:
나, 아저씨: Buona Sera!
아저씨: Mi dica!
나: Vorrei un aperitivo.
아저씨: Dolce o secco?
나: Secco.
아저씨:(더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아저씨 열심히 이것 저것 넣어서 만들더니) Ecco.
나: Come si chiama?
아저씨: Carficio!
나: Grazie. Quanto costa?
아줌마: Tre Euro.
나: Ecco.
나, 아줌마: Grazie!
아저씨: (돈을 치루는 사이 아저씨 Salami를 넣은 stuzzichini 한접시를 만들어와 묵묵히 바 위에 올려놓음)
나: (묵묵히 들고 창가 구석 테이블에 앉아 조금씩 홀짝 홀짝.)

향기로운 술 한잔 앞에 혼자 앉아 사람들과 뒤섞여 보낸 하루를 뒤로하며 내일 맞을 준비를 한다. 잔의 술은 더욱 향기롭고, 못먹을 정도로 싫어했던 짭쪼름한 salami를 넣은 미니샌드위치는 더욱 맛있다. 그리고 기껏 aperitivo 한잔이지만 오늘도 그 짧은 이탈리아어로 communicate했다는 흐믓함도.. ㅎㅎㅎ

2.06.2007

ICIF에서의 일상


8주 중 4주차를 맞은 이곳에서의 일상은 거의 변함없이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이탈리아어 수업이 있는날은 8시반 그렇지 않은 날은 9시 또는 9시반까지 Costigliore centro에 있는 학교로 간다.
우리는 그룹은 아(A), 비(B), 치(C) 3개 조로 나뉘어서 움직인다. 수업 외에 3개의 attivita`가 있는데 cucina, sala, mise en plus(?)로 세개 조가 번갈아 하게 된다. cucina조는 부얶에서 식사준비를 돕고, sala조는 서빙을 담당한다. 미장플러스라고 하는 것은 수업의 재료를 준비하고 수업시간에 chef를 도와 수업이 원활이 진행되는 일, 뒷정리 등을 담당한다.
그렇게 꽉짜여진 시간과 규칙속에 하루를 마치고 Cascina Saleria로 돌아와서 씻고 책상에 앉으면 15분전 아홉시...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노라면 어느새 몽롱해진다. 잘 시간을 놓쳐 한두시간 뒤척이기라도 하면 회복할 길이 없는 빡빡한 일상이라 서둘러 잠자리에 들곤한다.

주말. 기다리지않아도 빨리온다. 지나고 나서 아쉬워하지않으려 부지런을 떤다. 금요일 빨래를 돌리고 주말계획에 바쁘다. 기차시간표 알아보랴, 구경거리 공부하랴... 주중보다 더 서둘어 낯선 거리에 발을 내려 놓으며 한숨을 돌린다. 주말이 있어서 이 생활이 가능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늘어져 쉬고 싶은 몸을 이끌고 나오길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많이 하고, 보고, 느끼고, 기억하고 싶다. 하지만 정리해서 차곡 차곡 쌓아 영구 메모리로 남길 시간을 찾기 쉽지않아 아쉽고 때로 지나갔던 시간처럼 흘러가 버릴까 걱정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