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2007

휴가가 끝나다.


휴가를 마치고 Perugia에서 Asti로 올라가는 기차안... 거금 들여 장만한 무선인터넷 카드 덕 좀 보려는데 왜 그렇게 터널은 많은 것인지.. 터널에 들어가면 여전히 끊어지고 기지국이 바뀔 때 마다 다시 연결을 해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다지 신통하진 않지만 장시간 기차타기를 덜 지루하게 할 만큼은 충분하다.

하늘은 찌뿌리기만 하고 간간히 비가 내리고, 여전히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다.

떠나는 날 아침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 눈물에 콧물에 재채기에 본격적으로 감기가 시작됐다.

언젠가 Contratto cantina 앞 길 하늘에 걸려있는 stop sign이 뭔가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날이 있었는데...




로마 도착 첫날. 예상치 않게 ex-방짝 B양과 B양 오빠의 로마 근교 집에서 치솔하나 달랑 들고가 머물게 됐다. 자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는 것이 얼마만이지 하는 생각이 확 스치고 어이없이 눈물이 핑 돈다.

B양의 오빠이긴 하지만, 낯설기만 한 어떤 총각 집의 화장실이 이렇게 편안하게 느껴지다니...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닌가? 화장실과 잠자리 때문에 항상 정말 떠나고 싶어 계획한 여행이 떠나기 싫던 난데... 익숙한 화장실이 아닌 화장실이 싫어 하루 종일 화장실을 가지 않는 적도 많은데...

요리를 배우는 것은 둘째 문제고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과 사람들 안에서 어떤 답을 찾고 싶은 생각에 기꺼이 기어를 맞추고 하던 생활인데... 불편하긴 해도 불만은 없고, 그런 생활속에 좀 덜 까탈스럽고, 덜 예민하고, 좀 둥글고 너그럽게 달라지는 날 은근 기대한 것도 사실인데...

갑작스럽게(?) 달라진 날 발견하는 일이 그렇게 기쁜 일만은 아닌가 보다. 그러면서 돌연 정상적인(?) 생활이 그립다. 내 침대, 내 화장실... 방해 받지 않고 자는 것, 씻는 것, 내 입맛에 맞춘 음식, 트렁크에서 옷 꺼내입지 않아도 되는 생활, 늘 지니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신용카드, 여권, 비행기표..

Perugia의 Ella... 이런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언니 이번 여행 잘못왔다...' 한다. 정말 이번 여행의 메지지가 내게 부정적인 것일까?

화장실 잠자리는 그렇다 하더라도 좀체로 걸리지 않던 감기. 그래도 현재 casa(집)라 부르는 곳인데 레스토랑을 떠나자 거짓말 처럼 없어지는 변비... 어깨 허리 결림과 늘 뻐근한 팔과 손, 잦지는 않아도 간간히 느껴지는 왼쪽 무릎의 통증... 과연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예정된 시간까지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한달 남짓 남은 시간... stop, stop, stop... 누군가가 stop sign이 통하지 않자 더 강력한 message를 내게 보내고 있는 걸까?

3 comments:

Chief Seattle said...

변화가 낯설다고 해서 변화가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변화에 익숙해지기까지 좀 시간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죠... 저는 변화에 풍덩 뛰어드는 언니의 용기가 부러워요.

몇 개월간 객지생활이 누구에게인들 힘들지 않겠어요? 그래도 갈등하면서 지내든 마음 비우고 지내든 한달은 한달. 언니, 힘 내세요!

anna said...

이 순간을 넘기면 다른 내가 될까? 미친 주방장, 오늘은 장난이라고 내 머리에 행주를 던지더라... 나름 친해졌다고 악의없이 하는 장난인걸 알면서도 도저히 용납이안돼. 매일 농담이라고 늘어놓은 지저분한 이야기들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것 조차 지겹다 싶기도 하고...
변하고 싶은 나도 있지만 지키고 싶은 나도 있어. 아무렇지 않게 같이 그런 장난을 치고 그런 농담을 주고 받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야..

Chief Seattle said...

아씨, 그럴 때는 곱게 눈 흘기며 "너 죽고 잡냐?" 한번 날려주지... 아름다운 우리말, 외국에서 더욱 빛나는 우리말 놔뒀다가 뭐해요?

하지만 언니 성품에 험한 말 하긴 좀 어렵겠죠? 역쉬 우리 애들 끌고 가서 직접 한번 손을 봐줘야겠네요,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