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던 조카의 분가. 녀석의 짐을 챙기는 것을 돕다 일기장 뭉텅이가 발견됐다. 2~3년간 매일 저녁 극성맞은 고모의 닦달로 남겨지게 됐다는 슬픈 사연이 있는 일기장들. “오늘은 삼겹살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오늘은 할머니께서 비비큐를 사 주셨다. 참 맛있었다. 오늘은 자장면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하하하, 깔깔깔. 마지못해 할 수 없이 썼던 티가 역력하지만 그 와중에 녀석의 천성이 묻어 나온다. 별 것 아닌 접시 앞에 두고 마냥 행복해지던 천진했던 시절의 모습에 나도 녀석도 모두가 즐거웠다.
속 모르는 남들 보기에 멀쩡한 회사를 그만 뒀다. 모두 월급쟁이의 신세타령쯤이라 생각했던 식당 차리겠다는 말을 실행하겠다며... 그것도 이탈리아 식당을, 그것도 처음부터 배워서... 그리고 조리 복에 앞치마 입고 나서더니, 이역만리 이탈리아까지 가서 초등학생 조카 녀석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기를 나도 썼었다. 두 줄을 넘지 못했던 녀석의 일기는 유전...
산해진미도 아닌 음식에 더없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소년의 마음으로나 가능한 일. 잠시 만사를 접어두고 지친 마음을 달래던 시간의 기록. 단순하고 행복하고 싶었고 단순하고 행복했던 순간의 기록.
녀석의 일기도, 내 일기도 맛있게 이어지는 삶이길...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