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2023

자각...

 


데스크탑이 갑자기 까만 화면에 entering sleeping mode 라는 말을 남기고
작동을 멈추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

부팅 초반에 나타나는 증세였고, 더불어 여러 증세를 보였지만,
그래도 몇번 전원을 껐다 켜면 다시 멀쩡하게 작동하곤 했었다.
아무리 봐도 하드웨어의 문제라 A/S를 부르거나, 수리점으로 들고 가야 하는데,
별 데이터는 없지만 그래도 내 자잘한 일상이 담긴 기계를 통째로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이 영 탐탁치 않아서 그냥 버텼다.
맡길 거면 데이터 다 백업하고, 하드디스크 포맷하고, 비밀번호 다 풀고 맡기라는데
그것도 하기 싫고...

이러다 완전 멈추지 싶은 느낌이 언젠가부터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 오늘이겠어 하며 써왔는데,
드디어 어제 영면에 든 것으로 보인다.

어제 따라 멀쩡히 부팅도 잘 되고, 작동도 잘 돼서 왠일인가 하고 쓰고 있는데
보통과 다른 타이밍에 sleeping mode로 빠졌다,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며...
뭔가 일이 났음을 직감하는 순간에 드는 서늘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이젠 아무리 on/off를 반복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 알겠는데
그래도 요행을 바라며 계속 재부팅... 아무런 신호가 없다.

그러고 찾아온 멘붕...
마음이 진정이 안 되고 생각도 정리가 안 된다.
어차피 오래 쓰기도 했으니 멈추면 바꾸려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도...
핸드폰 포함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다른 IT기기가 5개나 있는데도...
(큰 모니터와 키보드를 잃을 수 없다.)

검색하며 목이 마른데도 노트북 화면을 떠나지를 못한다...
왜 이래, 죽고 살 일이야? 하고 생각이 타박을 하니, 그제서야 일어나 물 몇 모금 마시고...
잘 시간을 훌쩍 넘기고 여전히 검색에 매달려 있다가...
왜 이래, 죽고 살 일이냐고? 하는 생각에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고...
눈 뜨자마자 다시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로 다시 부팅을 시도해보고 역시 영면에 들었음을 또 확인하고...
종종 백업을 해둔 데이터는 확인해보니 잃어서 아쉬울 건 없어 보여 조금 마음이 풀리고...
또 다시 노트북에 매달려서 검색...
아침도 안 먹고... 그야말고 식음 전폐...
죽고 살 일이냐는 꾸지람을 또 듣고, 어제 먹다 남은 파스타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고...

또 검색...
이것 저것 생각하기 싫고, 뭐가 뭔지도 잘 모를 땐 예산이 허락하는 비싼 게 최고...
대기업 것 살까 하다 이번에도 델로...
영면에 든 델의 부실한 하드웨어 데여서 다시는 델을 안 사려 했건만... ㅠ.ㅠ
왜 하필 델이 내 취향하고 제일 맞느냐고???

너무 결정이 빠른게 아닐까 좀더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니니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지만
더 검색해봐야 뾰족히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지 않고...
바꾸고 싶었던 모니터까지 주문 완료...

그러고 나니 좀 속이 풀리고...
뭔가 다른 게 좀 손에 잡힌다..
아마존에서 주문해 먹는 비타민도 주문하고,
밥 먹고 동네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장도 보고, 월동준비도 하고...

1박2일의 멘붕...
독립적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실상 다른 뭣도 아닌 기계에 이렇게 의지하며 살고 있더라는 당황스러운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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