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2006

추석 연휴


매여있지않은 몸이 연휴가 따로 있을리 없건만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지 않은터라 리듬을 맞추다 보니 마치 긴 휴가 받은 양 며칠을 쏘다니며 가을볕을 쪼였다.

연휴 시작 즈음에 만난 친구는 긴 연휴의 설레임이 느껴졌고 마지막 즈음에 만난 친구는 어느새 끝이 보이는 휴가에, 아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우울함이 느껴졌다. 그 느낌을 잘 알뿐더러 아직은 생생히 기억한다. 꿀같은 휴식과 자유에 대한 기대로 한없이 부푸는 마음. 며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치 어둡고 습한 동굴로 걸어들어가는 것 처럼 느껴지는 그 우울하고 심란함. *^^*

동네 산책길.놀이터.뒷산. 이태원. 리움. 환기 미술관. 환기미술관에서 경복궁 북문과 청와대를 가로질러 삼청동에 이르는 길.

가뭄으로 나무잎이 단풍들지 못하고 바삭바삭 말랐다. 건물이며 나무며 가을 풍경에 먼지가 뽀얗게 덮인 것이 건기 막마지의 캄보디아의 대기를 떠올리게 했다.

동네. 꼬맹이들 손잡고 재잘대는 이야기를 들으며 추석준비에 바쁜 엄마를 대신해 가게며 놀이터며 산책길이며를 데리고 다니며 놀아준다. 신기하게도 꼬맹이들은 어디서나 행복하다. 어디든 신나는 관심거리를 찾아낸다. 재잘거리는 이야기에 신나는 표정에 덩달아 행복해진다. 길거리 거미줄.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땅에 떨어진 장난감 조각. 산길에 떨어진 밤 한톨. 추석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니까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고싶은데 이미 동생을 너무 많이 괴롭혀서 이제 빌어도 너무 늦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형아랑 사이좋게 노는 것이 소원이라는 이야기. 장난감이 너무 많아 무엇을 가지고 놀까 고민이라는 이야기. 어떤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이 가장 좋냐니까 누나랑 노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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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좋다. 건축에 테크놀로지에... 이 나라에서 첨단을 자랑한다. 훌륭한 시설에 작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라는 순한 생각이 안든다. 입장료 만원. 대기업이 그정도 문화시설 쯤이야 부의 사회환원차원으로 운영해야한다는 식의 논리를 떠나서 '글로벌 기업' 삼성이 좋아하는 단어 '글로벌 스탠더드'로 볼 때 빈약한 콜렉션 또는 전시에 과한 입장료를 받고 있다는 인상, 대한민국의 과한 문화열기에 몰려드는 관람객을 입장료로 진정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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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 미술관. 입장료 8000원. 비싼 리움에 비해 더욱 가격 대비 질을 생각하게 하지만 외진 산속(?)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기 위한 주 수입원이 입장료일 것이란 근거없는 생각에 저절로 용서가 되는 한편 꿋꿋이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생긴다.

근처의 손만두집. 어딘가에서 'wine & dine'이란 말이 어울릴만큼 호사스럽게 먹고나서 무심코 '이 집 iced tea 정말 맛있다' 하고 웃었는데 이 집도 '이 집은 깍뚜기가 맛있구나'하는 말을 무심코 하게 한다. 그렇다고 만두가 맛없었다는 것은 아닌데 깍뚜기와 경치가 만두보다 맛있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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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주변. 건너야할 길이 있었고, 차들도 뜸하고... 불안해하는 친구를 괜찮다 격려하며 길을 건넌다. 경찰이 다가온다. 경찰을 코앞에 두고 무단횡단, 노골적으로 경찰의 권위를 무시한 셈이 됐다. 건널목은 보행자의 횡단을 돕기위한 것이지 반드시 그곳으로만 건너야한다는 뜻이 아닌 다른 나라의 생각이 그 순간 날 지배했던 것이다. 다음부터 이러시면 딱지뗍니다 하는 말에 '아, 맞아' 하며 깨닫는다. 생전 처음 청와대 앞길을 지나가며 좋아라 한다. 아 이게 매일 TV에서 보던 그 장면이구나. 경복궁 북문도 있었네. 사진도 찍고. 흐흐... 행여 잠시라도 두리번거릴라치면 마치 'May I help you?'하는 식으로 체크무늬 셔츠의 아저씨들이 다가오며 호객행위를 위한 목적이 아니고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수없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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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좀 오래된 기억이긴 하지만, 기억 속의 한적하다 못해 고요한 명절 연휴의 도심에 대한 기대가 한자락있었는데 이곳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명절 연휴 시내에서 점심 먹을 곳을 찾다 찾다 구석진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은 그저 기억으로 남을 일인가보다. 여느 휴일처럼 북적인다. 조용한 찻집에 아픈다리 쉬며 차한잔 하고 가리라 했는데 길가에 늘어선 많은 가게들이 inviting하기는 하지만 따뜻히 welcoming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냥 달콤한 팥죽 한사발 서둘러 먹고 광화문 별다방에서 목 축이고 아픈다리 쉬고 귀가.

3 comments:

anna said...

와줘서 쌩유~~ <--유OO MC를 따라하는 요즘 아해들 따라하기.
송편대신 추수감사절에 크랜베리 소스와 그레이비에 터키 먹으면 되지뭐. 보름달 대신 wish born break하면서 소원빌면 되고... 혼자있을 때 터키는 너무 커서 닭 구워 먹던기억난다. ㅎㅎㅎ

Chief Seattle said...

언니~~ 보고시포요~~ (JK)
누나~~ 올래면 시애틀 추워지기 전에 빨리와아요~~ (HY)
이모~~ 얼른 얼른 얼른 비행기 타고 빨리 와요! 그런데, 비행기 타고 오면 오래 걸리는데 괜찮아요? (JY 육성)

Chief Seattle said...

나도 신무문 개방한다는 소리 듣고는 그 동네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좋았겠다. 청와대 앞 단풍길은 어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