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2006
크는 아이들
아이들이 크는 것이 눈에 보이는 때가 있다. 요즘 일곱살짜리 녀석이 그렇다. 생김새도, 생각도, 지적 능력도.
아이들이 유치원 다니기 시작하며 가끔 존대말을 한다. 유치원 가자마자 말 꼬박 존대하고 인사 깍듯이 한다고 누군가는 돈들여 유치원 보낸 보람이 있다고 하던데 조카들이 그렇게 어른 대접해주면 난 영 섭섭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배운 기준을 흐트러뜨리든 말든 슬쩍 고모한테는 반말로 해도 된다고 하곤 한다. (사실, 우리의 존대말이 평등한 사회를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다지 지켜야하는 전통이라 생각하지않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한 녀석이 늘 하는 반말이 유치원에서 배운 것과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는지 제 엄마에게 고모한테 만말하면 안되는 건데 왜 반말을 하냐고 한다. (제가 하면서 그걸 누구에게 묻는 것인지...^^) 그래서 제 엄마가 고모는 어른이라 원래는 반말하면 안된다고 하니까, "그런데 고모는 아직 총각이잖아"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까지의 반말이 정당했다 싶었다보다.
그런데, 고모가 총각이라니... 하하하... 한참 웃다 결혼 안한 여자는 처녀라 일러주니까 대뜸 한다는 말이 "처녀귀신?" 한다. 어디서 처녀귀신이란 말은 들어봤나보다. 그래서 처녀귀신이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고모가 죽으면 처녀 귀신 되는 거라니까 무섭다고 도망가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엘 다니더니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하여튼 꼬맹이들이 하는 말이며 하는 모양이 우스워 한참 웃다 화제가 결혼으로 돌아갔다.
한 녀석이 "고모는 왜 결혼 안해?" 한다. 남녀노소가 없다보다. 심지어, 이제 막 글배우기 시작한 녀석들 조차도 고모가 왜 결혼 안했는지가 궁금하단다.
그래서 "고모가 좋다는 남자가 하나도 없어" 하니까,
옆에서 일곱살된 녀석이 "고모, 나이 70돼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어?"한다.
그래서 "있지" 하니까
"그럼 오래 같이 못살잖아?"한다.
그래서 "꼭 오래 같이 살아야해?" 했더니
장난꾸러기 답지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 10초 쯤 생각하더니
"아니, 깊이 사랑하면서 살아야해..." 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말을 들은 고모와 엄마는 "맞아, 진O야. 우리 진O는 모르는 것이 없어." 등등 온갖 칭찬의 말로 환호하지않을 수 없었고, 더 어릴 때 부터 타고난 영리함을 숨기지 못해 아무도 못말리는 '아는척쟁이', '잘난척쟁이'였던 녀석이 녀석답지않게 쑥스러워하며 "모르는 것도 있어." 한다.
어떻게 총각, 처녀란 말 뜻도 모르는 땡깡쟁이 장난꾸러기 일곱살짜리가 '오래 같이 살아야하냐'는 질문에 '깊이 사랑하며 살아야한다'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녀석, 세상의 이치를 느낄 만큼 생각도 마음도 쑥쑥 자라고있나보다.
2 comments:
anna 언니의 글을 보니, 이런 이쁜 조카가 있거나 딸내미가 있으면 좋겠다..싶어요... 오늘 사무실 안이 참 덥네요... 창밖 풍경도 흐리고... 사람들은 세네갈전 본다고 집에도 가고 그러는데... 에휴휴... 깊게 사랑하며 산다는 생각... 서른이 한참 넘은 나이에도 쉽게 떠올려지지 않는 답인데... 정말 크면 멋진 사람이 될 거 같슴다 ^.^
호호 여기오면 anna언니,gilgalade님을 만날 수 있어서 넘 좋아요 ^^
새로 옮긴 부서가 아직은 낮선데...
여기선 익숙한 냄새가 나서 좋네요
엄마 냄새처럼 ~~~
강남에서 번개한번 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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