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2006

2001 보스톤 마라톤

삼성전자 육상단에 걸려있는 2001년 보스톤 마라톤 당시의 동영상인데 잠시 내가 나온다. 가끔 생각날 때 아직도 있나 궁금해서 가보면 늘 아직도 있다.

감독님, 선수들과 마라톤 코스 답사길에 찍은 건데 볼 때마다 동영상에 나오지 않은 해프닝이 떠올라 웃음짓게한다. 주말에 내 애마로 코스 답사를 하기로 했고, 문짝 두개 달린 그 작은 차에 감독님, 선수 둘, 홍보팀 과장님 이렇게 장정 넷을 빽빽하게 태웠다. 뒷좌석은 천장도 낮아 고개를 숙인 채 앉아야했고... 어떻든 출발... 그런데 얼마 안가서 경찰이 차를 세웠다. 차 안에선 잠시 왜 그럴까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대세는 작은 차에 너무 많은 사람을 태워서라는 것이었다. 긴장하며 차를 세우고 이유를 물었더니 어이없게 2년마다 차 재등록을 해야하는데 기간이 지났단다. 이런...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몇십불 짜리 비싼 딱지를 끊으며 잘한 것도 없이 노골적으로 억울해하니까 친절한 경찰관은 appeal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었고...^^ 어떻든 너무 많이 타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행이긴 했지만 생전 처음 경찰에게 딱지를 끊는 순간이 하필 그렇게 민망해야할 까닭은 뭔지... 감독님은 나 때문에 선수들 놀랐다고 어떻하냐고, 우승 못하면 다 내 책임이라며 한참을 놀리셨다.

Cambridge runner's club에 있던 육상선수 출신 동료가 보스톤마라톤에서 한국말을 하는 자원봉사자를 구한다하며 의사를 물었다. 그래서 어떤 선수가 오냐 했더니 이봉주 선수가 온단다. 오로지 이봉주 선수 만날 생각으로 지원한 열흘간의 한국 선수단 통역/안내 자원봉사. 스포츠라는 것이 무서운 게, 아무 생각없던 내가 선수단을 만나자 마자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같은 팀이 되었고 누구보다도 간절히 우승을 바라는 마음이 되어버렸었다. 매년 Patriot Day에 치뤄지는 경기. 감독님 따라 출발선에서 선수들 출발하는 것 보고 바로 finish line으로 돌아와 Copely Plaza Hotel에 설치된 상황실에서 경기 관계자들 모두 모여 경기를 지켜보는데, 봉주선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일 앞서 달리기 시작했고 거짓말처럼 내 간절한 바램처럼 1등으로 Boston Public Library 앞에 설치된 finish line을 끊었다.

우승 후 달라진 경기 주최 측의 태도도 재미있었다. 참가 선수들 중 제일 좋은 기록을 가졌음에도 (아무리 마라톤은 기록경기가 아니라하더라도) 주최 측도 언론도 표나게 무관심했었다. 내내 쌀쌀맞은 태도로 우리를 언짢게 하던 운영위원 대장(이름이 생각안난다)을 우연히 만났고 그는 '첫날 네가 한말처럼 됐네'하며 씁쓸한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를 만난 첫 날 무슨 생각이었는지 '우리가 몇십년 전에 우승한 것 아니? 이번에도 우승할 것 같은데'라며 나답지않은 호언장담 성 발언을 했고 그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경기 운영 staff들이 진작 우승할 줄 알았다며 축하한다 했다. 어떤 사람은 봉주선수의 허벅지 근육을 보고 봉주선수가 이길꺼라고 누군가와 내기도 했다며 자기 말의 증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 날 우승의 기쁨, 자랑스러움,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열흘간의 짧은 자원봉사를 하고 그렇게 큰 기쁨과 추억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