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제가 정월대 보름이라고도 했지만 내겐 어느 봄날이었다는 것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온 날이다. 일주일 동안 Torino 남서쪽 사시사철 알프스 흰 눈이 보이는 Frossasco라는 곳에 다녀오니 떠날땐 겨울이던 곳이 봄이 되버렸다. 기운도 바람도 볕도...
Maddalena에서 점심을 먹고 다 닫은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구경하다 산책삼아 먼길을 돌아오는데.. 나무의 꽃봉우리들이 터지기 일보직전인데 길가에 난 야생화들은 벌써 먼저 피었다. 이맘때면 언제나 가방에 칼을 넣고 다니시며 시도 때도 없이 보이는데로 나물을 캐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들꽃 몇송이를 꺽어 1회용 컵에 담아 책상위에 놓았다.
저녁, 예전에 chef로 일하시다 지금은 Barbera d'Asti 본거지에서 포도농사를 지으며 포도주를 만들고 계신다는 Pietro선생님 댁에가서 잠시 뭐 볼 것이 있다하여 따라 나섰다가 봄밤 처마 밑에서 아름다운 식탁을 받았다. 닭 육수로 알덴떼로 지은 쌀밥에 삼겹살 구이, 언제나 매운 맛을 그리워하는 한국 학생들을 위해 준비하신 salsa piccante(매운 소스), 사촌이 동네 호수에서 잡아온 송어, 와인과 물물교환한 salami와 formaggi, 마당에서 뜯은 나물로 만든 샐러드 등등... 그리고 선생님 cantina에서 수도꼭지 틀어 큰 병에 받아온 Barbera, Dolcetto, Cortese, 우리들 사이에 일명 꿀물이라 불리며 와인 초보자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Moscato, 그리고 11년산 metodo classico로 만든 spumante까지... 모두들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배를 채우고 목을 축였다. 흐뭇하고 약간 정신이 없는 봄밤이었다.
내가 있는 곳이 Asti가 분명한데 포도밭들은 다 어디있는 거지 했었는데 선생님댁 가는 10여분 내내 이런 포도밭이 펼쳐있었다. 사진은 선생님 집 앞 풍경.
어찌나 elegante를 강조하시는지 학교 sala에서는 항상 혹시 elegante하지않을까 긴장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식탁은 따뜻하고 너무나 편안했다. 어느 펜션에서 야외 바베큐 느낌 ㅎㅎㅎ
보름달이 휘엉청 뜨진않았지만 달무리 사이로 보인다. 오리온 자리,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뭐 그런 별자리도 보였는데...
선생님이 준비하신 마지막 하이라이트. 11년된 metodo classico로 만든 이탈리아 거품 포도주 spumante 따기. 다른 와인을 한 열잔 쯤 마시고, 잔을 비우기 위해 가득 담겨있던 꿀물 moscato를 단숨에 들이킨 상태로 마셔서 맛고 향을 제대로 appreciate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고 죄송하지만 담긴 마음만은 제대로 appreciate했다는 것.. ㅎㅎㅎ
1 comment:
봄에 꽃이 기다려지면..
나이가 든거라는데 ^^
몇해전 부터인가..무척 꽃이 반갑네요 ...
겨울이 길어져서인지 ..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직 서울은 겨울의 끝자락에서..꽃망울만 조심조심..맺고 있는데..
봄꽃 너무 예쁘네요 ^^
월요일 아침을 상큼하게 해줘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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