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나]
웬만하면 하는 것, 해보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안 하겠다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번지점프…
날 수 없는 것을 알면서 허공으로 몸을 던질 수 있다면, 언젠가 정말 살기 싫은 순간 갑자기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Victoria Falls에 가기 며칠 전부터 누가 자꾸 번지점프를 하자고 한다. 계속 안 한다 하니 그럼 스윙점프를 하란다. 자유낙하 없이 줄 잡고 와이어 타고 쭉 내려가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Vic. Falls에 도착한 날, 그 분이 또… 번지를 하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며 자신은 번지를 할 테니 스윙점프를 하라고 한다. 자유낙하가 없는 zip line임을 강조하며. 보검이가 번지 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Vic. Fall인데… 자유낙하도 아니라는데 그리 무섭기야 하겠어. 에라 모르겠다 하며 신청하고 돈도 내버렸다.
Victoria Falls bridge 중간에 번지 대가 있다. 그 곳에서 번지도 하고 스윙점프도 한다. 다리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까마득하다. 거기서 뭘 한다 해도 무서울 것 같다.
[Victoria Falls Bridge: 다리 중간에 점처럼 보이는 지붕이 번지 하는 곳]
그냥 줄타고 내려간다잖아 위로하며 몸무게 재고, 건강상태 문진도 하고. 번지 대에 가서 Harness도 착용하고. 그때 까지도 그 아저씨는 번지, 나는 자유낙하 없는 스윙점프인 줄 알았다. 도우미들이 헷갈려 하는 것 같아, 그는 번지고, 난 스윙점프라고 이야기도 해줬다.
그 분이 번호는 앞인데 나를 먼저 하게 한다… 굳이 순서를 지키고 싶었지만, 하는 사람이 둘 밖에 없어서 그냥 lady first의 순서로 하나보다. 오케이…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데 뭐…
그런데 타고 내려갈 줄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데? 에이 뭐… 다 방법이 있겠지.
모두 걱정스런 표정으로 격려해준다. 현지 가이드들까지. 그냥 zip line 타고 내려오는 것이 이렇게까지 격려받을 일인가?
아무튼 연신 찍어대는 그들의 카메라에 인사말을 하고, Harness를 줄과 연결하고 번지 대에 섰다.
그때까지도 까마득히 몰랐다.
그러다 얼마 후 (아마도 몇 초 정도의 시간이 아닐까?) ‘잉? 번지?’ 했다.
발끝을 번지 대 밖으로 내민 상태로 서란다. ‘진짜?’하며 공포가 몰려오는데, 몸은 이미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그냥 ‘jump!’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야 확실히 알았다. 번지라는 것을. 뛰어 내려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난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Jump??? 어떻게???
“I don’t think I can do it”만 반복했다. 한 다섯 번쯤?
그들에게 그 말을 열 번쯤이라도 참고 들을 인내심은 없었다.
누군가 허리를 밀었고, 난 떨어졌다.
휙~~~ 아마도 눈을 감았나 보다. 아무것도 본 기억이 없으니. 언제 눈을 감고 언제 눈을 떴는지 기억이 없다.
줄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다리를 붙인 상태로 펴고 있으라 했는데…
다리를 꼭 붙이라는 것을 깜빡 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허공에서 낙하하는 몸이 어떤 자세는 못하랴, 몸이 제 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음, 이러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있는데, 다 떨어졌다.
다 떨어졌다.
그냥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가 됐다. 난 잠베지 강 어느 협곡 사이 공중에서 왔다 갔다 스윙을 하고 있었다. 위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있는 파란 하늘,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험악하게 흐르는 까페라떼 색 강물…
으악~~~ 으악~~~~ 으악~~~
얼떨결에 떨어지느라 지르지 못한 고함을 뒤늦게 다 질렀다.
그러다 아직도 딱 붙이지 않은 다리가 생각나서 붙이고…
다리 위에서 손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두 손을 꼭 잡으랬는데 왠지 이제 한 손쯤은 놔도 안전할 것 같아 한 손을 놓고 위쪽 사람들에게 손 흔들어 주고, 전후 좌우 경치 구경하며 허공에 매달려 있는 상태를 즐기는데 끌어올려준다.
도우미들이 안전하게 안내를 하지만 매 순간이 아찔하다.
와~~~~~~~~ 번지를 하다니…
지시대로 다리 아래쪽 통로를 지나 땅 위 다리로 올라오는데, 모두 구경하는 자신들이 더 무서웠다고 괜찮냐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대단하다 축하해준다. ㅎㅎㅎㅎㅎㅎㅎ
진실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밀어준다고… ㅎㅎㅎㅎㅎ
한동안 꼼짝도 안하고 있어서 기절한 것이 분명하다 했단다. ㅎㅎㅎㅎㅎㅎ
누군가 물었다. 번지점프랑 스윙점프의 차이가 뭐냐고. 지금이야 알지만(번지+스윙) 그때 그제서야 나도 그게 궁금했다. (정식 명칭은 Bridge Swing, zip line 타고 내려오는 것은 Bridge Slide. 모두 Shearwater Victoria Falls에서 진행하는 상품들. 한번 검색만 해봤어도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ㅠ.ㅠ ㅎㅎ)
다리 중간에서 끈질기게 권했던 아저씨의 부인을 만났다. 그 언니에게 아저씨께 손해배상 청구하겠다고, 번지점프 아니라고 하지 않았냐고 완전 속았다고… 속은 것에 대한 분함을 일단 토로하고… ㅎㅎㅎㅎ
Harness를 풀러 도우미들에게 갔더니 모두 엄지를 올려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가 나 밀었냐고, 나 민 사람 누구냐고 나오라니, 모두 나는 아니란다. ㅎㅎㅎㅎㅎㅎ
남들 보기에는 멀쩡히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묵직하고 뭔가 제 정신이 아니다. 매달려 있을 땐 멀쩡하던 심장이 오후 내내 종종 쿵쿵쿵 뛰었다.
으악… 번지를 하다니. 죽는 날까지 절대 하지 않겠다 했는데. 번지에 대한 내 소신이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지다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엉엉…
뒤 이어 스윙점프를 하고 올라오는 아저씨를 만났다. 역시 분함을 토로했다. 자유낙하가 없다고 분명 말하지 않았냐… 손해배상해라… ㅎㅎㅎ 역시 두리뭉실 상황을 모면하셨다.
그날 손해배상으로 점심을 사시며 하시는 말씀. 혼자 하기 싫어서 누구를 꼬드길까 신중히 물색해서 며칠 동안 공을 들여 작업을 하셨단다. 으악… 사람들은 그렇게 목표를 세우고 계획적으로 사는 구나. 나는 뭐니? 그런 사람들의 쉬운 목표물이 될 만큼 허술한 티가 나는 사람이구나… ㅎㅎㅎㅎ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하다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자꾸 웃음이 났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난 번지라는 것을 해봤을까? 이렇게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즐거운 순간이 있었을까? 그 분의 target이 될 만큼 좀 모자라 보이길 잘했네, 잘했어 했다. 수년간 지켜온 신념이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져 황망한 구석이 있었지만, 안 해본 것 보다 나았다.
번지를 안 해본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누구도 할 수 있다고. 도우미들이 밀어서 안 떨어지고 버틸 수 없다고. ㅎㅎㅎ
떨어질 땐 경황이 없어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떨어지고 나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저 신난다고. 게다가 harness가 아주 안정적이라 신체 어느 곳도 불편하지 않다고. 번지는 안 해봐서 모르나, 스윙점프는 괜찮다고… 스윙점프를 하라고… ㅎㅎㅎㅎ
그리고 다행인 것은 내가 염려했던 번지점프와 아파트 옥상 점프는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도 옥상에서 뛰어내릴 용기를 낼 수는 없을 것 같은 것으로 보아서. ㅎㅎㅎ
더 이상 번지 점프를 하지 않을 이유는 사라졌지만, 번지 대에 자발적으로 다시 오를 것 같지는 않다. 해봤는데 뭐… ㅎㅎㅎ 하지만 꼭 올라야 한다면 ‘그래, 까짓 것 뭐’ 하며 오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때도 스스로 뛸 수 없을 같다. 누군가 또 밀어주겠지.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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