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2019

시칠리아 여행: 계획

자유 여행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여행 세포가 거의 사멸하였음이 분명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곳이라 지도도 머리 속에 있고, 장소도 방향도 원하는 바도 분명함에도 후다닥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daydreaming과 planning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라 해도, 인터넷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절에도 며칠 만에 비행기표에서 호텔까지 다 예약하고 몇 시간 만에 트렁크 챙겨서 공항으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너무했다. 무엇 때문에 신중한 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신중해진 지금의 나는 조금 서글펐다. 아무튼……

결국 일정은 잡혔다. 생각을 거듭하며 최대한 자제하며(과연 자제 했던가?) 과감히(진정 과감했던가?) 뺄 곳은 빼가며 양껏 잡은 일정은 에올리에 제도 Isole Eolie 포함해서 39일이었다. 처음에 무심히 항공권을 알아보려 설정했던 날짜의 기간과 일치했다. 소름…… 가끔 이상한 곳에서 발동되는 촉인가? 대충하나 고민하나 별다를 것 없다는 메시지인가? 항공권 기간에 맞추려면 에올리에 제도만 빼면 됐다. 결재한 항공권은 32일인데 원래 39일로 하려 했었다. 그러다 체력이 버틸까 덜컥 겁이 났고, 값 차이도 꽤 있어 일 주일을 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정 변경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은 표를 선택했으니, 더 있고 싶으면 기간을 늘리고 에올리에 제도를 끼워 넣기로 했다.

고심 끝에 잡은 일정이라 그런가 일정이 너무 맘에 든다. 딱 이대로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바랄 것을 바라지? 이탈리아가 어떤 나라인데, 한 달 넘는 일정이 계획대로 되길 바라다니, 더구나 남부, 게다가 시칠리아에서. 그런데 왠지 그대로 될 것만 같다. 두고 보면 알겠지.^^

[계획 일정]


P.S. 실행 일정은 다음과 같다. 도시 이동 경로는 노토와 모디카를 제외하고 계획대로 따랐고, 주변 도시 방문은 여러 곳 취소했다. 여행 중간 쯤 되니, 이건 전투지 여행이 아니다,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시라쿠자부터 여행의 모드를 바꾸었다. 그런데 그랬어도 늘 분주했지 그렇게 여유는 없었다. 가장 여유있었던 곳은 체팔루였는데, 체팔루를 생각할 때 마다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 속에 아름다운 공간이 생기고 그곳으로 신선한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많이 보는 여행이 좋은 여행은 분명히 아니다 싶다.
그리고 혹시나 했던 에올리에 제도는 역시 가지 않았다. 안 가봐서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리 유명한 바다라도 바닷가에 가봐야 발은 커녕 손끝도 안 담그고 눈으로 보기만 하는 사람으로서 시칠리아를 일주하며 사면의 바다를 원 없이 본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여행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집에 온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는 것을 보고, 집에 갈 때가 되었다 싶어 그곳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리고 간다면 부엌있는 집 빌려서 생선시장에서 장 봐서 밥 해먹고 동네 사람들과 친구하며 며칠 보내며 있기로......

[실행 일정]


다음은 누군가 같은 일정으로 비슷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일정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반영했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그래서 가보고 싶은 해변도 많지만, 해변 보다는 도시 취향이다 보니, 첫 여행에 이중 어떤 것을 빼고 해변을 넣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다. 그리고 계획 속 방문지 대부분이 바닷가에 있어 원하면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사실 난 다음 일정으로 기꺼이 시칠리아를 다시 여행 할 의사가 있다. 그곳은 몇 번을 여행한다 해도 아쉬움이 남을 그런 곳이다.
[추천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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