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눈을 떴다.
늘 하듯 침대에 누운 채 스페인어 페파 피그를 보며 잠을 깨우는 데 난데없이 오른쪽 귀에서 굴착기 소리가 난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다. 크기는 작아도 소리와 리듬이 굴착기 소리와 매우 비슷하다. 눈이 침침하면 눈을 비비게 된다, 혹시 나아질까 싶어. 같은 심정으로 귀 주변을 문질러 보지만, 역시 소용없다. 이명과는 완전 다른 종류의 소리다. 귓가의 미세한 소리가 잘 들리는 것으로 보아 청력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난생 처음이니 왜 그러는지 전혀 짚이는 것이 없었다. 그저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길 때가 됐지, 영원한 건강이 네게만 주어질 리가 없잖아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내 시간도 끝이 멀지 않음을 알려주는 신호 같았다. 미적거리지 말고 용기를 내어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요즘 계속 시칠리아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다. 시칠리아는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한달 일정으로 항공권을 질렀다. 결제 문자가 왔다.
그러자 생일 선물이야, 한 번 갈 때도 됐어, 배낭 여행을 즐길 시간이 얼마나 남았겠어 등등 아침 자각이 준 절박함에 솟구쳤던 용기는 어디로 갔는지 구실을 찾고 변명이 늘어졌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 분에 넘치는 짓은 아닐까 하며 급격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인생의 오춘기를 지나며 뭔들 마음이 편하랴, 매 순간 꼭꼭 채워 살지 않으면 아예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기억하자 싶었다.
You can’t live at all unless you can live it fully, now.
- Alan Watts
서울-팔레르모 왕복(로마 경유). alitalia.com
P.S. 인천에서 바로 시칠리아로 들어가는 카타니아 행과 팔레르모 행 항공편은 모두 밤 9시나 10시 넘어야 도착했다. 밤 도착을 피하려 하니 30 몇 시간 비행에 경유 2회 같은 경로밖에 없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낮에 도착한다면 버스(6유로)로 얼마든지 시내로 들어갈 수 있지만, 첫날부터 자정 무렵에 낯선 도시를 헤매는 모험은 아니다 싶어서, 택시(45유로)보다는 훨씬 싼, 숙소에서 제공하는 pick-up service(40유로)를 이용했다. 팔레르모와 카타니아 모두 late check-in 비용 15유로가 일반적인 듯 했는데, 내가 묵었던 숙소는 pick-up service를 이용하면 late check-in fee를 안 내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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