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2006

살다보니 별일이...


6월이 다 간 것이 아니었다. 나의 칠월은 6월23일 philadelphia라는 곳에서 시작될 줄 알았는데...

Che giornata!!!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루를 보내는 즈음에 하고 싶은 말이다. (영어로 하면 'what a day'에 해당하는 표현이 아닌가 한다. 이탈리아어 두 달 배우고 몇 마디 할 줄도 모르면서 가능한 모든 말을 이탈리아어로 하고 싶어 안달이다.)

오늘 새벽에 잠들어 어렴풋이 알람으로 맞춰놓은 라디오 소리를 들었고 눈을 번쩍 떴다. 오늘은 잠자리에서 기지개 켜고 복식호흡도 좀 하고 좌로 뒹굴, 우로 뒹굴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어나서 샤워부터 하고, 마지막 짐 챙기고, 평소와 다르게 도대체 서두르지않는 엄마를 재촉하기도 하고.. 한달 남짓 비워둘 방 정리도 하고...

공항에 데려다줄 동생이 왔고, 엄마와 여권, 비행기표, 카드... 그것만 있으면 되지뭐 하며 자신 있게 집을 나섰다.

평일이라 그런지 공항도 한가하고, 체크인 라인도 한산하고...
내 여권두개, 엄마 여권 하나 그렇게 카운터에 내놓고 서있는데, 비자가 있는 여권을 달란다. '드렸는데요' 하니, '어머니것도 주셔야죠'한다. '여권에 있잖아요?', '없는데요.', '그럴리가요?', 옆에서 엄마도 거들며 '여권 그 것 하나밖에 없다' 하신다.

잠시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여권 발급 날짜를 보니 엄마 비자 받은 뒤다. 다른 여권에 비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순간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엄마는 계속, 다른 여권 없다 하시고...
비자 만료를 확인하려 내 것만 확인하고, 엄마 것은 만료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이미 알아서 확인할 생각조차 안했던거다. 여권을 재발급 받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생각을 못했다.

황당하는 표현을 할 때 surreal하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오늘 그랬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꽤 여러번 공항을 왔다 갔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항상 비행기를 탈 수 있었는데... 좌석없이 무작정 기다려도 봤고, 비행기 놓치기 일보 직전에 공항에 왔다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탈 만큼 운이 좋았던 적도 있었고...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아무리 기막혀 해도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분명히 집에 있을텐데.. 얼마나 어렵게 좌석을 구했는데... 엄마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쉽지않은 기회인데... 하다 못해 그 엄청난 신공항하이웨이 통행료 6,700원까지 내고 달려왔는데... 망가노 선생님의 회화 수업도 번역 강좌도 아쉽지만 모두 미리 종강 시켰는데... 친구들에게도 다 8월에 보자고 했는데... 그렇게 많이 가야할 이유가 있는데 그래도 못간다니... 그놈의 사소한(?) 장농 속 어딘가에 있는 비자 때문에...

카운터 항공사 직원은 '어머 어쩌죠'라는 말 한마디도 해줄 수 없을 만큼 전혀 compassionate하지않다. She does't even bat an eye... 한마디로, 우리의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에 눈도 깜짝 안한다. 매일 일하다 보면 어디 우리같은 사람들이 한둘이랴...

공항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공항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하는 일이었기에 어떤 것이든 주의를 끌었다. 그러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여권을 잊어버리나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 중요한 여권을 공항에서 잃어버린다. 물론 임시여권을 발급받는 곳이 있지만, 비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오늘 내가 겪은 일로 해서 여행을 못가는 것이다. 그 땐 자신만만하게 "도대체 어떤 OO한 사람들이 공항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냐?" 했었는데... 비록 흘린 것은 아니지만 처음가는 곳도 아니고 두번째 가는 곳도 아니고 수없이(?) 가본 곳을 가면서 여권만 챙기고 비자는 안 챙긴 나도 OO하긴 마찬가지다.

에고, 에고, 에고...
일은 벌어졌고, 마지막 체크인 시간 까지 한시간 남짓.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빠른 퀵을 불러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깨끗이 포기하고, 사태 수습... 그나마 동생을 짐만 내려놓고 가라하지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일단 집으로 돌아왔고 패널티 물고 비행기표 환불하고...
문제는 다시 가기위한 표를 구하기. 이곳 저곳 알아보다 결국 전화해서 마중나오기 먼 공항에 값을 반이나 더 치루면서도 감지덕지하며 내일 떠나는 표를 구했다.

또 다른 비싼 교훈이다. 그 사소한 비자를 꼭꼭꼭, 꺼진불도 다시 보듯, 돌다리도 두들기듯 챙겨야한다. 덕분에 non-stop으로 마일리지 팍팍 올리며 편하게 가기는 하겠지만...

비빔밥 두그릇, 사발면 두개 기타 등등으로 본전을 뽑아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쓰리다.

2 comments:

asterope said...

아.. 오늘 출국하는데 그런 사연이...
저도 여행할 때 비슷한 경험 가끔 하곤 한답니다. 구멍은 십중팔구 철석같이 믿고 있던 곳에 나더라구요.. 뒷통수 찌릿하죠..
긴 여행 액땜한 거 맞겠죠?
앞비행기를 타고 갔음 놓쳤을 그 무엇과 조우하지 않을까요 ^^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

anna said...

그 무엇과의 조우... 멋진 표현이에요.
새벽... 잠 못든 것이 아니라 일찍 깬 아침. 그 소동이 어느새 아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