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생활하는 환경을 벗어나면 곧 아쉬워지는 것이 있다. 내게는 커피가 늘 그렇다. 커피는 어디에나 있으니 여행 내내 마시긴 마셨으나 늘 맛있는, 그러니까 내 취향의 커피가 아쉬웠다.
찬 우유를 넣은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니 에스프레소만 있으면 되는데, 에스프레소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방식이 아니라는 걸 절감... 그리고 아프리카는 글로벌, 로컬 브랜드 카페가 널린 대한민국의 도시가 아니다.
아프리카 여정의 마지막 나라 에디오피아... 드디어 커피의 나라에 왔는데 계속 차로 관광지로 이동하다 보니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을 마실 기회가 없다. 그렇다고 짬을 내서 혼자 도시를 탐험해보고 싶지도 않다. 도저히 그 혼돈 속으로 발을 내디딜 자신이 없다. 누군가 커피 맛을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도 한다. 좋은 것은 다 수출해서 현지엔 좋은 커피가 없다나...
토모카 카페
긴 여정의 마지막 날, 드디어 토모카 카페를 간다고 한다. 커피도 너무 그립고 아디스 아바바에서 가장 오래 된 카페라 해서 궁금하기도 했고 기대가 됐다. (아마도 최초의 유럽식 카페라는 뜻 아닐까? 그들이 커피를 마신 역사가 얼마인데…)
카페는 혼란스런 길가에 여느 상점과 다를 바 없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지금껏 본 아디스 아바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처럼 뭔가 정신이 없다. 그들의 일상의 구역으로 들어가본 적이 없어, 그들에게 어떤 장소인지 모르겠으나, 그냥 이탈리아 작은 마을의 바(bar) 같은 분위기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무척 혼잡하다는 것. 가이드가 소지품 경계령을 내린다. 인파에 두려움이 있는 나는, 혼자 왔더라면 아마도 입구에서 돌아서 갔을 것 같다. 그런데 적극적인 언니들 덕에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이탈리아 식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 음료. 카페 마끼아또를 마셨다. 마시고 싶었던 스타일의 커피를 마셨다는 것에 만족. 남은 현지 화폐를 탈탈 털어 선물할 커피도 샀다.
지금 문뜩 든 생각, 에디오피아가 잠시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다는 사실.
커피 ceremony
오래 전 핸드드립 커피를 배우며 여러 나라 커피를 비교하며 맛 보았는데 에디오피아 예가체프가 단연 인기였다. 예가체프 말고 Harar나 Limu도 좋은 커피가 난단다. 그런데 커피의 나라에 왔는데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실 기회가 없다. 좋은 커피는 다 수출하니, 맛을 기대하지 말라는 소리도 들린다. ㅠ.ㅠ
가는 곳 마다 카페가 있는데 후다닥 장터국수 한 대접 먹고 가는 분위기에 한량 같아 보이는 남자들로 가득했다. 가끔 느껴지는 불량한 시선들은 얼핏 들어본 아프리카의 여성들을 사회적 지위(?), 삶(?)을 생각하게 했다. 이렇게 저렇게 끼어서 한잔씩 얻어 마셨다.
그런 카페와는 다른 커피 세레모니. 생 원두를 볶아서 내려 마시는 일련의 과정.
난 처음 들어봤는데 이곳에 여행을 왔으면 한 번쯤 해봐야 하는 일인가보다. 누군가 이 의식에 대해 계속 방점을 찍으며 말한다.
호기심과 맛있거나 색다른 커피에 대한 기대로 몇 번 참여해봤다. 그런데 제대로 하는 곳을 못 가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의식은 아니었다. 내가 본 곳은 모두 커피를 볶는 건 요식행위일 뿐, 그 자리에서 볶은 커피를 갈아 내려주지는 않고 누군가 뒤에서 커피를 따로 내려 내왔다. 그리고 맛은 둘째치고 집기들이 너무 꼬질꼬질 했다. 물이 어디에서나 수도꼭지 돌리면 콸콸콸 쏟아져나오는 것이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어딘가에서 물을 길어다 쓰는 것 같다는... 그런 물 사정을 뻔히 봤는데, 더럽다 탓할 수도 없고... 끓인 것이니 탈은 없겠지 하며 마셨다.
그날은 Mekele에서 묵었던 호텔 옆 커피 집. 로비에서 Danakil로 향하는 차를 기다리다, 차가 지연된다는 소식에 우르르 몰려갔다.
낚시 의자 같이 낮은 허름한 의자들에 죽 둘러 앉아 의식을 관람한다. 원두를 화로에 볶아, 돌아가며 볶은 원두의 향을 맡게 해준다. 이번에도 역시 갈고 내리는 것은 생략하고, 안에서 그 사이 만들어 둔 커피를 내어준다. 잔을 비롯한 집기들은 여전히 꼬질꼬질. 역시 향이나 맛으로 먹는 커피는 아니다. 어떤 원두였을까 물어나 볼 걸... 코코아 가루도 넣어보고... 음... 입에 맞지 않는다고 그대로 놓고 나올 수는 없다. 설탕을 듬뿍 넣어 소주처럼 한입에 털어넣고 마무리.
전통의상을 입고 의식을 진행하는 여자가 아름답다.
Moyee 커피
아디스 아바바의 한국식당 대장금 사장님. 토모카 카페의 커피보다 Moyee커피가 더 좋은 커피라고 한다.
누군가 사장님과 살짝 모예 커피를 거래한다. 그 장면을 다른 사람들이 목격. 너도나도 그 커피를 사겠다는데 더 없단다. 그 사람이 다 털어서 사버린 것. 그 커피를 꼭 사야 하겠다는 사람들. 슈퍼에서 판다는 정보를 입수. 슈퍼에 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결국 현지 가이드가 모예 커피 공장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굳이 줄을 서지 않아도 대충 눈치로 순서가 정해지는데, 상관 없이 서로 사겠다 아우성이다. 그렇게 싹쓸이 하다시피 커피를 쓸었다.
드디어 내 차례, 마지막으로... 그런데 주문을 하자 난감한 표정이 된다. 남은 게 없냐고? 없으면 됐다 하니, 자기들끼리 몇 마디 말을 주고 받더니 있단다. 그리고 한참 걸려서 주문한 양을 꺼내왔다.
돌아와서 주위에 선물하고 나도 한 봉지. 그런데 이 커피, 왠지 맛있다. 내게 커피는 세 종류다. 맛있는 것, 그저 그런 것, 맛없는 것. 이 커피는 맛있다. 받은 사람들도 진짜 맛있단다. 맛의 비결은 아마도 신선함이 아니었을까... 볶은지 오래된 것 순서로 팔 테니까 마지막에 판 내 것이 가장 최근에 볶은 신선한 커피... ㅎㅎㅎ
[P.S. 인터넷을 뒤져보니 Moyee커피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헤드쿼터를 둔 유럽 회사. 우리가 쓰는 돈이 내일 아침이면 유럽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여행 내내 종종 들었는데…ㅠ.ㅠ 공정무역처럼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이 있던데, 그런 지향이 있는 여행이었다면 좋았겠다 싶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